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AI 한돌 꺾은 이세돌 “인간과의 차이 알고 싶었다”

이세돌 은퇴기념 대국 첫 경기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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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국산 AI와 은퇴 대국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이세돌 9단은 이번 대국을 치르게 된 배경과 소감을 이렇게표현했다. 이날 이세돌 9단은 NHN에서 개발한 바둑 AI ‘한돌’과의 대결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경기 시작 약 2시간 만이다.

경기는 인간과 AI의 격차를 고려해 이세돌 9단이 2점을 놓고 시작하되, 7집반을 한돌에게 주는 접바둑 형태의 ‘치수고치기’로 진행됐다. 이세돌 9단이 프로 기사로서 동등한 조건에서의 맞바둑이 아닌 접바둑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한돌과의 대국 후 이세돌 9단과 이창율 NHN 게임AI팀 팀장(오른쪽)

경기 후 이세돌 9단은 “처음부터 호선(맞바둑)으로 두기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에 핸디캡 매치를 하는 게 맞다”며, “이번 대국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치수고치기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2점을 깔고 두는 건 처음”이라며, “은퇴 경기인데 이런 방식으로 대국을 치러 당황스럽기도 했고, 사실 열흘 정도 연습했는데 2점 깔고 연습하는 날이 오는 구나 싶어 개인적으로 신기했다”라고 덧붙였다.

예상 밖의 싱거운 승리

이세돌 9단은 이번 한돌과의 대국 전까지 5개월 정도 공백이 있었다. 7월부터 공식 시합을 치르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은 “그동안 공부도 연습도 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최근 열흘 정도는 바둑만 생각하고 하루에 잠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연습만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국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2점을 먼저 놓고 시작하는 핸디캡 경기인 점을 감안해도 100수 안에 집 수 차가 많이 나 계산할 필요도 없이 이기는 불계승을 거둔 것은 예상 밖의 일이라는 평가다. 바둑계는 2점을 깔고 뒀을 때는 AI 한돌이 이기고, 이후 3점을 깔고 뒀을 때는 이세돌 9단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한돌을 개발한 NHN 측도 첫 경기는 한돌의 승리, 3점을 깔고 두는 두 번째 경기에서는 한돌의 패배, 3국에서 다시 한돌의 승리를 점쳤다.

이세돌 9단은 1국 승리 소감을 밝히며 “두 점을 깔고 두지만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고 준비를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조금 허무하다”라며, “2, 3국에서 한돌이 시간은 없겠지만 준비를 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HN 측은 이번 경기 전 프로기사들과의 사전 대결을 통해 2점을 먼저 두는 접바둑에서도 AI의 우세를 확인했다. 한돌을 개발한 이창율 NHN 게임AI팀 팀장은 1국이 끝난 후 “여러 프로 기사를 통해 테스트했는데 결과가 많이 달라서 당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승패가 갈린 건 이세돌 9단이 둔 흑돌 78수였다. 한돌은 공격적으로 대국에 임하며 이세돌 9단을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이세돌 9단이 한돌의 포위망을 뚫는 과정에서 둔 78수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불계패했다. 78수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승리를 거둘 때 나온 수이기도 하다.

이창율 팀장은 “78수 전까지 한돌이 판단하고 있던 승률은 계속 오르는 상태였는데, 78수 이후부터 승률이 확 떨어졌다”라며, “한돌은 그쪽 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이세돌 9단은 “(78수가) 알파고 때는 정상적으로 받으면 안 되는 수였다면, 이번에는 너무 당연한 수였는데 한돌이 생각을 못 했던 게 의외였다”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에 이세돌 9단이 둔 78수는 프로기사라면 흔히 두는 맥점이지만, AI는 예상하기 힘든 수였다. 중국의 바둑 AI ‘절예’, 빌기에의 ‘릴라제로’도 해당 수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접바둑에 대한 AI 학습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도 한돌의 패인 중 하나다. 경기 전 이창율 팀장은 “호선(맞바둑) 같은 경우 1년 이상 학습을 거친 뒤 대회에 나갔지만, 이번 접바둑은 두 달 정도밖에 시간이 없어 촉박했다”라며, “호선 같은 경우 백과 흑의 승률이 정상적으로 둘 경우 백이 54%, 55% 승률로 시작하지만, 접바둑으로 2점을 깔고 시작할 경우 승률이 8% 수준으로 훨씬 낮은 상태에서 시작한다”라고 설명했다.

한돌 개발진은 두 달간 테스트를 거쳐 대국을 할 만한 수준으로 한돌의 접바둑 실력이 올라왔다고 판단했지만, 이세돌 9단에 의해 예상은 깨졌다.

“승패 떠나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 보여주겠다”

이세돌 9단은 2016년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AI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국의 경우 바둑 AI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평소 공격적인 모습보다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펼쳤다. 이세돌 9단은 “AI에 대해 연구를 했지만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최근 열흘 동안 2점 접바둑을 많이 연습했는데 그 부분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래도 5대5가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라며, “연구를 하면서 수비적인 게 조금이라도 승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과 한돌의 두번째 대국은 19일 맞바둑으로 치러진다.  한돌 측은 두번째 대국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 이창율 팀장은 “이미 한돌은 학습이 끝났고 시스템 안정성 위주로 확인해서 아무런 문제 없이 바둑 좋아하는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며,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내일 대국이) 조금 힘들 것 같다”라면서도,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으로 인간으로서는 그 자체로 충분히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종종 기적 같은 게 일어나지 않나. 은퇴 대국이니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승패보다는 인간과 차이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대국이기도 하고, 승패보단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려고 했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하다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승패보다는 그런 모습에 초점 맞춰줬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