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보다 중요한 것은 후속 규제”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본 게임이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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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게임이용장애 자체보다 후속적으로 이어질 규제 강화다.”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결정 약 한 달째, 초반의 과열된 논의를 넘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를 근거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제가 양산될 거라고 지적했다. 게임이용장애 자체를 놓고 찬반 논쟁을 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게임이용장애는 표현의 자유 침해?

사단법인 오픈넷과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지난 6월21일 서울 삼성동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WHO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와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박경신 교수는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WHO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의 문제’를 주제로, 오태원 경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규범 조화의 관점에서 본 WHO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의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 (왼쪽부터)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 대표,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김호경 서원대 문화기술산업학과 교수,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오태원 경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패널 토론에는 오픈넷 이사장이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을 맡고 있는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김호경 서원대 문화기술산업학과 교수,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 대표가 참여했다.

박경신 교수는 게임이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는 매체라고 말했다. 게임 개발자의 표현의 문제이자, 이용자의 알 권리, 표현에 접근할 권리 차원에서 게임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설명이다. 게임이 실제로 게임 이용자에게 발생시키는 해악의 명백성, 현존성이 없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는 위헌이 될 수 있다는 게 박경신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1년 미국 대법원은 폭력적 비디오 게임을 청소년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질병코드 지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일까.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부여는 게임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아니고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면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을 의학적으로 다루겠다는 판단”이라면서도 “문제는 게임에 대한 현재 규제 상황이 너무 강압적이라는 점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질병코드 지정은 규제 강화의 전조가 될 우려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즉, 게임이용장애 자체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기는 힘들지만 한국의 게임 규제 상황을 봤을 때 위헌적 규제들이 양산될 거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2013년 국회에서 발의된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4대 중독법)’을 예로 들었다. 해당 법안은 인터넷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를 알콜, 마약, 도박과 함께 같은 선상에서 다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교수는 “게임 중독이 과연 다른 과몰입 행위와 비교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더 강한 생활 파괴를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고, 게임이 가지는 긍정적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라며 “중독관리법(4대 중독법)과 게임이용장애는 다르지만, 결국 중독관리법으로 옮겨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게임이용장애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 맞춰야

오태원 교수는 게임이용에 관한 문제를 질병이 아닌 조화로운 규범 문화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전제를 둘 경우 규범은 게임이용에 대한 규제 위주로 법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미래사회 게임이용에 관한 문제는 단지 ‘질병예방’의 문제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을 위하여 문맹의 탈피와 근대적 시민성 교육이 필요했던 것처럼 미래사회의 시민들을 위한 디지털 시민성 배양의 문제로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는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와 게임 규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두 문제를 뭉뚱그려 이야기할 경우 논의가 진전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게임에 대한 적절한 규제, 자율적 규제가 중요하며 정부가 나서는 것은 문제”라면서도 “대다수의 게임이용자가 무관함에도 게임이용장애 자체가 문제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게임이용장애는 게임을 죄악시하는 것도, 게임 이용을 죄악시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게임이용이 어떠한 해악을 나타낼 수 있는 현상에 대해 대증적 요법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뇌과학 연구자인 김학진 교수는 게임이 주는 사회적 인정, 보상에 주목했다. 게임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특정 행위에 몰입할 수 있도록 게임이 개발돼 왔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게임 산업 대 의료 산업, 양자택일 상황으로 가기보다는 서로 협업해서 게임 중독, 과몰입이 어떻게 발생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솔루션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김호경 교수는 게임 개발자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호경 교수는 “게임 이용자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게임 개발자가 어떤 플롯으로 게임을 제작하는지 연구가 안 됐다”라며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다른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이날 유일하게 시민단체 측 패널로 참석한 학부모정보감시단 이경화 대표는 중독을 유발하는 특정 게임 장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게임 산업, 전문가들이 게임이 좋다고 얘기할 때 e스포츠 게임, 아케이드 게임 등을 든다”라며 “MMORPG 등 게임 중독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게임 장르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 실험해본다면 게임이용장애의 근거에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서 이 대표는 “게임을 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환자로 몰아가는 것은 게임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방해하는 것이며, 불필요한 정책, 쓸데없는 예방 활동, 교육, 상담이 아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는 게 지금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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