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UXD] ⑥ ‘의도적인 불편함’, 29CM

2019.07.08

UX(User Experience)는 말 그대로 ‘사용자 경험’을 뜻합니다. 앱의 첫화면, 웹사이트 페이지 구성, 서비스가 가진 통일성. 당신이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접하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용자 경험인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앱·웹 그 뒤편에는 당신의 경험을 고민하는 사람들, UX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 디자인을 사수하기 위해 조직을 설득하는 노하우가 있는지 묻자 이상훈 29CM 디자인랩장은 “지금 당장 매출도 중요하지만 하루이틀만 장사할 거냐는 식으로 설득한다”라며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편집숍 ‘29CM(이십구센티미터)’ 앱은 ‘이상한 것’ 투성이다. 상품을 구경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면, 글자가 흔들린다. 처음에는 ‘버그’인줄 알았지만 수개월 째 그대로다. 상품 소개 사진은 꼭 왼쪽이 비워져 있다. ‘마이페이지’도 미스터리다. 이름이 큼지막하게 써 있고 나머지 공간은 텅 비어 있다. 이름 아래에 ‘방금 본 상품’을 볼 수 있는 타래가 만들어졌는데, 이 이미지는 또 묘한 데서 끊겨 있다. 이상훈 29CM 디자인랩장을 만나 미스터리한 점들을 묻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간결했다.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주고 싶었어요.”

에이플러스비는 2011년 온라인 편집숍 29CM를 선보였다. 29CM의 C는 ‘커머스(commerce)’를, M은 ‘미디어(media)’를 의미한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은 줄곧 ‘미디어와 커머스’의 조화를 강조해왔다. 브랜드, 쇼핑, 문화, 여행, 스타일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어 매거진처럼 꾸몄다. 이러한 전략으로 마니아층을 사로잡으면서 주목을 받았고, 2017년 거래액 300억을 달성하더니 지난해에는 스타일쉐어에 인수됐다.

뭔가 달라서 눈길을 끌었던 29CM. 그러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29CM 리뉴얼을 담당했던 이상훈 디자인랩장은 “대중적으로 가면서도 제 색깔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사용자를 낯설고 불편하게 만들기

29CM는 2014년 앱을 처음 선보였다. 앱에 대해서는 불편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직관적이지 않았고, 이리저리 헤매야만 답을 알 수 있는 미로 같은 앱이었다. 이렇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쇼핑몰 앱은 이미 포화 상태였기에, 그 틈바구니에서 경쟁하는 대신 틈새를 파고 드는 전략을 택했던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월간디자인(2015.5)>에 따르면 이때 29CM는 앱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했고, 애플에서 선정한 2014년도를 빛낸 베스트 앱 쇼핑 부문에 선정됐다. 온라인 쇼핑몰 앱으로는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모바일·앱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29CM 디자인은 플러스엑스(Plus X)팀이 담당했다.

29CM가 새로 시도한 것 중 하나는 ‘흔들리는 글자’였다. 글자가 흔들리도록 한 이유도 같았다. 달라 보이기 위해서다. 사용자 입장에서 텍스트를 읽고 정보를 파악하기에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왜 움직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은 많은 게 사라졌어요. 완전 초반에는 이미지가 하나 들어가 있고, 시계가 돌아갔어요. 1차 버전 앱은 그랬어요. 시계가 왜 돌아가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웃음) 그 다음은 인스타그램처럼 ‘피드’가 꽉 찬 형태로 만들었어요. 솔직히 커머스에서는 최악이거든요. 한 화면에 한 상품만 보이니까.”

마이페이지는 내부에서도 말이 나왔다. 여백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가, 이름의 크기는 왜 이렇게 큰가. 주문조회, 배송조회 등이 훨씬 중요한 정보 아닌가. 하지만 이상훈 디자인랩장은 “이렇게 만든다고 해서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면, 의도적으로라도 불편함을 주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전부 ‘디자인적’인 거다. 남들과 다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 이런 부분들이 합쳐진 결과다”라고 말했다.

상품 소개 사진의 왼편을 비워놓은 것도 디자인 요소다. 사용자에게 시야가 트이는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다. 최근의 예로는 ‘블랙딜’이 있다. 29CM는 3일만 열리는 블랙딜(기획전)만을 위한 전용 탭을 만들었다. 블랙딜 기간 동안에는 하단 중앙에 새로운 탭이 만들어진다. 기간이 종료되면 탭도 사라진다. 기획전 기간에만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듯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자, 블랙홀 같은 느낌을 구현하려 노력했다. 개발까지는 총 2개월이 걸렸다.

