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정리

“또다른 ‘n번방’, 강력한 처벌로 막자”

2020.03.23

“전국민의 분노가 원동력이 돼 미뤄지고 있던 (디지털 성범죄) 인식 개선, 법령 정비가 하루빨리 이뤄져 더는 이런 비극을 경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최근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이를 유포하며 금전적 이득을 취해온 ‘박사방’・‘n번방’ 가담자들이 줄줄이 검거되면서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현 보건복지위원회,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3월23일 오후 2시 원내대표실에서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를 위한 긴급 간담회를 개최하고 “성착취 카르텔을 끊어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처벌”이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진 의원은 “범죄는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잔인해지고 있는데, (법은) 아직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범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기존 형법 조항을 적용하다 보니 국민 법감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적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해 다수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진 의원은 “익명사이트에서 성착취 범죄자가 확산되고 있다. 안 잡힐 것이라는 믿음과 가벼운 처벌조항 때문”이라며 “촬영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영상으로 협박하면 처벌하는 법,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촬영물 유포와 차단 의무를 규제하는 법, 상습범 가중처벌 등 다양한 법이 계류돼 있다. 입법상 미비한 점을 살펴보고 디지털 성범죄 특별법을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1세기판 인신매매가 다시는 터지지 못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외국은 종신형까지도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라고 꼬집으며 “‘n번방 사건 재발 금지 3법(이하 n번방 3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는 참석자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돼 진행됐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 대표 및 활동가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 대표, 한겨레 사회부 기자와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참석했다.

국회 차원에서는 좌장으로 진선미 국회의원, 박주민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 전문위원, 입법조사처 최진응 뉴미디어 조사관, 더불어민주당 김혜연 전문위원은 입법적 보완과 대안을 논의했다. 정부 부처에서는 법무부 서지현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김윤진 양성평등 정책 담당관, 경찰청 조주은 여성안전기획관, 최종상 사이버수사과장, 여성가족부 황윤정 권익증진국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고현철 디지털성범죄 긴급대응 팀장, 방송통신위원회 김영주 인터넷 윤리팀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엄지현 디지털방송 정책과장이 자리해 정책적 대응을 함께 고민했다.

n번방, 분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디지털 성폭력의 범위는 넓지만, 현행법상 성범죄로 인정되는 행위는 제한적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 또는 유사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욕망,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동의없이 촬영하거나 불법촬영물을 동의없이 유포하는 것을 말한다. 성적인 촬영물을 주변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웹하드, 포르노사이트 등에 유통 또는 소비하는 행위도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 아동성착취물 사이트(‘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하던 한국인 손모씨가 검거됐지만 국내 사법부는 징역 1년6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는 아동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소지만 해도 최대 징역 20년형을 받는 미국과 달리, 국내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量刑)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을 정하는 데 참고하는 기준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살인과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등 20개 중요 범죄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이 수립돼 있다.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자 양형위는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아청법)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수성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세워줄 것을 요구해왔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은 “양형위원회는 피해 심각성을 고려한 강력한 양형기준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디지털 성착취물에 대한 폭력적 댓글에 대해서도 법적, 정책적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은 “검찰로 근무하면서 끔찍한 사건을 수도 없이 봤고 일베, 소라넷 등에서 유사범죄가 셀 수 없었지만 제대로 처벌 받은 사람이 없다”라며 “이제껏 성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가해자, 피해자를 양산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은 더 발전하는데 이대로 가면 우리 아이들은 지옥에 살게 될 것이다. ‘n번방 사건’ 처리에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있다”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범죄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의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는 텔레그램뿐 아니라 모든 플랫폼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방안으로는 △디지털 성범죄자 신상공개 의무화 △제3자 고발 활성화 △경찰 수사성립 요건 명시(증거제출 가이드라인 필요) △24시간 디지털 성범죄 핫라인 구축 △사이버 성폭력수사팀 증원 및 여성경찰관 비율↑ △불법촬영물 소지 또는 관전 시 처벌 가능한 법 근거 마련 △불법 촬영물 삭제 요구 반대 시 처벌 △사이버범죄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플랫폼사업자에게 인공지능(AI)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 필터링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영주 인터넷 윤리팀장은 “앞서 성범죄 영상물로 인지되는 경우 유통을 인지한 온라인 사업자의 삭제 조치 의무화를 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이끌어낸 바 있다”라며 “이번 텔레그램 불법영상물이 웹하드 등에서 재유통되지 않도록 상시모니터링 점검을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기본적으로 과태료를 상향 조정하고, 이 같은 정보의 유통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사업자들에게 과징금을 물어 이익을 환수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 실질적으로 규제가 어려운 부분은 경찰청, 법무부, 여가부 등과 함께 논의하며 점검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은 ‘n번방 3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에는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 △불법 촬영물·복제물을 스마트폰·컴퓨터 등에 다운로드 받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며 촬영·반포·영리적 이용에 대한 처벌 강화 △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