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은 왜 오픈소스 CPU를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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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판을 뒤흔들고 있는 오픈소스가  반도체 분야에서도 매머드급 변화를 몰고올 수 있을까?

오픈소스 칩 디자인 프로젝트인 RISC-V에 구글 같은 유명 테크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텔과 ARM이 주도하는 반도체 칩 디자인 분야 재편’이라는,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RISC-V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한 오픈소스 기반 칩 디자인 프로젝트로 거물급 테크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몇년간 대학 교육 도구용에서 구글, 삼성전자, 알리바바그룹, 퀄컴, 엔비디아 등 반도체 분야 거인들의 중장기 전략에서 옵션으로 부상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이같은 관심 속에 중장기적으로 인텔과 ARM 홀딩스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일각에서 나오는 상황. RISC-V 표준을 개발한 팀 중 1명인 크르스테 아사노빅(Krste Asanovic) UC 버클리대 컴퓨터 과학자는 “대부분의 주요 기업들은 RISC-V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RISC-V 기반 칩 디자인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인 사이파이브 공동 창업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칩 디자인쪽도 오픈소스 무브먼트 꿈틀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이미 주류로 부상했다. 90년대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오픈소스 운동을 외면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인터넷, 스마트폰,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에서 핵심 인프라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IBM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시장을 개척한 회사 중 하나인 레드햇을 거액을 투입해 손에 넣었고 리눅스에 대해 사회주의라고 했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요즘은 내놓고 오픈소스 사랑을 외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세계 최대 오픈소스 코드 저장소인 깃허브도 인수했다.

칩 제작 프로세스의 경우 아직까지 오픈소스와는 거리가 먼 분야로 꼽힌다. 그럼에도 많은 회사들이 기여한다면, 인텔이나 ARM도 따라오기 힘든 지식의 공유 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을 전하고 있다.

RISC-V 오픈소스 칩 디자인의 초기 개발은 프로세서들의 기본적인 기능들을 지시하는 명령어 집합(instruction set)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칩 디자인에서 양대 축은 인텔과 ARM이다. 인텔 x86 아키텍처는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x86 아키텍처 명령어 집합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텔이나 x86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해서 칩을 개발하는 AMD 제품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명령어 집합 자체를 바꾸는 것은 인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회사들은 접근금지다.

인텔 x86 외에 시장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명령어 집합은 스마트폰 칩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ARM 아키텍처다. 다른 회사들은 ARM으로부터 유료로 라이선스 받아 스마트폰용 칩을 디자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텔과 마찬가지로 명령어 집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은 ARM에게만 주어져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관련 업계가 두 회사에게 혁신을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큰 문제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프로세서들은 매년 생산 기술의 발전 속에 좀더 빨라지고 효율도 좋아졌다. 다른 회사들은 이같은 성과를 가져다 제품에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RISC-V 지지자들을 인용해 “계속되는 칩 소형화 추세는 물리합의 법칙과 충돌했다. 인공지능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데이터 홍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인텔이나 ARM이 아닌) 새로운 명령어 집합들은 자율주행차, 음석, 인식, 다른 AI 업무들을 위한 보다 나은 칩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전했다. 최근 나타나는 기술 혁신을 인텔과 ARM 아키텍처만으로 커버하기는 한계가 있고, 오픈소스 칩 디자인이 차이를 메우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RISC-V 스펙은 2015년 출범한 비영리 조직인 RISC-V 재단 기술 위원회가 관리한다. RISC-V 디자인은 무료로 풀 수도 있고, 라이선스 형태로도 제공이 가능하다. 회원사들이 RISC-V가 제공하는 공식 스펙들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원사들은 서로의 디자인들이 상호 호환되는 것에 대해 인센티브를 갖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초기 단계임에도 RISC-V를 둘러싼 판은 다양한 출신 성분의 기업들이 참여하는 생태계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여러 회사들이 RISC-V를 활용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구글의 경우 데이터센터 서버 및 스토리지 기기용 보안 칩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오픈타이탄 프로젝트에 RISC-V를사용하고 있다. 대규모 구글 데이터센터 기술 인프라를 총괄하는 우어스 홀즐(Urs Hölzle)은 “머신러닝 등 오픈 컴퓨팅 아키텍처로 혜택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컴퓨팅 업무들이 있다”라면서 RISC-V 사용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RISC-V와 인연을 맺을 것 같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폰용 칩에 RISC-V 기반 스타트업인 사이파이브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할 계획이다.

대형 데이터 스토리지 업체인 웨스턴 디지털도 자사 일부 제품에 RISC-V를 사용하기로 한데 이어 해당 디자인을 오픈소스로도 공개했다. 알리바바도 RISC-V 기반 칩을 발표했고 몇몇 대학들도 오픈소스 디자인들을 내놓고 있다.

리눅스 성장 스토리 반복할까?

몇몇 유명 회사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RISC-V가 상업적인  검증을 받았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RISC-V의 기반은 ARM이나 인텔 x86 아키텍처와 비교해 제로에 가깝다. ARM 기술은 매년 생산되는 14억개 가량의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고 인텔 x86 아키텍처도 매년 판매되는 2억대 이상의 PC에 투입되고 있다.

오픈 표준을 사용하려면 이런저런 품들이 들어가는 만큼, RISC-V를 쓴다고 비용 절감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ARM의 팀 화이트필드 전략 담당 부사장은 “RISC-V가 비용을 줄인다는 아이디어는 말이 되지 않는다. 혁신은 명령어 집합을 넘어선다”라며 “ARM IP는 매우 변경 가능하며 파트너들이 혁신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고 리스크와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차별화할 수 있게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은 초창기 리눅스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보였던 반응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마틴 핑크 웨스턴 디지털 전 CTO는 “이것은 여전히 잠겨져 있는 중요한 분야에 혁신을 쏟아붓는 것에 대한 것이다”라며 “무료가 아니라 자유로서의 프리다. 이것은 커뮤니티와 협업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RISC-V 지지자들은 보다 협력적인 프로세스는 결국 칩 제작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나 자체 프로세서를 디자인하는 회사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버클리 교수 출신으로 현재 구글에 있는 데이비드 패터슨은 “전세계 기업들은 RISC-V가 비용을 절감해주기 때문에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존 회사들이 자신들의 전략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RISC-V가 몰고온 즉각적인 충격이라는 평가도 있다. RISC-V를 의식해 인텔과 ARM과 같은 회사들이 고객 친화적인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ARM은 지난해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전 써보기’ 플랜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중소 기업과 연구소들은 ARM 명령어 세트들을 사용해 실험적인 일들을 해볼 수 있게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