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이 능사는 아니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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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문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 분류 결정 이후 게임 업계를 중심으로 결집한 목소리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목소리는 양극화됐다. 게임 중독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게임이용장애 도입이 필요하다는 측과 다양한 문화 중 하나일 뿐인 게임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연장선이자 낙인효과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러 토론회가 열리고 국무조정실 주재의 민관협의체까지 출범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논의는 공회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결정 이후 약 석 달째. 여전히 양극단의 진영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8월2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게임 질병코드 분류, 사회적 합의 방안은’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도 찬반 양측의 고성이 오가며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초반의 과열된 논의를 넘어 중간지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 ‘문화의 시선으로 게임을 논하다’ 학술세미나

지난 21일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와 문화연대는 서울 삼성동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문화의 시선으로 게임을 논하다’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는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만으로는 진영 논리를 넘어 생산적 담론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게임, 문화이긴 한데…

이날 행사에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회를,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고,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김영진 인천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경혁 게임평론가, 계인국 고려대학교 정부행정학부 교수가 토론에 참석했다. 이종임 집행위원은 주로 문화적 관점에서 게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한편, 특정 분야의 수익성 높은 게임 개발에만 집중한 게임 업계가 게임에 대한 중독 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임 집행위원은 “게임의 역사, 게임 비평, 게임 개발자, 게임 이용자,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생산되는 게임 그리고 놀이문화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기준으로 이해할 건인지에 대해서 꾸준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라며 “동시에 게임 산업의 특정한 분야에만 집중되는 산업육성 방식 역시 변화를 모색해야지만 경제적 논리 이외의 게임 산업 육성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 가능한 문화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한국 게임 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등 수익성 높은 게임에 집중해 이용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플리커, m-louis .® CC BY-SA 2.0)

박종현 교수는 국가가 문화에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헌법상의 ‘문화국가원리’를 들며 게임이용장애가 이에 위배될 가능성을 짚었다.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될 경우 그림자 규제, 우회 규제 등을 통해 게임 문화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법학자인 김영진 교수 역시 헌법 규범 테두리 내에서 게임이용장애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임이용장애 둘러싼 이분법 벗어나야

이어진 토론에서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게임 문화론의 한계를 짚었다. 단순히 게임 중독론의 대척점으로써 문화론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논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용자들로부터 한국 게임 업계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은 문화’라는 슬로건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게임은 그것을 만지는 장님이 누구냐에 따라 문화도 될 수 있고, 산업도 될 수 있고, 중독물이 될 수도 있는 코끼리”라며, 거친 이분법은 게임의 다면성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강신규 편집위원은 게임은 문화이기에 게임 중독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대신, 게임 중독론을 세밀히 분석해 구체적인 대응 논리를 마련하고 근거를 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역시 WHO의 게임이용장애 자체를 갖고 게임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문제 삼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현상을 부정하긴 어려우며, 게임을 중독이 아닌 문화로 얘기하기엔 실천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 이슈 역시 포괄해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계인국 교수는 게임을 커피에 비유했다. 커피가 몸에 좋다는 주장과 나쁘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이유를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커피를 둘러싼 수많은 사실이 발견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게임이용장애 역시 이러한 과정의 일환이라고 짚었다. 어떤 물질이 몸에 들어갔을 때 단선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게임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빼고 ‘게임은 문화다’라고 긍정적인 부분만 얘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찬반 논의는 다양한 시선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지난 6월21일 사단법인 오픈넷과 함께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게임이용장애를 논의하는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심리학계에서도 지난 7월4일 한국중독심라학학회 주최의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토론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편, 지난 7월 국무조정실 주도로 꾸려진 게임이용장애 민관협의체는 9월 초 2차 회의를 열고 게임이용장애 도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계 각국의 질병분류에 가이드 역할을 하는 WHO의 ICD-11은 2022년 1월 발효되며, 이를 반영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은 이르면 2025년부터 가능(2026년 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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