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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니] 조용한 혁신 ‘에어팟 프로’

2019.11.27

혁신은 없었다. 매년 애플에 쏟아지는 레토릭이다. 혁신 없는 언론의 수사가 지겹지만, 지난 몇 년간 아이폰이 정체된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혁신은 있었다. 애플은 과감히 이어폰 구멍을 막았고, 사람들의 귀에 콩나물을 파종하는 데 성공했다. 무선 이어폰은 ‘에어팟’ 이전에도 있었지만, 편리한 사용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개척한 건 에어팟이 처음이었다. 콩나물, 전동 칫솔이라고 비웃던 것도 잠시. 거리의 사람들은 무선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에어팟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이어폰이 됐다. 그리고 ‘에어팟 프로’가 나왔다.

에어팟 프로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틀린 그림 찾기’ 수준의 변화가 있었던 ‘에어팟 2세대’와 달리 에어팟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오픈형의 에어팟과 달리 커널형(인이어)으로 설계됐다. 귀에 걸치지 않고 이어팁을 귓구멍에 밀착시키는 형태다. 가장 큰 특징은 소음을 제거해주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이다.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애플은 애플 특유의 사용자경험(UX)을 앞세워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의 문턱을 낮췄다.

| 확연히 구분되는 ‘에어팟 프로'(위)와 ‘에어팟'(아래)

문턱 낮춘 노이즈캔슬링 경험

에어팟 프로가 나온 뒤 사람들은 노이즈캔슬링 기능에 호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일부 과장된 평가를 덜어내고 보면 생활 소음을 줄여주는 수준이다. 마법처럼 모든 소음을 차단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바람 소리, 전철과 비행기, 거리와 카페의 규칙적인 소음 등에 강하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에어팟 프로를 착용하면 바로 체감할 수 있다. 노이즈캔슬링 활성 신호음과 함께 마치 비행기를 탄듯한 멍멍함이 느껴진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것처럼 소리에는 소리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노이즈캔슬링은 소리의 특성을 활용해 소음의 파동을 뒤집은 역위상 파동, 안티 노이즈를 쏘아 소음을 상쇄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 소음에 대한 정확하고 빠른 연산이 필요하다.

에어팟 프로는 두 개의 마이크를 활용했다. 먼저 제품 외부에 탑재된 외향 마이크가 외부 소리를 감지해 분석한다. 그리고 내부에 탑재된 내향 마이크가 귀 안쪽에서 들릴 수 있는 잔여 잡음을 잡아낸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해당 소음을 지울 수 있는 안티 노이즈를 발생시킨다. 이 모든 과정에는 애플의 이어폰 전용 H1 칩이 관여한다. 애플에 따르면 에어팟 프로는 주변 소음에 맞춰 초당 200회 노이즈캔슬링 조정 작업을 한다. 일부 민감한 사람들은 지속되는 안티 노이즈에 멀미 현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점은 노이즈캔슬링의 구조적 한계로 에어팟 프로도 마찬가지다.

| 유닛 바깥쪽에 달린 외향 마이크

노이즈캔슬링 효과는 보컬 곡 무반주 구간에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장범준의 ‘노래방에서’의 경우 3분 10초 구간부터 반주 없이 장범준 목소리만 나온다. 이때 외부에서 노래를 들을 경우 대개 이어폰을 뚫고 주변음이 쏟아져 들어와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에어팟 프로로 감상할 경우 나도 모르게 노랫말에 몰입해 ‘흐어어어’ 후렴구를 따라부르게 된다. 애플이 말한 대로 원곡의 의도를 그대로 표현해주는 셈이다. 몰입을 위해 전철이나 거리에서 볼륨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니는 이 분야의 개척자다. 소니의 노이즈캔슬링 경험은 세분화된 컨트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니 ‘WF-1000XM3’는 노이즈캔슬링 단계를 세부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과 연동해 사용자의 동작을 감지하고 상황별 맞춤형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제공한다. 걷거나 뛸 때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이즈캔슬링 수준을 낮춰주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해주는 식이다.

반면, 애플의 노이즈캔슬링 경험은 단순하다.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하거나, 주변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아예 기능을 꺼버리는 세 가지 방식을 제공한다. 새롭게 적용된 감압식 터치 센서를 활용해 콩나물 다리 부분을 꾸우우욱 누르면 ‘노이즈 감쇠’와 ‘노이즈 수용’ 모드를 오간다. 음성으로 시리를 불러 제어할 수도 있고, 제어 센터에서 바꿀 수도 있다. 노이즈 수용 모드로 전환할 경우 외향성 마이크를 이용해 귓구멍에 에어팟 프로가 박혀 있는 상태에서도 외부음을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기능을 아예 꺼버리면 일반 커널형 이어폰이 된다. 에어팟 프로는 복잡한 거 귀찮은 현대인들에게 애플식의 정제된 사용자경험을 제공한다.

편안한 커널형 디자인

감압식 터치 센서는 기존 에어팟에 적용된 이중 탭 방식을 대신했다. 애플은 이어폰 유닛을 두 번 두드리는 방식이 귀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귀를 짓누르는 커널형 이어폰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작감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압식이어서 치약을 짜내듯 꾹꾹 눌러야 작동한다. 여기에 입력 신호음을 더해 조작감을 보완했다. 짧게 꾹 한 번 누르면 음악 정지·재생, 꾹꾹 누르면 다음 곡, 꾹꾹꾹은 이전 곡이다. 익숙해지면 조작이 어렵지는 않다. 볼륨 제어를 여전히 시리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 콩나물 줄기 길이가 짧아졌다.