“이걸 개발하는 두 달 동안 이 일을 하느라 다른 일은 못했어요. 회사 입장에서도 크게 공을 들였어요. 사실 이런 걸 만들기 위해 그 정도 리소스를 투자하는 자체가 신기한 거예요. 보통은 기획전을 한다고 해서 앱 안에 새로운 탭을 파서 열렸다 닫히게 전환하고 이런 식으로 공을 들이지는 않죠.”

매출을 올려야 할 때, 디자이너의 고민

커머스의 법칙. 구매할 품목이 많을수록, 입점 브랜드가 다양할수록, 상품을 더 많이 노출할수록 매출이 오른다. 29CM는 한 화면에 주로 하나의 상품을 보여줬다. 콘텐츠마다 크게 공을 들였다. ‘볼 만한’ 콘텐츠가 많다는 건 장점이었다. 체류시간도 동종업체 대비 긴 편이었다. 하지만 적은 수의 브랜드를 집중해서 보여줬기에, 매출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상훈 디자인랩장은 “팬층이 있었는데, 폭넓지는 않았다. 콘텐츠를 보기만 하고 상품은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구매 전환율이 낮았다”라며 “의미 없는 여백을 넣고, 커다란 이미지를 보여주고 하는 게 (29CM) 매력이지만 사실 다른 데서는 이해를 못 한다. 왜냐하면 커머스는 하나라도 더 보여줘야 매출이 오른다는 게 데이터로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에게는 마음이 아프지만, 플랫폼은 갈수록 대중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리뉴얼하면서 대중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아마 떠난 충성팬도 많을 거예요. 어느 정도 감안하고, 그 안에서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죠. 지금은 많은 게 사라졌지만 예전 팀이 만들었던 ‘흔들리는 글자’는 상징적으로 꼭 살리고 싶어요. 이건 태클도 없어서. 하하.”

|29CM가 시도했던 가상의 존재, ‘루시’는 그에게 가슴 속 돌 같은 존재다. 아쉽게도 개편 과정에서 루시는 빠지게 됐다. “29CM 인공지능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2018년 리뉴얼을 하면서 PC 중심으로 설계돼 있던 29CM를 모바일 중심으로 바꿨다. 프론트부터 어드민까지, 인프라를 한번에 바꿨다. 모바일과 PC, 어디서나 콘텐츠를 제작 및 배포할 수 있도록 전용 에디터 툴도 함께 개발했다. 그는 ‘겁’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몰라서 그랬던 거고 그래서 오래 걸렸죠. 개편하고 시스템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져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리뉴얼한 앱은 혹평을 받았다. 디자이너가 편의성은 고려하지 않고 멋만 부렸다는 평가를 들었다. 일부러 불편하게끔 구성한 면도 있었지만, 실수도 있었다. 이상훈 디자인랩장은 8년여 동안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주로 그래픽 디자인을 해왔다. 그는 같은 경력의 UX/UI 디자이너에 비해 경험이 부족해, 전체 인프라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개편 초기에는 상품목록을 볼 때 무한로딩이 된다거나, 카테고리 이동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시스템상 빈틈이 많았다. 사용성 테스트를 충분히 하지 못한 탓이었다. 앱을 내놓고 6개월 동안은 개선하는 작업만 해야 했다.

이상훈 디자인랩장은 “실제로 좀 써보면 말도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을 거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봐도 구멍들이 다 보였을 것”이라며 “예쁜데 불편하다, 딱 맞는 표현이다. 사실 커머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어 “불편한 디자인은 가지고 가도 사용성까지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개편을 통해 상품을 최대한 노출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자 했지만 아직도 역부족이다. 개편 이후 상품과 브랜드가 2.5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29CM의 ‘덩치’가 생각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있을 개편에서는 비대해진 규모를 효과적으로 소화해내는 게 목표다. 커머스에서는 안 쓰는 방식을 통해 비슷한 효율을 내면서도 ‘다름’을 고수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과 같은 인터랙션을 예시로 들었다.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간단해요. 영역을 많이 쪼개고 그만큼을 보여주면 됩니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노출을 안 하고 버틸 수는 없어요. 어떻게 최대한 29CM스럽게 보여주느냐가 제일 큰 고민이에요.

이 정도 불편은 주자. 이런 얘기를 디자이너가 안 하면 누가 할까요. 디자이너가 지켜야 하는 고집이 있습니다. 고집을 지켜내지 않으면 브랜드는 금방 무너져요. 조직은 매출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게 본인의 일이니까요. 저는 저의 일을 하는 거지요.”


[UXD] 인터뷰 시리즈

①토스는 한 가지 질문만 남겼다

②텀블벅, 창작자-후원자 징검다리를 설계하다

③“브런치에선 읽고 쓰기만 하세요”

④부동산 정보로 전국민 ‘호갱’ 탈출

⑤만화 속 세상을 그린다, 다음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