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은 죽지 않았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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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은 죽었다”.

‘인터넷에서 작은 수요들이 합쳐 큰 시장을 이루고’, 그것이 아마존 등 소위 웹 2.0 기업의 성공을 도왔다는 ‘롱테일’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와이어드’에 지난 8월 17일 위와 같은 도발적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해당 글은 그 제목의 선정성 만큼이나 발표되자 마자 미국 언론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 언론도 이를 소개한 바 있다.

웹이 죽었다는 근거는 1990년대 들어 웹 브라우저 붐을 타고 급상승하던 웹의 트래픽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약 23%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이 이제는 모바일, 태블릿 PC 혁명으로 성장한 ‘앱’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이 구축하고 있는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에게 인터넷에서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웹’에 대한 ‘앱’의 위협에 앞서 구글, 페이스북 등의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주장의 배경은 근거리 통신망인 이더넷을 발명한 밥 멧칼프의 ‘멧칼프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이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데, 이 틀에서 보면 네트워크 경제에서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용자 수가 2배 많다는 것은, 2배가 아니라 4배 더 가치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구글이 ‘개방’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오픈’을 독점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구글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5억 이용자가 갖는 진정한 위력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물론, 여기서 ‘왕의 귀환’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PC 대전에서 MS와 IBM의 공동 전선에 밀려 할리우드로 유배당했던 잡스는 그 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의 남과 북,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했다. 그 내공으로 선보인 것이 전설의 ‘아이’시리즈의 선두를 차지한 ‘아이팟’이었다.

그러나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석권한 신화의 근본은 ‘아이튠즈’에 있었다. 미디어 산업계는 냅스터(Napster), 카자(Kazza) 등 P2P 파일공유 사이트들과의 전쟁에 힘이 빠졌고, 공짜이긴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자료들 사이를 뒤지고 다녀야 하는 P2P 소비자들이 지쳤다는 것을 잡스가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그 사이에서  정보재 거래를 위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을 ‘아이튠즈’로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튠즈’ 모델은, 아이폰의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서 음반 시장을 넘어 통신 시장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아이패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출판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마찰없는 경제’인 인터넷의 폭팔적 잠재력은 누구나 가늠하고 있었지만, 그 것이 어떻게 기존 산업계를 뒤엎을 ‘파괴적 혁신’으로 등장할 지는 누구도 쉽게 그 답을 내놓지 못했는 데, 그 답을 돌아온 황태자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것이다.

콘텐츠 공급자에게 던지는 잡스의 충고는 이것이다. “수익성을 원한다면, 이제는 웹을 버리고 앱으로 오라.”

사실 그 선택이 매력적인 것은 이용자도 사실이다.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안전하게,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가 충족될 수 있다면, 굳이 앱이 아니라 웹을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웹’이냐 ‘앱’이냐가 아니라 ‘더 큰 효용’이기 때문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손을 잡고 추는 춤이니, 웹에서 앱으로의 역사적 이동은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먼저 이 이동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첫째, 앤더슨이 “웹은 죽었다”고 선포한 당일 반박문을 기고한 뉴욕타임즈의 닉 빌톤도 지적한 것처럼, 앤더슨은 통계 자료를 잘못 해석했다. 인터넷 트래픽에서 웹의 비중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 동안 인터넷 전체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이용 행태’도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즉, 인터넷 상 웹의 이용 ‘비율’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 웹의 절대 ‘사용량’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용 형태’면에서 볼 때, 잡스가 아이튠즈,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 온라인 정보재 거래의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만들어 준 덕분으로 P2P에 대한 이용 비율이 감소하긴 하지만, 대신 ‘비디오 이용률’이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용자들이 웹보다 앱을 더 이용함에 따라 웹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앤더슨의 주장에서 맹점을 찾을 수 있다.

그 맹점을 찾기 위해 먼저 이 비디오 콘텐츠 증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 앤더슨이 해당  글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했던 멧칼프 이론의 창시자 밥 멧칼프는 비디오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것을 다음 세기 인터넷의 가장 주요한 변화로 주목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주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 공유를 목적으로 하던 인터넷이 기술 혁신에 힘입어 음성을 넘어 이제 비디오를 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 기존의 방송, 음반, 출판 등 콘텐츠 유통망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부각되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출판시장이나 TV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을 통합할 인터넷의 잠재성 때문이다.

