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노조 “더 이상 일하다 죽어선 안 된다”

주 52시간제 무력화 움직임에 대한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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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최근 잇따른 주 52시간제 유연화 움직임에 IT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다시 과거의 장시간 노동이 재연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이 포함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본부 IT 위원회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함께 1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동시간 연장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 지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3개월,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며 “이렇게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 한달 넘게 연속적으로 60시간 이상의 노동이 가능해진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주 52시간제가 IT 산업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목소리와 함께 정부와 국회에서 이를 수용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 IT 노조 노동시간 연장 반대 기자회견. 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 지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유연화 움직임

지난 10월25일 장병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일할 권리를 국가가 빼앗고 있다”라며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 10월8일 김택진 엔씨소프트 CEO 역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의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방문 중 주 52시간제에 대해 언급하며 “중국은 6개월에 새로운 프로덕트들(게임)이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연내 게임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주 52시간제 보완대책으로 탄력근로제, 선택적근로시간제, 유연근무제 적용시간 확대를 비롯해 특별연장근로 확대안을 내놓았다. 지난 11월1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보완대책에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조건을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특별연장근로는 연장근무가 반드시 필요할 경우 법정한도와 관계없이 무제한 연장노동을 허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9조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조건을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고용노동부의 발표에는 업무량이 늘어나는 등 경영상 사유로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죽음 내몬 장시간 노동으로 돌아가선 안 돼”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포기하는 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IT 업계는 최근까지 장시간 노동 문제가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최근 주 52시간제 유연화 움직임에 대해 허탈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서승욱 카카오노조 지회장은 “무려 48주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일해야 했던 IT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우린 아직 기억한다”라며 “최근 한 익명 커뮤니티에는 한 게임회사에서 96시간 연속 근무 후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등 사람을 갈아서 서비스를 만드는 식의 형태는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관습임에도 사용자의 강압적인 야근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리 삶이 나아진다고 하지만 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아직도 장시간 근로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IT 노조 지회는 장병규 위원장과 김택진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이 말한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된다는 말은 사용자들의 일 시킬 권리다”라며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52시간 상한제로 인해 중국이 6개월 만에 만들 게임을 우리나라는 1년 동안 만든다면서 한탄을 하며 밤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자랑하듯 광고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라고 꼬집었다.

또 정부에 “노동시간 단축을 어렵게 하는 특별연장근로 허용확대, 재량근로제 허용확대, 52시간제 위반 사업주 처벌유예 방침을 취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국회와 IT업계 경영진을 향해서도 “기업들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반영한 법안논의를 철회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과 포괄임금제 폐지, 과도한 노동시간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한 이정미 의원은 “정부의 주 52시간제 역주행의 가장 큰 피해자는 IT 노동자”라며 “등대로 비유되던 IT 업계 노동자들이 이제야 인간적 삶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직 정착하지도 않은 주 52시간제를 정부가 흔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 52시간제 근본 취지를 무력화하는 유연근무제 확대를 중단하고 노동자와 함께 주 52시간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시킬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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