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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헤밀턴과 H. 케언즈가 번역한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모은책 <대화편 전집>(The Collected Dialogues)에 보면 소크라테스가 ‘책이 이성을 죽인다’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책이란 질문을 던져도 언제나 같은 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성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했던 진정한 이성적 사고란 무엇인가. 대화를 통한 상호 논증적인 사고다. 대화를 통한 학습법으로 유명한 그의 ‘산파술’을 생각하면 납득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에게 이성이란 대화를 통한 진정한 자기의 발전과 완성이었다.

2천년이 흘러 캐나다의 언론학자였던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주장했다.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교과서 등을 통해서 한 번쯤은 접해봤을 이야기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사실 생각보다 파격적인 주장이다. 맥루한은 어떤 미디어가 사회의 주류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의 메시지가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맥루한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의 사회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그의 저서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TV에 의해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 매체의 성격이 변함에 따라 담론의 형식도 변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정치적 활동을 위해 활자 홍보물을 사용했던 미국 사회 초기에서는 링컨과 더글라스가 한 사람당 서너 시간씩 넉넉한 시간동안 토론을 벌였었다. 심지어 토론을 듣다 지친 참석자들을 배려해 일단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모여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3분 토론이다. 그 차이는 정통 레스토랑에서 풀 코스로 음식을 즐기는 것과 3분 카레로 급한 아침을 떼우는 것의 차이만큼 크다. 포스트먼은 그렇게 활자 이후 세대는 모든 것이 ‘쇼 비즈니스’로 전락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빠르고, 쉽고, 편하지만, 그러나 정신적 건강과는먼 지식의 세대가 ‘오늘’이다.

여기까지가 책의 등장부터 활자의 몰락까지에 대한, 위대한 지식인들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옳지 만은 않았다.

[사진 : 위키피디아]

먼저 책의 등장이 이성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책의 기록과 보존과 전달이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 자체가 위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책이 이성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면, 왜 진시황제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행해야만 했을까. 왜 르네상스는 고전의 부활이었을까. 근대 정치사의 문을 연 마키아벨리는 왜 퇴근 후 의관을 정제하고 고전을 숙독하는 것이 일이었을까.

또, 책 뿐만 아니라 활자도 살아 있다. 인터넷의 정보는 텍스트로 이루어졌다. 현재 가장 뜨고 있는 서비스인 트위터는 140자의 활자 마술에 의지한 서비스다. 물론, 트위터에서도 링크 기능을 통해 충분히 이미지, 동영상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중심은 활자에 있다. 활자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읽고 쓰는 능력이 우리 교육의 핵심이고, 사회적 활동의 주류인 이상 활자는 쉽게 지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디지털 혁명은 어떠한가?

소크라테스가 염려한 것처럼 책이 대화를 죽였던 까닭은, 책의 재료가 비쌌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직접 필사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인쇄술이 발달한 후에도 기계, 종이의 사용에 따른 물리적인, 필수적인 비용이 발생했다. 따라서 책은 많이 팔아서 그 비용을 초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장이 확보된 후에야 생산될 수 있는 미디어였다. 그런 미디어의 성격에 따라서 오늘날의 소수 집중 생산, 유통 중심의 이윤 구조가 형성이 됐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전자책의 충격>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와 같은 비평가들은 이 같은 비용 구조의 모순이 전자책의 등장에 따라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책은 온갖 물리적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같은 변화가 창작자의 유형과 유통망의 역학구도를 급격하게 바꿀 것이라 보고 있다. 동시에 킨들, 아이패드 등이 등장함으로써,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전자책 플랫폼을 대중화시켜 줄 ‘킬러 어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139달러짜리 킨들까지 발표했다. 역대 최저가 킨들이며 보급형 킨들이다. 전자책 뷰어인 킨들의 급속한 확산이 예고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통해서 멀티미디어 기기를 내보낼 때, 킨들은 ‘책은 책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2분기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보다 더 많았다는 아마존의 보고는 전자책 가속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이번에 아마존의 139달러짜리 킨들 발표는 그 같은 전자책 판매고에 자신감을 얻어, 킨들을 공짜화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전자’와 ‘종이’의 패러다임 차이를 ‘비용 구조’에서만 찾으려 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죽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 다 사물일 뿐이다. 전자가 이기든, 후자가 남든, 그 결정은 사람이 한다. 따라서 보다 핵심적인 질문은 비용 구조를 넘어서 소크라테스가 질문했던 것처럼 책이 이성을, 대화를 죽일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마셜 맥루한과 닐 포스트먼이 주장했던 것처럼 미디어가 메시지일 지, 미디어가 담론의 형식을 바꿀 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예상이 이후 사실과 달랐을 지 몰라도, 그 질문의 의미는 유효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핵심이 사람에게 있다면 사람이 책이나 활자를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지, 어떻게 ‘읽고 쓸 지’가 문제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 때 소크라테스는 틀리지 않았다. ‘대화’는 중요하다. 지금 더욱 중요하다. 왜나하면 전자책 혁명은 책이라는 콘텐츠 역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거대 네트워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의 양상에서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은 어디에서나 쉽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편리한 기기다. 이 같은 기기들을 ‘스마트'(smart)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그 것이 우리 삶을 대기처럼 둘러 쌈으로써(ambient)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과 작업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기기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기계, 네트워크와 사회가 하나 된 생태계, 소셜 웹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책 혁명이란, 이젠 책도 그 콘텐츠도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주류 질서와 문화는 ‘오픈’이고 ‘소셜’이다. 여기서는 ‘개방이 법’이고, ‘소통이 원칙’이다. 인터넷의 탄생부터 월드 와이드 웹(WWW)의 성장, 닷컴과 웹2.0을 지나 지금의 오픈과 소셜의 파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네트워크였다.

그렇다면 책은 어떤가. 책 역시 개방이 법이고, 소통이 원칙일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는 데, 네트워크로 이주한 책이 이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전자’냐 ‘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책’의 문제로 봐야 한다. 책을 인식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행태가 바뀔 것이다. 전자책의 시대에 책은 공개될 것이고, 책은 소통될 것이다. 더 이상 책은 저자 일방의 독백이 아니어야 하고, 독자 다수의 참여가 이루어질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독자는 언제, 어디서든, 질문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내용은 누구와도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저술과 출판은 한 번의 창조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공개의 결단과 소통의 과정을 통해 그 가치가 증대되고 확산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 네트워크에 들어온 책의 미래는 ‘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