앤더슨은 또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 통합이라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서 과거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현재 주요한 플랫폼을 쥐고 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도 동일한 ‘독점적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독점적 형태’를 보임에 따라 인터넷은 ‘웹’의 천하통일이 무너지고, 수 개의 플랫폼으로 분할되어 통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용자 수에 따라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맷칼프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초기 인터넷 제왕이었던 야후 이래 인터넷은 수없이 그 승자를 갈아치워온 날카로운 경쟁의 무대였다. 애플을 제외한 구글, 페이스북 등은 다 인터넷의 새로운 강자들이다. 잡스 이후의 애플,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위협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구글, 끓임없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은 ‘콘텐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는 데, 그 플랫폼의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방송망, 전화망 등은 가입자가 쉽게 이탈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리고 초기에 그 같은 ‘망’ 구축에 상당한 비용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자본금이 빈약한 신생기업이 덤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다르다. 인터넷 위에 또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용자들을 강력하게 구속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권력전쟁>(Who Controls the Internet)의 저자이자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팀 우가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은 초기 인터넷 아버지들의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에 따라서 ‘모든 콘텐츠를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수 억의 이용자를 보유한 온라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다른 인터넷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본질적인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인터넷의 미래 그리고 어떻게 그 것을 멈출 것인가>(The Future of the Internent and How to Stop It)의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조나단 지트레인이 지적한 것처럼, PC가 인터넷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인터넷은 과거 미디어의 행태를 답습하기는 어렵다. PC는 일반적 목적(general purpose)에 따른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이다. 즉,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는 제품 설계자가 설계한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이메일을 비롯해 웹 등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혁신이 나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 PC 기반의 인터넷 생태계가 보존되는 한, 인터넷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에 열려 있고, 인터넷의 개방성이 유지되는 한 웹은 다를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특성이, 지난 수 년 동안 인터넷 강자들이 독점적 플랫폼을 만드려는 것을 막아왔다. 구글, 페이스북은 과거의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가 ‘유틸리티’가 된 것 처럼 자신들의 서비스를 유틸리티화함으로써 인터넷 환경에서 자신들의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전기, 수도, 철도와 IT 인프라가 같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PC 기반 인터넷 생태계는 ‘이용자 활용력’에 따라 ‘그 응용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틸리티가 되더라도, 그것은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이용자들이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원하는 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웹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웹을 죽이는 방법은 있다. 웹의 지속적 혁신성을 지켜주고 있는 기본 아키텍처의 핵심들을 무너뜨리면 된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먼저 “모든 콘텐츠는 넷상에서 동일하다”는 ‘망중립성’의 원칙을 깨고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 영역의 강자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업자들과 거래를 맺는 것이다. 망은 앞서 말한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독점 내지 과점 상태다. 미국은 AT&T와 버라이존으로 양분되어 있고, 한국은 KT다. 인터넷 기업이 진정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배제한 새로운 플랫폼을 원한다면 망 사업자와의 제휴가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의 독점력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구글이 버라이존과 추구한 모바일 웹에 망 중립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 바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전송 우선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그 복중의 계산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PC 단말기(end-point)가 기반이 된 웹 생태계를 모바일, 태블릿 단말기 기반 생태계 혹은 닫힌(lock-in) 단말기 생태계로 대체하면 된다. 애플의 iOS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맞서고 있는 스마트폰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고,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고가 종이책을 추월하고, 139달러짜리 보급형 킨들을 발표하고, 아이패드가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지속되면 이 ‘대체의 미래’는 멀지 않은 내일일 것이다. 이것은 IT 인프라가 전기, 수도, 철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할 뿐,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자유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플랫폼 안에서도 어느 정도 창조가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플랫폼 제공자의 ‘허락’에 따른 ‘제한된 혁신’일 뿐이다.

따라서 웹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앤더슨의 주장은 도발적이었지만, 놓친 것이 많았다. 그는 웹의 이용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제대로 짚었지만, 그 절대적 이용량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비디오 이용량 증대가 IT와 미디어, 문화산업을 융합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바로 봤지만, 플랫폼 구축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기반한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수직 통합은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을 놓쳤다. 나아가 여전히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이라는 일반적 목적을 위한 단말기인 PC가 웹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는 한 웹의 기반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직’일 뿐이다. 망 중립성의 원칙을 위반한 콘텐츠 제공 업체와 망 제공 업체의 결탁은, 새로운 기업이 인터넷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고 있다. 모바일, 태블릿의 대량 공급과 시장 확대에 의해서 PC 중심 웹 생태계가 닫힌 단말기에 기초한 웹 생태계로 변화하고 있고 IT 인프라는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와 유사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인터넷 네트워크의 ‘망 중립성’, 인터넷 단말기의 ‘열린 창조성'(generativity) 등 오늘날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과 질서를 간과한다면 웹 죽이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는 ‘웹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것은 1990년대에 당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재직하던 팀 버너스 리 경이 인터넷상 문서 공유의 편리를 위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웹은 ‘망 중립성’과 ‘열린 창조성’의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라는 단말기를 통했기 때문에 팀 버너스 리는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허락없이’ 제조할 수 있었다. 또 그 ‘웹’ 자체가 문서의 편집과 공유를 통한 재창조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20년 만에 전세계로 확산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열린 창조성’ 원칙의 힘이다.

나아가 인터넷의 모든 콘텐츠는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웹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웹은 창조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쟁이 평등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그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구글, 페이스북 등의 신흥 강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앱이 웹을 죽인다면, 새로운 ‘소비’ 콘텐츠 플랫폼이 웹을 죽인다면, 그 것은 ‘웹의 종말’일 뿐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지속되어 왔던 ‘개방에 의한 혁신’과 ‘공유에 의한 창조’에 일퇴가 가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바꾸는 것은 웹 이후 새로운 플랫폼일 뿐 아니라, 웹을 통해 부상한 ‘창조의 패러다임’이 ‘소비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웹이 죽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것은 웹이 죽은 후, 또 다른 웹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애초에 막으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창조성과 망 중립성이 사라진 곳에는, 더 많은 소비를 위한 플랫폼만이 잔존할 뿐이다. 더 많은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광고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사실, 이 것이 로렌스 레식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코드와 다른 사이버 공간의 법들>(Code and the Other Laws of Cyberspace)에서 지적한 인터넷의 미래였다. 인터넷은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자유는 ‘코드’라는 ‘아키텍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인터넷을 상업화하려는 세력이 그 ‘코드’를 변경할 경우, 자유는 충분히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그 같은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막상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웹의 ‘자유’를 너무 당연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것이 ‘소비’와 ‘편리’의 이름으로 감소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라진 후에도, ‘자유’가 극히 감소한 후에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따라서 다시 논의의 핵심은 ‘웹의 죽음’이 아니다. 웹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탄생과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또다른 웹’이 태어날 생태계가 지금의 환경이냐는 것이다.

아직 웹이 죽지 않았을 때, 인터넷의 개방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때인 지금이 나의 인터넷을, 웹을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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