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만...?

[친절한B씨] 인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고요?

2019.07.22

“두뇌 풀 가동!”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이 문구는 현대인의 간절함을 대변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쏟아지는 시대, 사람들은 ‘두뇌 풀 가동’을 외쳐보지만 이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며 뇌에 컴퓨터 칩이라도 박았으면 하는 공상을 하곤 합니다. ‘미래 설계자’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는 이 공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1억달러(약 1175억원)를 투자한 기업 ‘뉴럴링크’는 지난 7월16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를 통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 뉴럴링크는 뇌와 귀 뒤에 부착한 작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 (사진=뉴럴링크)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오래된 미래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에 대한 상상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1984년 사이버펑크 장르를 개척한 윌리엄 깁슨의 SF 소설 ‘뉴로맨서’에서는 소켓 방식으로 뇌와 직접 연결된 작은 카트리지가 등장합니다. 작중에서 인간은 이 장치를 통해 새로운 언어 등 지식을 바로 습득할 수 있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은 ‘공각기동대’입니다. 1989년 연재가 시작된 만화 ‘공각기동대’에는 인간의 뇌를 전자화시키는 ‘전뇌’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에서는 뇌와 컴퓨터를 결합해 별도의 장치 없이 직접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화 ‘공각기동대’ (사진=네이버 영화)

이른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혹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현실에서도 오래전부터 연구가 이뤄져 왔습니다. 1970년대부터 BCI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뇌파를 이용해 기계를 조작하는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BCI 기술은 뇌파나 뇌세포의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는 장치를 통해 뇌와 외부 기기 간 직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BCI 기술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두뇌 신호를 받기 위해 두개골을 뚫고 전극을 삽입하는 침습형과 전극을 삽입하지 않고 신경영상기술을 사용하는 비침습형 등입니다. 침습형은 더 정확하게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수술로 인한 부작용이 단점이며, 비침습형은 수술이 필요 없고 간편하지만 신호가 부정확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미국 국방성은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통해 오랫동안 BCI 관련 연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DARPA는 이미 사지 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조작해 물을 마시는 연구 결과물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라식하듯 간편한 뉴럴링크의 BCI 기술

뉴럴링크는 지난 2016년 일론 머스크가 비공개적으로 약 1억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BCI 스타트업입니다. 지난 2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이 기업은 이번에 처음으로 연구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뉴럴링크가 발표한 기술은 침습형 BCI입니다. 뉴럴링크는 머리카락 4분의 1 두께의 얇은 실 모양 전극을 뇌에 이식해 무선으로 컴퓨터와 신호를 주고받는 BCI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 유연한 실은 기존 방식보다 뇌 손상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진보된 기술로 평가받습니다. 기존에는 딱딱한 바늘 같은 전극을 삽입했는데, 뇌는 두개골 안에서 움직이지만 이 뻣뻣한 전극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뇌 손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뉴럴링크는 신축성 있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미세 폴리머 소재를 사용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 셈이죠.

| 뉴럴링크의 BCI 기술 개념도 (사진=뉴럴링크)

또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가 만든 백서에 따르면 96개의 실에 걸쳐 분산된 배열당 3072개의 전극이 들어가 있습니다. 뉴럴링크는 실험용 쥐의 두개골에 실 모양 전극을 삽입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쥐의 뇌에 삽입된 약 1500개의 전극으로부터 정보를 읽는 모습을 시연했는데, 이는 현재 인간 뇌에 삽입된 전극 수보다 15배 향상된 수준이라고 합니다. 실험은 USB 타입C 기반의 유선 연결을 통해 이뤄졌지만, 뉴럴링크는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게 목표입니다.

| 자동으로 실 모양 전극을 삽입하는 수술 로봇 (사진=뉴럴링크)

뉴럴링크는 이 실들을 자동으로 뇌에 삽입하는 신경외과 수술 로봇도 함께 발표했습니다. 마치 재봉틀처럼 얇은 바늘을 사용해 전극 실을 삽입하는 이 기기는 컴퓨터 비전 시스템을 활용해 뇌 표현의 혈관을 피해 수술을 진행합니다. 수술 로봇은 분당 6개의 실(192개 전극)을 삽입할 수 있으며, 이 실들은 필요에 따라 다른 위치에 다른 깊이로 삽입될 수 있습니다. 뉴럴링크에 따르면 현재는 드릴로 두개골 구멍을 뚫어야 하지만, 추후에는 레이저로 라식 수술을 받는 것처럼 편안하게 전극을 삽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장애 치료용으로 시작…궁극적 목표는 AI와의 공생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기술의 목표는 장애를 극복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신체 마비, 절단 등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를 로봇 의수와 연결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거나, 시각·청각·언어 장애 등을 겪는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뉴욕타임스>는 맥스 호닥 뉴럴링크 대표가 자사 기술이 가까운 미래에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일론 머스크의 낙관론을 공유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질의응답 시간에 나타난 일론 머스크는 “이 시술을 받은 원숭이가 뇌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뉴럴링크는 스탠포드 대학 신경외과 의사들과 초기 실험을 수행할 계획입니다. 뉴럴링크는 내년 2분기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절차를 통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FDA와 환자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 결과가 인간 대상 실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경고했습니다. 또 이번에 발표된 성과에 대한 학계의 검증도 필요합니다. 뉴럴링크 역시 기술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인정했습니다.

|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뉴럴링크의 ‘N1 센서’ (사진=뉴럴링크)

뉴럴링크가 목표로 하는 인간 대상 BCI 기술은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도록 설계된 ‘N1 센서’ 칩을 통해 구현될 예정입니다. 뇌로 삽입된 이 센서는 환자의 귀 뒤에 부착된 별도 기기로 데이터를 전송하게 됩니다. 이 기기는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호닥 대표는 이 같은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환자가 생각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입력하거나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고, 웹 페이지를 탐색하는 게 가능해질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 귀 뒤에 부착된 컴퓨터는 스마트폰 앱과 연동된다. (사진=뉴럴링크)

일론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공지능(AI)와의 공생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AI로부터 인간이 뒤처질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지속해서 밝혀왔는데요, 장기적으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기술을 통해 인간과 AI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AI 비관론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입니다. BCI 기술이 고도화될 경우 ‘두뇌 풀 가동’의 꿈이 이뤄질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