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빈대 잡자고 초가집 태우는 ‘인터넷 실명제’

가 +
가 -

제한적 본인확인제(이하 ‘인터넷 실명제’)가 논란 도마에 올랐을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이것이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애당초 기대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다는 근거 자료가 있는가. 악성 덧글이 줄고 명예훼손이나 모욕 사례는 기대만큼 줄어든 걸까.

과문한 탓일까. 지금까지 실명제가 제몫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인터넷 실명제 때문에 덧글이나 게시글 숫자가 줄어들고, 애당초 겨냥했던 악성 덧글이나 불법 게시물은 생각만큼 없어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는 여럿이다.

7월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인터넷 실명제 헌법소원 관련 공개 변론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나는 알고 싶었다. 인터넷 실명제로 건강하고 반듯한 인터넷 문화가 정립되고 있음을 보여달란 말이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장점이 더 크다면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헌데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로 끝났다. 헌법소원 이해관계인인 방송통신위원회쪽에서 내세운 변호사나 공개변론에 나선 법학자 모두 설득력 있는 자료는 끝내 내놓지 못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법익균형성도 인정되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법리에 맞춰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을 따름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쪽은 달랐다. 이번 헌법소원은 손 아무개씨를 포함한 2명이 유튜브, 오마이뉴스, YTN 웹사이트에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싶었으나 자신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도록 강제한 것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올해 1월25일 제기한 것이다. 대리인으로 나선 변호인과 공개변론에 나선 박경신 고려대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정률 소속 전종원 변호사는 인터넷 실명제가 ▲게시판에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본인확인 조치를 받도록 하는 것이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거의 모든 웹사이트의 모든 게시물에 적용되는 기간제한 없는 기본권 제한이라는 점에서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며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해 지나치게 사익을 제한하는 점에서 법익균형성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가 이용자 인적사항을 언제든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있고 정보 유출 위험성도 높다는 점은 사생활 비밀과 자유, 자기정보통제권도 침해한다고 전종원 변호사는 주장했다. 더구나 실명제 적용으로 정책당국이 기대했던 대로 책임 있는 의견이 늘어났거나 위법한 표현이 줄었다는 근거도 없는 만큼, 인터넷 실명제는 효과 보다는 부작용만 큰 제도란 게 청구인쪽 주장이다.

물론 실명제 성과를 ‘입증’하려는 조사도 나오긴 했다. 정보통신부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민간 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다. 이들이 다음, 머니투데이, 디시인사이드 등 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명제 적용 전과 뒤, 악성 덧글은 1.9%p, ‘심각한 악성 덧글’은 2.2%p 줄었다고 한다. 허나 이는 2007년 10월 자료다. 실명제가 시행된 지 불과 한 달 뒤 변화를 조사해 내놓은 자료다. 방송통신위원회 스스로도 인터넷 실명제 시행 3년이 다 된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는 초기단계’라고 인정하고 있으니, 시행 한 달만의 변화가 얼마나 신뢰성을 지닐 지는 따지지 않아도 뻔하다. 사실상 실명제 이해관계자인 정보통신부가 의뢰한 조사 결과란 점도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오히려 민간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났다는 점을 눈여겨 볼 일이다. 서울대 우지숙 교수가 올해 4월초 내놓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를 보면, 실명제 이전 13.9%였던 비방 게시글이 실명제 이후 12.2%로 다소 줄었지만 이것이 실명제 효과인지는 입증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실명제 효과라고 인정해도 그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게시판에 글을 올린 참여자수는 IP 기준으로 실명제 이전 2585개에서 이후 737개로 대폭 줄었다. 자기검열이 커뮤니케이션 위축 효과로 이어진 대목이다. 숭실대 배영 교수 연구팀이 2008년 공개한 본인확인제 효과 조사에서도 본인확인제 실시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악성 덧글에는 거의 차이가 없고 표현 수위만 조금 낮아진 걸로 나타났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 주장에 따르면 2007년 7월20일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뒤 지금까지 실명제 관련 연구결과가 9건 나왔다. 이 가운데 방통위가 발주한 2건을 뺀 7개 독립 연구결과 모두 커뮤니케이션 위축 효과를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미디어오늘’은 실명제 실시 이후 덧글이 20%나 줄었다. 이런 식으로 실명제로 인해 줄어든 글의 85~90%는 합법 게시물로 예측된다. 스스로를 감시와 검열에 가두는 ‘판옵티콘’이 작동하는 것이다.

현행 실명제의 진짜 문제는 ‘강제성’에 있다. 국가가 나서서 대다수 인터넷 게시판에 본인확인을 거치도록 강제하는 게 문제다. 선택 기회는 애당초 박탈된다. 필요하다면 웹사이트 운영자가 실명제를 적용하면 될 일이다. 익명 게시판으로 부작용이 커지고 골머리를 앓게 된다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운영진이 알아서 실명제를 적용할 게다. 지금 실명제는 웹사이트 운영자의 선택 자유를 강탈한 제도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정책당국이 실명제를 강제하지 않는다.

사이버 범죄를 예방하고 사후 추적하기 위해서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겉으론 그럴듯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울 좋은 명분이긴 마찬가지다. 검찰은 2005년부터 이용자 인터넷 고유 주소(IP)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동하고 있다. 불법 자료나나 인신공격성 글을 올리는 사람은 IP 추적으로 잡아내면 된다. PC방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이용할 경우 IP 추적으로 당사자를 잡아낼 수 없다고는 하나, 실명제도 그런 점에선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른 사람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글을 올린다면 ‘본인확인’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더구나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불법 자료를 올릴 심산이었다면 제 이름과 주민번호를 곧이곧대로 등록할 바보는 없다. 실명제 적용으로 포털이나 e쇼핑몰 등에 쌓여 있는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돼 음성 거래되는 게 현실이다. 지난 2년동안 이런 식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알려진 것만도 3천만건이 넘는다.

