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계, “게임이용장애 약물치료 답 아니다”

"지역사회 기반 심리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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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용장애 질병 등재는 시기상조다. 게임 중독 문제를 약물 중심의 의료적 접근으로 협소화시킨다. 지역사회 기반 심리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둘러싸고 국내 심리학계가 반대 목소리를 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를 국내에 도입할 경우 약물 중심의 의료 모델 외에 다른 치료적 접근을 차단해 오히려 제대로 게임 중독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게 심리학계 측의 주장이다.

국내 최대 심리학 학술단체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중독심리학회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화 하기엔 아직 연구가 부족하며, 지역사회 기반 심리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와 심리학계의 해묵은 갈등이 WHO 게임이용장애 문제에서도 불거져나오는 모양새다.

| 한국중독심리학회가 주관한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한국중독심리학학회는 지난 7월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조승래, 김세연, 이동섭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중독심리학회가 주관, 한국심리학회가 후원했다.

제대로 된 치료적 접근 막는다

이날 발표에 나선 신성만 한국중독심리학회 회장은 “중독은 개별적 차이, 내용이 다른데 게임이용장애는 물질 사용 및 도박 중독 기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라며 “한국에서는 과잉진단 및 사회적 낙인 문제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신성만 회장은 우선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국내에서 ‘정의’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며, ‘인과 기제’에 대해 병인론 및 병리론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병의 원인에 대해 살피는 병인론적으로 봤을 때 게임이용장애라는 진단명을 부여하기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근본적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병의 진행 과정 및 생리학적 변화를 살펴봤을 때 게임이용장애는 다른 중독 문제와 달리 게임 이용의 지속률이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등재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게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화될 경우 기대되는 이익보다 문제점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과잉진단과 사회적 낙인 효과가 우려되며, 특히 약물 중심의 의료 모델에 의존하게 하고 중간에 심리사회적 접근을 차단해 문제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법상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의 치료가 불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다뤘을 때 정신과 전문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 의료법은 특정 질병의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상담 및 조언은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 회장은 WHO 게임이용장애가 국내 도입될 경우 게임 중독에 대한 심리상담사들의 상담 행위가 의료법에 의해 처벌받을 거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신 회장은 게임과 관련된 중독 문제는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 심리사회적 개입이 전세계적 추세이며, 의료까지 가기 전에 중간 개입이 많아야 문제의 심각도가 낮아지고 회복이 잘 된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는 답이 아니다

안우영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 문제에 약물치료가 정답이 아니라고 짚었다. 게임으로 인한 신경학적 변화 근거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지만, 신경학적 변화 자체가 약물치료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안우영 교수는 “SNS에서 친구들이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다든가, 먹방, 잘생긴 사람을 본다는 것만으로 도파민이 활성화되고 여러 변화가 생긴다”라며 “신경학적 변화가 있다는 게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는 직접적 증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약물치료가 최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약물 중독의 경우 하위 유형이 다르고 이에 따라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과 치료 양상이 다른데 게임 중독의 경우 약물치료 연구 자체가 많지 않으며, 우울증 등 다른 공존 질환이 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약물치료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게임 중독의 근본적 문제는 게임이 아니며, 사회 구조적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약물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환자마다 게임 중독에 대한 양상이 다르며 약물치료에 앞서 심리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약물이 아닌 인지행동 치료를 통해서도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짚었다.

| 안우영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약물 치료가 아니더라도 심리치료에 의해서도 신경학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진영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 문제는 권위주의적 문화,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문화와도 관계있고 경쟁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라며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면, 청소년들이 겪는 고통, 사회 전반적으로 안고 있는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까지 아울러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장주 한국문화 및 사회문제심리학회 이사도 “아이들도 부모도 힘든 환경 속에서 게임이 아이들에게 숨구멍이 됐는데, 게임에 달라붙어서 문제가 될 정도로 과몰입하게 하는 요인은 사회적 문제로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영삼 동명대학교 교수는 과거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 중독대응센터’ 경험에 대해 말했다. 고 교수는 “인터넷 중독대응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 물질 중독과 이른바 인터넷 게임 중독은 차이가 있다”라며 “물질 중독은 평생 회복 단계를 거치지만, 게임 문제로 센터를 찾아오는 청소년들은 몇 년 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복됐다”라고 말했다. 또 중독이라는 용어가 과하게 남발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날 행사를 후원한 한국심리학회의 조현섭 회장은 “의료계와 밥그릇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닌, 게임 중독 문제가 있다고 할 때 무엇을 해줄지 논의하고자 하는 차원”이라며 “장기적으로 게임 중독 관련 문제를 어떻게 치료하는 게 효과적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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