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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0] 제품 아닌 ‘프라이버시’를 전시한 테크 기업들

2020.01.11

세계 최대 국제 가전·IT 전시회 CES는 전통적으로 실체가 있는 제품과 소프트웨어 기반 서비스들의 잔치다. 올해 CEO에서도 8K TV부터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전기차, 플라잉카 등 각종 신기술로 무장한 다양한 제품들이 참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CES가 이들 기술만을 위한 무대는 아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이색적인 소재를 강조하는 부스들도 틈틈히 볼 수 있다.

올해는 프라이버시도 그중 하나였다. 일부 기업들은 올해 CES에서 제품 대신 ‘프라이버시’를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거대 테크 기업들이 이번 CES에서 개인정보보호를 화두로 강조했다.

프라이버시 강조한 구글, 애플, 페이스북

구글은 ‘CES 2020’에서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새 음성 명령을 공개했다. 이번에 추가된 음성 명령은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기능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OK 구글, 내가 이번 주에 말한 모든 걸 지워줘”라고 말하면 해당 음성 데이터를 삭제하는 식이다. 또 “헤이 구글, 내 음성 데이터 저장 중이니?”라고 물으면 프라이버시 옵션을 알려주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용자에게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권한을 편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쥐여준 셈이다.

|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CES 세션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CPO) 원탁회의 (사진=CES 라이브 스트림 영상 갈무리)

애플은 28년 만에 처음으로 CES에 참가했다. 애플이 선보인 것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기기가 아닌 ‘프라이버시’였다. 애플은 7일(현지시간)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CES 세션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CPO) 원탁회의에 참여해 프라이버시 정책을 논했다. 해당 세션에는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프라이버시 담당 이사를 비롯해 에린 이건 페이스북 CPO, 레베카 슬러터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 수전 숙 P&G 글로벌 프라이버시 책임자가 참석했다.

이날 애플 제인 호바스 이사는 “애플에서 프라이버시를 정의하는 방법은 고객을 운전석에 앉히는 것”이라며, “고객은 자신들의 데이터를 제어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얼굴인식 등 민감 데이터가 서버가 아닌 사용자 기기 안에서 처리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앞세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사진=애플 유튜브 갈무리)

이에 대해 에린 이건 페이스북 CPO는 “페이스북은 애플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지만, 두 비즈니스 모델 모두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라고 받아쳤다. 사용자 데이터에 기반한 광고가 주된 수익원인 탓에 ‘온 디바이스’ 방식의 데이터 처리가 힘들지만 페이스북 역시 개인정보 보호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 차원 개인정보 보호법 필요해”

이처럼 테크 기업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고 나선 건 지난 2018년 3월 불거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사건의 영향이 크다. 페이스북은 데이터 분석 업체 CA를 통해 약 8700만명이 넘는 사용자 데이터가 유출돼 논란을 겪었다. 제3자에게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쉽게 넘겨주는 정책 탓에 사용자 데이터가 미국 대선 유권자 타깃팅을 위한 알고리즘 개발에 사용됐다. 이용자 의도와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정치적 의도로 이용됐다는 얘기다.

이후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보호 장치들을 개선하기 시작했고, 애플은 사용자 데이터를 남용할 수 없도록 앱스토어 정책을 강화하는 등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번 CES에서 페이스북은 개선된 ‘공개 범위 확인(Privacy Checkup)’ 기능을 공개했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내가 공유하는 게시물을 볼 수 있는 사람 ▲계정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나를 찾을 수 있는 방법 ▲내 페이스북 데이터 설정 등 개인정보를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프로필 정보 및 게시물의 공개 범위, 로그인 알림 등 보안 설정 강화, 친구 요청 관리, 타사 앱 및 웹사이트를 통한 페이스북 로그인 관리 등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 CES 기간 중 공개된 페이스북의 ‘공개 범위 확인’ 기능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 기능을 지속해서 강화할 방침이다. 에린 이건 CPO는 CES 세션에서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대해 설명하며 이번 공개 범위 확인 기능을 소개했다.

레베카 슬러터 FTC 위원은 기업들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의 한계점을 짚었다. 슬러터 위원은 “여기 있는 누구도 그들이 어떤 데이터를 가졌는지,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개인정보 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내년에는 법이 제정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애플 제인 호바스 이사는 미국 입법 과정에서 유럽 GDPR 모델에서 배우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닌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소비자들이 동일하게 강력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