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단위 업무시간 측정…게임 업계 포괄임금제 폐지 이후

5분~15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노동시간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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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 ‘3N’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면서 촘촘한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5분 혹은 15분 이상 업무 공간에서 자리를 비우면 노동시간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적받아온 포괄임금제 폐지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노동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해당 시스템에 따르면 흡연을 하거나 커피를 사러 가는 시간도 일하지 않은 시간으로 기록된다. 흡연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된다는 고용노동부의 지침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넥슨은 지난 8월,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는 10월부터 포괄임금제를 잇달아 폐지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근로 등 시간 외 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임금 제도다. 그동안 게임 업계는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가 많아도 고정적인 급여를 지급한 탓에 장시간 근로를 부추긴다고 지적해왔다.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업무시간 파악 시스템을 도입했다. 포괄임금제 폐지에 맞춰 야근을 줄이고, 시간외근무수당을 정확히 정산하겠다는 의도다.

분 단위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

넥슨은 8월 포괄임금제 폐지 이후 9월부터 PC를 통해 업무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15분 이상 컴퓨터가 동작하지 않으면 PC에 ‘자리 비움’ 메시지가 뜨고, 직원 스스로 버튼을 눌러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노동시간에서 공제하는 방식이다. 업무와 관련해 자리를 비웠다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또 출근 후 11시간이 넘으면 사유 없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넥슨 측은 “자동으로 시간을 공제하지 않고 자율로 맡기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사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넷마블 역시 PC에 기반한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PC 비가동시간이 15분이 넘으면 노동시간에서 제외된다. 휴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직원이 시스템 내에서 이를 소명해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넷마블은 “직원들이 스스로 업무시간을 결정하고 보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하기 위함”이라며 “포괄임금제 폐지로 임직원의 업무 효율성 및 워라벨 증진은 물론 건강한 기업문화가 더욱 확고히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엔씨는 업무 공간과 비업무 공간을 구분해 노동시간을 확인한다. 비업무 공간으로 분류된 옥상 흡연실, 사내 카페, 피트니스, 스파, 사내 병원 등에 5분 이상 머물면 해당 시간만큼 노동시간에서 제외된다. 업무 공간과 비업무 공간 사이에 출입증을 인증하는 게이트를 놓고 노동시간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해당 공간에서 미팅, 회의 등의 업무를 했다는 내용을 소명하면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이처럼 게임사마다 노동시간 측정 방식은 다르지만, 흡연이나 커피를 사러 가는 시간 등을 업무 외 시간으로 분류하는 등 직원 개개인의 업무시간을 분 단위로 촘촘히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조는 비슷하다.

엇갈린 게임 업계 내부 반응

이 같은 시스템에 대해 직원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일한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촘촘한 업무시간 관리에 대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이 개인에 대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넥슨 직원은 “정말 자율로 업무시간 관리를 한다면 ‘자리 비움’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자리를 비운 시간에 대해 놔둬야 하는데 어디 갔었는지, 뭐 했는지 묻는 소명 요청도 일부 있기 때문에 자율인지 감시인지 헷갈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넥슨 직원은 “처음 도입 당시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진 않았고 화장실을 좀 길게 다녀오거나 다른 사람 자리에서 업무 얘기를 하다 보면 15분을 초과해 ‘자리 비움’이 떠서 불편하긴 한데 이런 케이스에 대해선 다들 무시하고 사측에서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 “원래 별도의 야근 수당이 없는 분위기였다가 지금은 사유가 있으면 제대로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사측에선 ‘야근을 할 정도로 일을 시키지 말자’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엔씨에 재직 중인 한 직원은 “근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회사 내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상태”라며 “개인적으로 바뀐 근로 시스템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실근로시간을 분 단위로 측정하는 것이 너무 타이트하다거나 게이트 출입 시 현재 5분으로 체크되는 시간을 조정해달라는 등의 의견들이 꾸준히 사내 포털이나 블라인드 등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흡연·커피 노동시간 불인정, 고용노동부 지침과 달라

관건은 어디까지를 노동시간으로 볼 것인지다. 각 회사는 업무와 관련된 일을 했다고 소명하면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준다는 방침이다. 이는 업무와 관련성이 떨어져 보이는 행위는 모두 노동시간에서 제외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게 흡연과 커피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과 관련해 가이드를 내면서 업무 도중 흡연이나 커피를 사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50조3항에 명시된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는 내용과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내린 결론이다. 상사가 부르면 바로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상황은 ‘휴게시간’이 아닌 노동시간에 포함되는 ‘대기시간’이라는 얘기다.

| 정부는 흡연 및 커피 시간을 노동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사진=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카드뉴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 이상인 주무관은 “업무시간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법 위반은 아니다”라면서도 “커피·흡연 등은 온전히 사용자 지휘·감독에 벗어나서 쓰는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휴게시간으로 볼 수 없고 근로시간에서 제외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 “이를 근로시간에서 일방적으로 제외하는 건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다”라며 위법 가능성을 짚었다.

이달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스마일게이트의 경우 업무시간을 강제 차감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신 직원이 근무 계획을 올려 관리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조 지회장은 “의견수렴을 거쳐 인권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고려, 회사와 논의해 대기시간을 근무시간에서 빼는 형태의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펄어비스도 업무시간을 체크하는 대신 야근 등 추가 업무시간에 대해서만 확인해 보상한다. 지나친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이 개인의 창의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법적으로 여기저기서 해석의 다툼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IT는 창의력이 필요한 업종인데 그동안 장시간 노동을 포괄임금으로 주어서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은 것을 사과하지 않고, 자율성을 억압하고 감시 성격이 강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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