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메이커 문화 만들어졌으면”

한국 메이커들이 말하는 한국 메이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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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는 직접 뭔가 만드는 사람을 지칭한다. 기술이 대중화되고 누구나 기술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만들기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만들기 방법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메이커 운동’은 풀뿌리 기술 혁신 등과 맞물려 파급력을 갖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주도했던 ‘메이크’ 매거진 창간자 데일 도허티메이커 미디어의 파산을 알리면서 메이커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격동의 시기, 한국의 메이커들은 세계 속 한국 메이커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6월21일 서울 마포구 홍대 글룩에서 ‘해외 메이커 페어 어땠어요?’를 주제로 메이커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이 열렸다. 메이커 페어는 전세계적으로 열리는 메이커들의 축제다. 메이커 미디어가 주도한 메이커 페어는 한국에서도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도 10월19일부터 20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메이커 페어 서울 2019’가 열릴 예정이다.

| ‘해외 메이커 페어 어땠어요?’ 행사를 기획한 전다은 메이커

이날 행사에는 전다은 메이커, 강태욱 메이커, 고지현 메이커, 이건희 메이커, 박주헌 메이커, 강석봉 메이커 등이 발표자로 참석해 올해 5월 미국과 독일에서 열렸던 메이커 페어 참가 경험을 이야기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최근 메이커 관련 현안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서도 메이커 페어를 즐긴다”

발표자들은 미국 메이커 문화의 특징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메이커 페어를 즐긴다는 점을 꼽았다. 세계 곳곳의 여러 메이커 페어에 참가한 전다은 메이커는 “자신이 원하는 컨셉을 갖고 나이에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디지털 장비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라고 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메이커 페어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시니어 메이커에 속하는 강석봉 메이커는 “미국 시니어 메이커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분도 있지만, 작은 작품을 가지고도 용감하게 메이커 페어에 나오는 점이 제일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큰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여러 사람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분들이 많았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라고 전했다.

어린 딸과 함께 메이커 활동을 하고 있는 강태욱 메이커는 “우리나라에서는 엔지니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면 관리직이 되고 기술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미국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 오픈소스를 조합해 실제 결과물로 구현한 작품을 들고나오는 모습을 봤다”라며 “우리나라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거대한 스케일도 미국 메이커 페어의 큰 특징이다. 강태욱 메이커는 비행기와 잠수함을 직접 만들어 나오는 미국 메이커 문화의 거대한 스케일에 대해 소개했다. 이건희 메이커는 “출구 EXIT 글자까지 다 크더라”라며 미국 메이커 페어의 규모감을 묘사했다.

| 미국 메이커 페어의 스케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에 참석한 고등학생 박주헌 메이커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페어 당일 부스에서 작품을 만드는 독일 메이커 페어의 여유로운 모습을 한국 메이커 문화와 다른 점으로 짚었다.

한국 메이커 문화가 가야 할 방향은 ‘커뮤니티’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메이커 토크 시간에 고지현 메이커는 “메이커는 기술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아니며,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게 메이커 페어인데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점점 많이 참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다은 메이커는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처럼 창고 문화도 없었고, 취미 문화에 인색했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 ‘너 금수저냐’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즐기는 것 자체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 같고 참가자들도 늘고 있으며 우리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국 메이커 문화의 긍정적 변화에 대해 강조했다.

메이커 미디어의 파산 소식도 이날 화제 중 하나였다. 국내 메이커들은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국만의 메이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짚었다. 강석봉 메이커는 “미국 메이커 문화는 계속될 것”이라며 “그들이 가진 내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이번 파산이 있더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메이커 문화는 지속될 거 같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강태욱 메이커는 “메이커 문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은 편이라 가슴이 아팠고, 아이들도 쇼크를 받았다”라며 “국내 메이커 정부 지원 사업이 탑다운 방식이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뀔 수 있어 메이커분들이 대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 사업에 의지하는 방식으로는 메이커 문화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또 강태욱 메이커는 “한국은 먹고 사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미국처럼 메이커 문화가 자생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라며 “커뮤니티로 힘을 합쳐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같이 논의해봤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규모화된 기존 정부 예산 지원 사업과 개별성이 강한 메이커들의 문화가 달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정작 필요한 곳으로 돈이 안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라며 “어떻게 하면 수요자에 가깝게 지원 정책을 펼칠지 고민을 많이 한다”라고 밝혔다. 또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서 건전한 메이커들의 목소리가 커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전다은 메이커는 “많은 메이커분들이 만드는 건 잘하지만 내용을 정리해서 의견화하는 데는 서툰 면이 있는 것 같다”라며 “메이커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의견이 공유됐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전다은 메이커는 “미국에 우상을 두고 메이커를 해왔는데 지금은 우상이 없어진 셈이며, 현실이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부터 한국형 메이커 시작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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