“공정 경쟁 위해 5G 시대에도 망중립성 지켜야”

5G 시대의 망중립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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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망중립성 논쟁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5G 상용화를 전후로 망중립성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통신사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 5G 시대 기술 및 사업 환경에 맞춰 망중립성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스타트업 업계를 중심으로 망중립성이 완화되면 공정 경쟁과 혁신이 저해되며, 장기적으로 소비자 복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체감규제포럼은 5월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실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망중립성과 제로레이팅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망중립성 완화나 무분별한 제로레이팅 허용이 자본력 없는 스타트업에게 진입장벽을 높여 혁신을 방해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망중립성과 제로레이팅을 주제로 한 규제개혁 토론회가 열렸다.

망중립성 논쟁의 배경

망중립성은 인터넷을 통해 발생한 데이터 트래픽을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가 대상·내용·유형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차선마다 도로 컨디션, 요금, 속도 등을 다르게 하는 차등이 없듯이 인터넷서비스제공자는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기업이든 일반 사용자든 고객이 모두 동등한 데이터를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망중립성에 대해 미국과 유럽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17년 12월 망중립성 원칙 폐기 안을 통과시켰다. 인터넷서비스제공자를 미국 통신법상에서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분류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에서는 2015년 망중립성 법안을 통과시켰고, 2016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망중립성 감시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는 등 강한 망중립성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법 50조 1항 제5호)을 근거로 망중립성과 관련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전기통신서비스를 이용해 다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자에게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또는 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해 이용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망 부하를 이유로 국내에서 망중립성 논쟁이 불거졌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등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를 둘러싼 논의들이 대표적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망중립성 논쟁은 5G 네트워크 상용화를 전후로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이를 통한 ‘관리형 서비스’ 등을 이유로 5G 시대에 망중립성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5G 핵심 기술로 하나의 물리적 네트워크를 독립된 다수 가상 네트워크로 분리한 뒤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한정된 통신망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자율주행차 같은 관리형 서비스에 이용될 수 있다. 통신사들은 하나의 통신망을 여러 회선으로 쪼개 용도별로 다른 속도로 운용하는 것이 이용자를 차별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어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통신사들은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접속료 이외의 부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데이터를 발생시킨 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2016년 상호접속 고시 개정을 근거로 생겨난 ‘망사용료’ 논란이다. 통신사들은 포털 등 국내 콘텐츠제공사업자에 망사용료로 큰 비용을 받고 있고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에도 같은 수준의 비용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기업에 이를 강제할 수 없어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망중립성 원칙은 표현의 자유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에 나선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중립석 원칙의 헌법적 가치를 논의했다. 김민호 교수는 “망중립 원칙은 평등의 원칙,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의 구현 원칙이며, 그 자체가 헌법적 가치를 지닌 원칙이므로 누구도 이를 폐기하거나 완화할 수 없다”라며, “다만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망중립 원칙 예외가 광범위하게 인정될 경우 인터넷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심화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거라는 주장이다. 또 통신망은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인터넷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성을 지니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로서 망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망중립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모호한 관리형 서비스 정의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망중립성 적용 대상이 아닌 관리형 서비스의 기준이 모호해 극단적 논쟁을 촉발시킨다는 지적이다.

| (왼쪽부터) 송봉화 네티스 대표, 박태훈 왓챠플레이 대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엄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이날 토론에 참석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현재 인터넷에서 가능한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라면 관리형 서비스가 될 필요 없다”라며 “관리형 서비스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사전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LTE에서 망중립성 원칙이 유지된다면 5G에서 망중립성 원칙이 유지되지 않을 근거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오 대표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망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아이폰이 도입되기 이전에 통신사에 의해 제한된 한국 모바일 인터넷 상황을 예로 들며, 누구나 인터넷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자유의 원동력이라고 짚었다.

공정 경쟁 위한 제로레이팅 규제 필요

제로레이팅은 망중립성과 함께 논의되는 개념 중 하나다. 특정 콘텐츠 사용 시 데이터 비용을 이용자가 아닌 콘텐츠(플랫폼)제공사업자나 이동통신사가 부담하는 과금 방식이다. SK텔레콤 이용자들이 같은 계열사인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를 이용하는 동안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도록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용자들은 특정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다. 또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콘텐츠사업자에게 불리해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이용자들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내 제로레이팅 시행 현황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계 각국의 제로레이팅 규제 현황을 토대로 통신사의 과금 규제 측면에서 제로레이팅의 합리적 규제방안을 제시했다. 제로레이팅 허용이 망중립성에 위배되는지, 반경쟁적인지, 디지털 격차 해소에 기여하는지 여부는 각 나라마다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있어, 한국 특성에 맞는 발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서비스의 공익성에 의거 요금 규제의 정당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제로레이팅은 정액제와 부분적 종량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요금 체계상 통신사의 전면적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 규제가 부과돼야 하는 사안”이라고 짚었다. 또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을 들어 무분별한 제로레이팅 허용의 위험성을 말했다.

토론에 참석한 박태훈 왓챠플레이 대표는 “망사용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공정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제로레이팅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경우 ISP 자사 계열사 위주로 진행돼 공정 경쟁을 방해하고, 저희는 적자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왓챠플레이의 경우 망사용료가 3년간 18% 올랐는데, 새로운 법안을 찾기 전에 통신사만 혜택을 받는 상호접속 고시 개정 이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엄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상호접속 고시 개정으로 CP 부담이 늘어 해외와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데, 협의체를 구성해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러 의견과 사업체별 이해관계를 잘 종합해 이른 시일 내에 이런 부분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로레이팅과 관련해 엄열 과장은 사전 규제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면서도 불공정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후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관리형 서비스와 관련해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통한 서비스를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며, “앞으로 어떤 서비스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관리형 서비스 여부를 단정 짓기 보다는 서비스들을 살펴보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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