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13th] 노인을 위한 IT는 없다

생존의 문제로 치닫고 있는 노인 정보격차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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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오늘날 일어나곤 한다. 스마트폰,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같은 다양한 기술 혁신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기술 발전이 가져온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놓치고 가는 부분은 없는지 <블로터>가 창간 13주년을 맞아 짚어봤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자존심이 상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람 대신 기계와 마주한 노인의 심정은 어떨까. 70대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통한 주문 과정에 대해 “햄버거를 먹고 싶어도 못 먹겠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편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불고기 버거를 주문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무인 판매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초과되고 기기는 다시 초기 화면으로 돌아간다. 카드 투입구를 찾는 일도 어렵다. 박막례 할머니는 글씨 크기가 작아서 안 보이고, 기기 높이가 안 맞아 의자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70대 노인의 입장에서 키오스크 사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진=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갈무리)

극장이나 철도, 공항에서 표를 끊을 때, 햄버거를 주문할 때 기계와 마주하는 일이 익숙한 시대다. 업체 입장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인건비 및 운영비를 줄일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줄을 길게 서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 하지만 노인들은 늘어나는 키오스크로 인해 오히려 불편을 겪고 있다.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바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예매 탓에 명절 때 기차표를 사지 못하거나 기차에서 서서 가는 노인들의 모습도 언론의 단골 기사가 된 지 오래다.

생존에 영향 미치는 노인 정보격차 문제

정보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기술로 연결되는 정보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의 보유 여부가 경제·사회·문화적 격차로 확산돼 불평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정보격차 문제는 노인을 비롯한 사회 소외계층에게 가중된다. 최근 무인점포가 늘면서 정보격차 문제는 먹거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패스트푸드점의 절반 이상은 키오스크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롯데리아는 전국 1350개 매장 중 61%인 826개 매장에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맥도날드는 420개 매장 중 60%, 버거킹은 300여개 매장 중 68% 수준의 도입률을 보이고 있다.

| 롯데리아에서 운영하는 무인단말기

하지만 이를 쉽게 활용해 쓸 수 있는 노인은 많지 않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종합적인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63.1%에 불과하다.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등 4대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스마트폰이나 PC 등 기기 보유 여부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지로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90.1%다. 컴퓨터 이용능력과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을 따지는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은 50%, 인터넷 서비스를 얼마나 다양하고 깊게 활용하는지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활용 수준’은 62.8%에 불과하다.

노인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 환경은 갖춰졌지만 이를 이용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는 얘기다. 모바일 기기 이용 능력 면에서 필요한 앱 설치 및 이용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답한 장노년층은 41%로,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까지 합치면 60.3%에 달하는 장노년층이 스마트폰 앱을 잘 활용할 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2018년 국내 연령별 디지털정보화 수준 (출처=한국정보화진흥원)

장노년층에 맞는 실질적 교육 필요

이 같은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정부는 정보격차 문제와 관련해 2000년대 초부터 정보화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대응해왔다. 2009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은 ‘국가정보화 기본법’으로 통폐합돼 현재는 ‘국가정보화 기본법’ 제31조(정보격차 해소 시책의 마련)에 근거를 두고 정보화교육이 여러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 주로 주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정보화교육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교육 관련 예산은 지속해서 줄고 있다. 과기정통부의 정보격차해소지원 예산은 지난해 124억1300만원에서 올해 113억6500만원으로 8.4% 줄었다. 관련 예산은 2016년 135억1800만원, 2017년 125억4300만원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정보격차해소를 위한 정보화교육사업 실태 및 개선방안’ 보고서는 정보화교육 관련 예산 감소에 대해 “변화된 정보격차 및 정보소외 양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정보취약계층의 등장과 정보격차 현상에 대응하는 양질의 정보화교육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예산 감소가 정보화교육 강사의 고용과 처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지원 대상 계층별·지역별 교육 환경 편차가 크다고 짚었다. 해당 보고서에서 한 복지관 관계자는 “정보화교육을 지원하는 보조강사는 자원봉사를 해주는 분”이라며 “예산이 없어 도움을 받기도 미안하고, 교통비 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예산의 한계로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교육 현실을 토로했다.

무인 주문 기기로 햄버거를 구매하는 노인

|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구매하는 노인

정보화교육이 PC 위주로 이뤄져 막상 노인들에게 필요한 모바일 예매나 키오스크 사용법 등 실질적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이러한 지적을 수용해 교육 내용을 개편하고 있다. 주윤경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포용기획팀 수석은 “현재 키오스크나 모바일 예매와 관련한 체감형 교육을 추진 중이며, 올해 연말까지 노인분들이 키오스크를 가상으로 체험하고 결제까지 해보는 VR 콘텐츠를 개발하고 한국정보화진흥원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교육해볼 예정”이라며 “내년에는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 PC 중심의 교육을 모바일로 전환해 현재 50% 이상의 교육이 모바일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됐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예산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지자체와의 협력과 더불어 민간 기업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 등 민간과의 협업으로 예산 부족을 극복하고 있다”라며 “요즘 얘기되는 최신의 정보격차 문제에 맞춰 어떻게 예산을 잘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접근성’ 낮은 키오스크 개선도 있어야

키오스크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을 기준으로 제작돼 노인이나 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막례 할머니의 사례처럼 작은 글씨 크기와 터치스크린이 높게 설치된 점 등이 대표적인 문제다. 정보의 출력 시간이나 입력 제한 시간이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져 몸이 불편한 사용자가 쓰기에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현재 국내 키오스크 기기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김석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접근성 측면에서 키오스크 관련 표준이 만들어져 있는데 큰 글씨를 사용해야 하거나 손 떨림이 있는 노인들이 조작하기에 어려움 없는 터치 버튼의 크기 등 노인 관련 항목들이 여러 가지 있다”라며 “지금은 거의 지켜지는 데가 없고 그나마 공공부문은 많이 개선됐지만 패스트푸드점, 커피점, 터미널 같은 일상에서 접하는 키오스크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석일 교수는 “표준을 강제화하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되어야 하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 국가정보화기본법 시행령에 키오스크에 대한 내용을 넣어야 한다”라면서도 “키오스크에 대한 실태 조사가 이른 시일 안에 완료돼야 어느 영역부터 의무화할 것인지, 의무화를 한다면 법제화는 어떤 단계를 거쳐서 할 것인지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법제화를 위한 기초 자료가 없는 탓에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현재 장애인, 고령층도 이용할 수 있도록 키오스크 현황을 조사 중이며 접근성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지키고 있는지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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