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SW 불법복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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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업계에서 산업 발전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낼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SW 불법복제율’이다. 무분별한 SW 불법 복제가 산업 피해로 이어지고, 고용 위축과 국제 이미지 추락으로 결국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틀린 대목은 없다. SW 불법 복제는 범법 행위요, 도덕적으로도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허나 꼼꼼히 따져볼 필요는 있다. 혹시 우리는 불법 복제의 피해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로 SW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지뢰밭이란 오명을 SW 불법 복제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일까. 혹시 화려한 수치로 포장된 이 ‘불법복제율’ 안에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예컨대 서강대학교 시장경제연구소가 6월29일 공개한 보고서가 그렇다.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산업에서 불법복제 감소의 경제적 효과’란 제목이 붙은 이 보고서는 SW를 비롯해 영화, 음악, 출판,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복제 현황과 그에 따른 산업 파급 효과를 다루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콘텐츠 불법복제 현황은 심각하다 못해 누더기에 가깝다. SW의 경우 불법복제율이 2008년 기준으로 43%, 영화와 음악은 무려 80%가 넘는다. 게임도 52.6%로 적잖이 높으며 복제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출판물이 그나마 23%대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SW만 놓고 보자. 전세계 110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은 평균치인 41%를 웃도는 불법복제율을 나타냈다. 불법복제율이 20%로 최저 수준인 미국보다 20%p 이상 높다. 불법복제율이 70~80%에 이르는 중국이나 인도에 비하면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처지다.

시장경제연구소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SW 불법복제에 따른 시장 피해 규모는 적게는 6조9천억원에서 많게는 7조3천억원으로, 영화시장 피해 규모는 4조1천억원에서 6조3천억원까지 이르는 것으로 예측했다. 음악과 게임, 출판시장 피해액도 각각 3조6천억원~6조2천억원, 3조9천억원~10조6천억원, 8천억원~1조8천억원대로 추산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국내 디지털 콘텐츠와 SW 불법복제를 10%만 줄여도 관련 산업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성장하며, 고용 창출 효과도 5만6천명~8만8천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헌데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연구소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불법복제율 근거로 이미 발표된 주요 협·단체 자료를 가져다 썼다. 다른 자료는 놔두고, SW 불법복제율만 놓고 보자. 연구소가 조사 근거로 삼은 자료는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에서 내놓은 SW 불법복제율 발표 보고서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자료다. 문제는 두 곳에서 내놓은 SW 불법복제율이 2~3% 가량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피해액도 4천억원 가량 차이가 나고, 불법복제율 10% 감소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 효과나 고용 유발 효과도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다.

두 곳 조사를 따로 들여다보는 거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어쨌거나 불법복제율 현황을 어림잡아보고 그에 따른 피해 규모를 예측해보는 것으로 경각심과 더불어 관련 산업 발전 대책을 세우는 디딤돌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조사 근거가 되는 SW 불법복제율 자체의 신뢰성에 금이 간다면 이번 연구소 조사 전체의 성과도 빛을 바래게 된다. 예컨대 BSA가 해마다 IDC에 의뢰해 발표하는 SW 불법복제율 조사 보고서가 그렇다.

이번에 연구소가 가져다 쓴 건 2008년도 BSA 자료다. BSA는 전세계 110개 나라를 대상으로 SW 불법복제율을 조사해 발표하는데, SW 수요·공급량을 비교해 불법복제율을 추산한다. PC 이용자들이 쓰는 SW 수를 조사하고, 이를 정품으로 공급된 SW 수량과 비교해 불법복제율을 추산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BSA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불법복제에 따른 피해 규모를 ‘불법복제율×전체SW 시장규모’로 계산한다. 요컨대 불법복제품 규모 전체가 고스란히 불법복제에 따른 피해 규모가 되는 셈이다. 이는 불법복제가 없어질 경우 기존 불법복제품 이용자가 모두 정품을 구매할 것이란 가정에 따라 피해 규모를 추산한 것이다. 허나 실제로 불법복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정품SW를 구매하는 건 아니다. 실제 피해규모보다 BSA 보고서에 나온 피해 규모가 과장되어 나타난다는 얘기다.

불법복제 SW 이용자가 오픈소스SW나 웹소프트웨어(SaaS)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을 텐데, BSA 연구에선 이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지난해 제기된 바 있다. 예컨대 ‘MS오피스’를 불법으로 내려받아 쓰다가 ‘오픈오피스’나 ‘구글 독스’로 갈아타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BSA가 발표한 불법복제 피해 사례는 더 줄어들게 된다.

더구나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가 가져다 쓴 자료는 BSA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2~3년 전에 발표한 데이터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산업 파급 효과나 경쟁력 유발 효과가 지금 산업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점은 연구를 진행했던 교수들도 인정한 바다.

요즘처럼 클라우드 서비스 기반으로 데이터를 웹에 저장해두고 쓰는 시대엔 예전처럼 PC에 설치해 쓰는 패키지SW 비중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올해 BSA 보고서도 웹소프트웨어의 성장세와 비중을 언급하긴 했지만, 아직은 전체 SW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웹소프트웨어가 플랫폼(PaaS)으로 진화해가는 점이나 MS 같은 대형 SW 업체가 패키지SW에 더해 무료 웹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늘려나가는 움직임 등을 고려하면 SW 불법복제와 산업 파급 효과를 과거 그대로 현재로 이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BSA나 연구소에서 제시하는 ‘고용 유발 효과’도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연구소에선 SW 불법복제를 10% 줄이면 1만2천~1만2500명의 취업 창출 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이는 SW 불법복제 감소로 인한 수요 증가분을 한국은행이 발표한 취업유발계수 ‘16.5’와 곱한 수치다. 고용유발계수란 최종 수요가 10억건 증가할 때 나오는 피고용자 수로, ‘16.5’란 말은 컴퓨터 관련 서비스 수요가 10억건 늘어나면 취업 인원이 14.2명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를 SW 불법복제 10% 감소시 예상되는 매출 증가분과 곱한 게 이들이 말하는 고용 유발 효과다.

물어보자. BSA가 올해 발표한 2009년 한국 SW 불법복제율은 41%로, 2008년보다 2%p 줄었다. 단순 계산한다면 2009년에는 SW 산업계에 불법복제 감소로 인해 2500명이 새로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데, 이같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보고서는 아직까지 본 적 없다.

그나마 위안을 얻을 대목은 있다. 이번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가 다양한 불법복제율 추산 방식을 고려해 조사를 나뉘어 진행하고, 관련 산업에 미칠 여파도 SW 제조업에 국한하지 않고 유통업과 서비스업 등을 포함한 경제학적 실증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콘텐츠와 SW의 합리적 유통 방안과 공정이용 확산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게 남은 과제다. 애당초 ‘불법복제 방지 캠페인’이나 ‘정품송’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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