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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본인확인제’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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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 하루 동안 ‘블로터닷넷’이 평소보다 유난히 더 시끄러웠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알려진 ‘인터넷 실명제’ 때문이다. 한 일간지에서 ‘블로터닷넷’이 적용한 ‘소셜 댓글’에 대해 기사를 내보내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을 보내주셨다.

‘배경’을 좀 설명드려야겠다. ‘블로터닷넷’은 올해 4월, 그동안 운영하던 덧글 게시판을 스스로 폐쇄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불씨였다. 올해 2월 ‘블로터닷넷’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 웹사이트로 지정됐다. 하루평균 방문자가 10만명이 넘는 웹사이트 게시판에 대해 본인확인을 의무화하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에 따른 조치였다. 고민끝에 ‘블로터닷넷’은 덧글을 없애는 방법으로 본인확인제 대상에서 스스로 빠졌다. 게시판 기능을 없앰으로써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소통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온 해법이 ‘소셜 댓글’이다. 기사에 대한 의사소통 방법이 로그인하고 본인 확인을 거쳐 기사 밑에 다는 덧글 뿐인가. 트랙백과 핑백, 다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이용한 의사 교환이 자유로이 이뤄지는 시대 아닌가. 외부의 열린 의견들을 받아 보여주는 게 더 현명하고 알찬 소통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소셜 댓글’이란 이름으로 열린 네트워크 의견들을 받아들이게 된 게다.

SNS를 타고 ‘블로터닷넷’에 흘러들어오는 의견들은 엄밀히 말하면 실명제에서 비껴난 글들이다. 예컨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외국 서비스들은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는다. 아이디와 e메일 주소만 넣으면 e메일 인증 절차를 거쳐 손쉽게 계정을 만들고 글을 올릴 수 있으니까. 이렇게 올린 글 역시 다른 사람이 회원 가입을 하거나 로그인하지 않고도 언제든지 해당 주소로 접속해 열람할 수 있다. 시쳇말로 ‘민증 까지 않아도’ 누구나 쓰고 읽을 수 있는 글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글을 올린 사람은 정말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새다. 주민등록번호나 아이핀 같은 제도적 본인확인 수단보다 더 넓고 촘촘한 ‘사회적 본인확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대표 논리는 ‘악플과 사이버 범죄 예방’이다. 그렇다면 소위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선 악플이나 비방, 사이버 범죄가 더 난무할까. 소셜 댓글을 보면 정반대다. 장난끼나 악의적 공격이 담긴 글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기사에 대한 본인 생각이나 의견을 진지하게 개진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실명 확인을 안 하면 무차별 인신공격이나 비방, 악의성 비난이 난무해야 할 텐데.

이를테면 SNS의 ‘사회적 본인확인제’ 덕분이다. 예컨대 트위터에선 주민번호로 신분을 확인하지는 않지만, 느슨한 본인확인 문화가 이미 퍼져 있다. 트위터는 정보유통망이자 의사소통망이다. 더 유용하고 알찬 소식을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히 전달해주는 이용자가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공간 말이다. 반대로, 휘발성 농담이나 인신공격성 글, 비아냥과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은 ‘팔로어’에 의해 자연스레 외면당하게 된다. 그건 트위터가 정한 규칙이 아니라, 수많은 이용자들이 대화하고, 퍼뜨리고, 반응하며 자연스레 만들어낸 문화다.

그러니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도 이 공간에선 당연한 일이 됐다. 내가 올린 글은 오롯이 내 공간에 저장된다. 엉뚱한 글을 올렸다면 지울 순 있지만, 이미 다른 이용자에 의해 퍼진 글은 주워담지도 못한다. 이런 글들은 많은 검색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노출되기도 한다. 진중하고 사려깊은 대화를 위해 스스로 몸단장을 할 수 밖에.

소셜 댓글은 이런 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영역이다. 일반 웹사이트에 적용된 덧글과 정반대 구조다. 여느 덧글 게시판이 이용자가 들어와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주막’이라면, 소셜 댓글이 머무르는 공간은 내 글이 오롯이 저장되는 ‘집’과 같다. 주막에서야 기분내키는 대로 술주정을 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내 집에 침을 뱉고 낙서를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스스로 단장하고 청소해야 하는 내 공간이기에.

굳이 본인 확인 제도를 갖다붙이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SNS에선 자신을 드러낼 수록 본인이 올리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 올라간다. 여기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주민번호나 아이핀을 이용한 강제적 본인확인이 아니다. 스스로 필요를 느껴 자신을 밝히는 인증 방식이다.

SNS가 어떤 곳인가. 친구들과, 동료들과,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활동하려면 굳이 SNS에 올라탈 이유가 있을까. 조용히 의견을 듣거나, 나만의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관계와 소통으로 엮인 그물망, 그 곳이 SNS이니까.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이용자를 확인할 수 있는 건 SNS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트위터만 봐도 그렇다. 김미화, 박용만, 김주하, 김제동씨 등 많은 유명인들이 스스로 신분을 드러내고 활동하고 있다. 본인이 슬쩍 다른 사람을 가장해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내 지인들이 신분을 ‘일러바치는’ 일도 다반사다. 한두 사람을 건너뛰다보면 자연스레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본인확인제’가 형성된 공간인 셈이다. 요컨대, ‘신뢰 기반 커밍아웃 독려 시스템’이랄까.

실명제를 지지하는 쪽은 말한다. 왜 떳떳이 신분을 밝히고 의견을 남기려 하지 않느냐고.

떳떳하지 못하기에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건 틀린 말씀이다. 이를 강제하는 제도적 규제가 억압적이고 숨막히기 때문이다. 자율 의사에 맡겨도 문제될 건 없다. 서비스 사업자가 판단하고, 이용자가 평가하면 될 일이다. 실명제를 강제 적용해도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사이버 범죄나 신분 도용 문제를 막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보관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과 위험이 문제다.

신뢰 기반 사회적 본인확인 시스템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법이나 기술이 강제하는 본인 확인이 최선의 대안일까. 요즘처럼 온라인 사회관계망이 발달하고 정보가 실시간 유통되는 시대라면 달리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제도로써 본인 확인을 강제할 게 아니라, 스스로 신분을 드러냄으로써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음을 느끼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믿음의 날줄, 관계란 씨줄로 엮은 거름망의 영특한 자정 능력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잖은가.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marc_smith/.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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