커널형 이어폰은 이어팁을 귓구멍에 밀착시키기 때문에 차음성에 유리하다. 노이즈캔슬링 기능과 궁합이 잘 맞는다. 동시에 귀 안팎의 기압차를 만들어 불편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과자를 먹을 때도 귀 안에서 소리가 울려 불편하다. 오픈형으로 설계된 에어팟은 낀 듯 안 낀 듯 편안한 착용감 덕에 생활형 이어폰으로 거듭났다. 커널형 이어폰의 단점은 에어팟이 추구하는 제품 컨셉과 어긋난다. 이 때문에 애플은 편리한 커널형 이어폰을 디자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통풍구 디자인이 적용됐다. 팁 안쪽 이어버드 외부에 통풍구가 있어 귀 안과 밖의 기압 차를 줄여준다. 커널형 이어폰치고 착용감이 좋다. 고통 없이 과자를 먹을 수 있다. 실리콘 재질로 된 기본 이어팁은 대형, 중형, 소형 세 가지로 제공돼 본인의 귀에 맞춰 착용할 수 있다. 이제 귓구멍에 안 맞아서 에어팟을 못 쓰거나 중력의 힘을 확인할 일은 없다.

애플은 쉽게 본인에 맞는 이어팁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iOS 상에서 블루투스 설정 메뉴에 들어가 에어팟 프로를 선택하면 이어팁 착용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테스트 음악을 재생하고 내향형 마이크로 귀 안쪽에 들리는 소리를 감지해 착용중인 이어팁이 귀에 잘 맞는지 확인해주는 방식이다. 결과에 따라 한쪽 귀에는 중형 이어팁, 다른 한쪽 귀에는 소형을 착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이어팁 착용 테스트를 통해 에어팟 프로는 착용감과 노이즈캔슬링 성능을 극대화한다.

에어팟 사용자라면 만족할 음질

음질도 일정 부분 개선됐다. 전반적으로 밸런스를 강조한 에어팟과 비슷하지만 저음역이 강화됐고, 커널형 디자인과 노이즈캔슬링 덕분에 외부로 새는 음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또 적응형 EQ가 적용돼 이용자의 귀 내부 형태에 맞춰 음질을 자동으로 조정해준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에 적용된 것처럼 내향형 마이크를 통해 원래 만들고자 했던 소리와 귀 안쪽에 울려서 나는 실제 소리를 비교한 뒤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소리로 조정해주는 식이다.

에어팟 프로는 균형감 잡힌 편안한 소리를 강조한 에어팟 시리즈의 사운드 성향을 따른다. 기존 에어팟 시리즈에 만족하는 사용자라면 만족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도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고음을 살려주거나 베이스를 둥둥 울리는 맛깔나는 사운드를 원한다면 심심한 에어팟 프로 음질은 귀에 차지 않을 터다.

| 볼륨 제어기에 그려진 ‘에어팟’과 ‘에어팟 프로’의 아이콘이 다르다. 애플의 디테일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이 밖에도 에어팟 프로는 IPX4 등급의 생활 방수 기능을 갖췄다. 운동 시 땀과 습기에 강한 수준이며 물 속에 들어가면 망가진다. 또 무선 충전 케이스를 기본 제공한다. 에어팟 2세대와 달리 무선 충전 기능이 빠진 케이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배터리는 최대 5시간 음악 재생이 가능하며, 액티브 노이즈캔슬링 모드에서는 최대 4시간 30분의 재생 시간, 최대 3시간 30분의 통화 시간을 지원한다. 무선 충전 케이스는 24시간 이상의 배터리 사용 시간을 제공한다.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배터리 시간이 아쉽다. 또 일체형으로 설계된 탓에 배터리 교체가 안 된다. 기존 에어팟처럼 2-3년 이상 사용할 경우 사망 선고 타이머가 켜진다. 통화 품질은 기존 에어팟 시리즈처럼 탁월하다.

에어팟 프로는 아이폰과 찰떡이지만, 안드로이드에서도 기본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과 감압식 센서를 이용한 곡 제어가 가능하다. 단, 이어팁 착용 테스트 등 소프트웨어적인 기능은 쓸 수 없다. 노이즈 수용, 감쇠 전환도 신호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어폰에 5만원 이상 쓰는 것도 아까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기를 사면 번들로 이어폰을 주는데 엄한데 돈을 쓴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제 사람들은 20만원씩 내고 무선 이어폰을 산다. 다들 ‘황금귀’가 된 걸까. 아니다. 음질이 아닌 편리함 때문이다. 에어팟의 성공 요인이다. 에어팟 프로는 최고의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편안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인 것은 확실하다. 가장 빠르진 않지만, 가장 나은 경험을 만든다. 애플의 혁신은 여기에 있다.

장점

  • ‘편안한’ 커널형 이어폰
  • 체감되는 노이즈캔슬링 성능
  • 전작과 달리 모두에게 맞는 핏
  • 탁월한 연동성(아이폰)

단점

  • 여전히 교체 불가능한 배터리
  • 노이즈캔슬링 특유의 멀미 유발(일부)
  • ‘텅장’ 만드는 가격

추천 대상자

에어팟이 없는 아이폰 사용자, 에어팟 2년 이상 사용자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