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 준비는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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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기 편리한 신용카드, 다양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등장으로 지갑 속에 현금을 넣지 않아도 물건을 손쉽게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지급 결제수단으로서의 ‘현금’ 지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선 현금이 불필요한 사회 ‘현금 없는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14년 세계 최초로 ‘현금 없는 국가 추진위원회’를 설립했으며, 프랑스는 2015년부터 1천유로 이상 현금 결제를 금지했다. 덴마크는 2017년부터 동전과 지폐 제작을 중단하고 현금거래 의무제 폐지 법안을 상정했으며, 호주는 2019년 7월부터 1만달러 이상은 현금 구매를 금지했다. 싱가포르는 2020년부터 대중교통 이용시 현금 사용 금지를 추진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행이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급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비중이 2014년 37.7%에서 2016년 26%로 급감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현금결제 비중은 19.8%다. 유례 없는 빠른 속도로 현금 없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 도입보다 ‘차별’ 없는 금융 활동 보장 우선

각 나라가 현금 없는 사회를 준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뢰성과 투명성을 좀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금 거래와 비교해 비현금 거래가 증가하면 거래 투명성이 증가한다. 이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정부 세입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화폐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핀테크 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현금 없는 사회’는 필수가 됐다.

한국은행은 대체로 동전 및 지폐를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을 약 90% 이상 사용하는 사회를 ‘현금 없는 사회’로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현금 없는 사회로 가기 전 현금 거래시 거스름돈으로 받게 되는 동전의 발행과 관리에 많은 비용과 불편이 수반된다며, 2016년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현금결제 비중이 급감하면서 빠른 속도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국가별 현금결제 비중

| 국가별 현금결제 비중 (출처=한국은행)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겪은 곳이 있다. 스웨덴과 영국,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정부 주도 차원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준비하며, 비현금 거래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들 3개국은 2000년대 이후 비현금 지급수단(신용카드, 모바일 지급수단 등) 이용 활성화로 현금 사용이 감소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소매업체를 중심으로 현금결제를 거부한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뱅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금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비중이 2014년 27%에서 2018년 45%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 국가의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최근 현금 없는 사회 진전 국가들의 주요 이슈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나라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현금 취급비용 증가를 우려해 상업은행이 주요 현금공급 창구인 지점과 ATM 수를 축소하면서 국민들의 현금 접근성이 약화됐다. 현금 접근성이 약화되자 현금을 주된 지급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던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벽지지역 거주자 등 취약계층의 소비활동 제약 문제가 불거졌다.

상대적으로 고령층과 장애인 등은 현금 거래 의존도가 높다.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갈 시 이들 세대에서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측은 “스웨덴 21개주중 15개주에서 기본 결제 서비스에 대한 고령층의 만족도가 낮았으며, 영국은 현금이 사라질 경우 대응하기 곤란한 국민들의 수가 상당한 수준으로, 뉴질랜드는 중앙은행 RBNZ 조사 결과 응답자의 45%가 현금 없는 사회에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설명했다.

당장 우리나라만 살펴봐도, 모바일 간편결제 사용층이 20-40대 사이에 몰려 있다. 준비 없이 ‘현금 없는 사회’로 갔을 때 세대 계층 간 금융 경제 활동 차별을 초래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현금 없는 사회로 가기 전에 중앙은행이 나서서 적당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실제로 스웨덴 릭스뱅크는 앞서 현금 없는 사회로의 흐름을 수용하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급속한 진전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현금 접근성을 보장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 RBNZ는 화폐유통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이런 변화를 눈여겨보겠다는 입장이다. 섣불리 현금 없는 사회 도입하기보다 제대로 된 준비를 먼저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국은행은 “모든 국민들의 화폐 사용에 어떠한 불편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 현금 없는 사회 관련 국내외 동향과 주요국의 대응조치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국민의 현금 접근성 및 현금 사용 선택권 유지를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