인터넷 실명제는 전제부터 불손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모든 이용자를 애당초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다른 매체는 놔두고 유독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만 신분을 밝히라는 것도 역차별이다. 인터넷은 파급 속도가 빠르고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실명 등록을 거치면 제대로 통제가 되고 파급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이 입증해야 하지 않나. 전종원 변호사가 든 비유가 재미있다. “인터넷이 파급력이 큰 매체라고 해서 실명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어떤 책이 잘 팔린다고 해서 해당 저자를 강제로 실명 등록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외 서비스와의 역차별 문제도 논란거리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거나 외국 도메인을 쓰는 서비스들은 국내법으로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 이 점은 이해관계자인 방통위쪽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박경신 교수는 “이른바 개똥녀 사건이나 최진실 사건 모두 완전 실명제로 운영되는 사이트에서 나타났고, 미네르바도 본인 확인이 아닌 IP 추적으로 잡았다”라며 “최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도 해외 서비스에 동영상을 올린 사람은 건드리지 못하고 이를 퍼나른 국내 누리꾼만 잡아들였다”고 실명제의 허점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익명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악성 덧글이나 불법 게시물이 범람하는 문제를 줄이는 묘안은 없을까.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 박경신 교수는 미국의 ‘노티스 앤 테이크다운’ 제도를 제안했다. 박 교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모욕죄란 죄목 자체가 없다. ‘악성 덧글’이란 규정을 내리는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 대한 칭찬을 표현한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모욕일 수도 있으니까.

“결국은 구체적이고 사실적 주장을 담은 명예훼손성 글이나 저작권을 침해하는 글에 대한 제재가 문제가 되는데요. ‘노티스 앤 테이크다운’ 제도는 게시자와 피해를 주장하는 자 양쪽으로부터 면책을 받는 법적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누구든 불법적 피해를 주장하며 글을 내려달라고 하면 게시판 사업자는 일체 소명이나 입증 자료 없이도 해당 글을 곧바로 내려줍니다. 그 대신 게시자에게 글을 내렸음을 알려주고요. 마찬가지로, 게시자가 자기 글이 불법이 아니라고 다시 올려달라고 하면 역시 아무런 소명이나 입증 자료 없이도 곧바로 다시 올려줍니다. 이런 제도를 통해 저작권 침해나 명예훼손 게시글이 상당수 내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게시물 임시 차단 조치’ 같은 제도다. 거기에 더해 한국에선 피해 당사자가 악성 덧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방통위가 글을 내리라는 시정 요구와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돼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굳이 효과도 입증되지 않고 부작용만 범람하는 실명제 같은 강제 조항을 일괄 적용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게시판 운영자가 실명방과 익명방을 나눠 운영하도록 선택권을 주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사실관계에 대한 자신이 있다면 떳떳이 실명을 밝히고 글을 올리고, 그에 대한 평가나 영향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말하자면 운영진에 선택권을 주고 효율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맡기는 방식인데, 지금 실명제는 그런 선택권 자체를 막아버린 제도다. 익명 글쓰기를 보장하는 대신, 인신공격성 글이나 불법 게시물에 대한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사이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실명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커지는 반면, 이에 대응하는 방통위쪽 논리는 궁색하기만 하다. 방통위쪽 공개변론에 나선 김주환 홍익대 법대 교수 말을 들어보자. “제한적 본인확인제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없다는 불이익이 있으나, 얼마든지 실명제를 적용하지 않은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고 인터넷 특성상 퍼나르기 등으로 실명제 게시판에 올린 것과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된다.”

이 논리는 하루평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웹사이트 게시판에 대해 실명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방통위쪽 명분을 무력화하는 자가당착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웹사이트 뿐 아니라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적용해야 한다. 소수가 노니는 게시판도 다수가 찾는 게시판 못지 않은 파급효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부는 4차선 고속도로를 몽땅 막고 일일이 운전자 신분을 확인하고 통과시키고 싶은 걸까.

더 흥미로운 반전은 공개변론 마지막에 일어났다. 다음은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주환 교수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재판관 : 예컨대 실명방과 비실명방을 만들어 따로 운영할 경우를 가정해봅시다. 덧글을 올리는 사람 입장에선 절차가 간편하고 나중에 부담 없기 때문에 비실명방으로 올리는 게 편할 겁니다. 반대로 덧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선 비실명방에 들어가서 덧글을 봐도 어디서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고 허무맹랑한 얘기도 많으면 읽을 가치가 없다고 보고 비실명방에 올린 글은 볼 생각을 안하고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실명방 글을 보자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선 실명방을 더 많이 찾지 않을까 싶은데요.

김주환 :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익명 표현의 자유가 보장이 될 때 내부 고발이나 제보, 온전한 정치적 비판의 풀이 넓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실명방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신뢰성이 더 있다거나 더 읽어볼 만 한 가치가 있다고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맙소사. 방통위, ‘자살골’ 넣으셨어요. :)

<덧> 7월8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 인터넷 본인확인제 관련 공개변론 동영상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변론동영상‘ 코너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회원 가입이나 로그인 절차는 필요없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재생된다. 꼭 보시길 권해드린다.

(사진 : 참여연대)

네티즌의견(총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