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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라이더, ‘플랫폼 노동’ 아니라 ‘디지털 특고’”

2019.10.23

“한국의 배달대행은 플랫폼 경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존에 있던 라이더를 배달대행기사로 바꾸는 것이 혁신인가요? 기존의 ‘특수고용노동’을 디지털 플랫폼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해요.”

지난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원래 존재하던 근로자를 ‘특고’ 신분으로 바꾸는 과정”이라며 “이런 기술 혁신이 노무관리에서는 혁신일 수 있으나 사회혁신은 결코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 배달을 하다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한 박정훈 위원장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IT기업들이 “발달된 기술을 인력관리에만 활용하는 건 (사회적) 퇴보에 가깝다”라며 “기술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패스트푸드, 배달대행업체 등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지난 5월1일 공식으로 출범, 9월 기준 100여명의 라이더(배달기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박정훈 위원장은 3년 전부터 마포구에 위치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라이더로 일해왔다. 지난해 여름, 라이더에게 ‘폭염수당’ 100원 지급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3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배달대행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를 뜻하는 ‘신(新) 특수고용노동자(이하 디지털 특고)’는 55만여명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디지털 특고에 대한 뚜렷한 정의가 없어,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라이더유니온이 탄생한 배경이다.

로그인 정해져 있는 ‘한국식’ 플랫폼 노동

플랫폼 노동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번다.” 앱에 ‘로그인’을 하면 출근이고, ‘로그아웃’이 곧 퇴근이다. 전업보다는 부업 성격이 강하다.

유연한 일자리인 만큼 지휘·감독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배달업종의 경우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OO지역 주문폭주’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 배달을 독려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우버이츠(UberEATS)가 있다.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는 누구나 배달원으로 등록하고 일할 수 있어 인기다. 국내에서도 쿠팡이츠·배민커넥트·부릉프렌즈 등 비슷한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 배달은 배달대행업체와 계약한 라이더의 몫이다. 소비자가 배달앱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원이 따로 없는 가게는 부릉(메쉬코리아), 바로고, 생각대로 등 배달대행 플랫폼에 배달을 요청한다. 배달대행업체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계약한 라이더는 플랫폼에서 콜을 잡고 배달에 나선다.

문제는 배달대행업체가 라이더의 출퇴근 시간, 휴무 등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처리되지 않는 주문 건을 라이더에게 ‘강제배차’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해외에서 말하는 플랫폼 노동은 중간관리자나 출퇴근이 따로 없어, AI 알고리즘의 사용자성 여부와 같은 고차원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라며 “반면에 한국의 (배달대행) 플랫폼 사업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행업체가 플랫폼 기업과 위탁계약을 맺고, 지휘·감독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했으면 개인사업자처럼 일해야 한다”라며 “지금은 기업의 위장도급 ‘꼼수’나 다름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료 현실화해야…디지털 노동운동도 상상할 때”

라이더는 건당 3천원 안팎의 배달료를 받는다. 시간이 돈이고, 속도가 경쟁력이다. ‘일한 만큼 번다’는 플랫폼의 구호는 달콤하다. 노무 제공자를 손쉽게 ‘무제한 노동’으로 안내한다. 라이더의 평균 벌이는 200만원에서 300만원 내외지만 몸을 혹사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박 위원장은 “신호위반, 도로의 무법자가 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배달산업의 부작용은 살인적인 강도로 ‘자기착취’적인 노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숨 건 질주’로 피해를 입는 건 시민입니다. 배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누군가는 배달을 해야 해요. 대가를 치러야 하죠. 그런데 책임은 기사에게 전가되고 있고, 정작 배달의 주체인 플랫폼은 오토바이 하나 없이 돈을 벌며 ‘혁신가’로 여겨지고 있어요. 이게 4차산업혁명의 허상입니다.”

박 위원장은 배달대행업체의 창업 문턱이 낮아 △배달단가 인하 경쟁 △사고시 안전조치 미비 △운전면허 확인 소홀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처럼 최소한의 배달단가를 정하는 ‘안전배달료’ 제도를 도입하고, 배달대행업을 허가제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전을 위해 라이더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디지털 특고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쟁의조정신청을 거쳐 플랫폼 ‘서버 다운’ 권한을 얻어내거나, 배달대행 프로그램에 노조 게시판 ‘탭’을 개설하도록 요구하는 식이다. 플랫폼이 집적하는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하는 발상도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데이터의 원천은 대중에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대적하려면 오프라인에서 벌이는 시위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 떠올린 생각들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조직화가 어렵습니다. 경쟁자가 사라지면 ‘단가’가 올라가니 오히려 파업을 반기기도 하죠. 앞으로 노동자가 단결해서 싸울 권리를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플랫폼 점거 같은 다양한 상상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