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만...?

[친절한B씨] 아이폰 재난문자가 달라졌어요

2020.04.02

코로나19 사태로 재난문자가 일상이 됐습니다. 확진자 동선 등 신속하게 관련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폰 이용자들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삐익 삐익’ 울리는 경보음과 함께 손 씻고, 아프면 퇴근하라는 안내 문자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용자가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경보 알림은 여섯 차례나 지속됩니다. 애플워치 이용자는 고통을 두 배로 받아야 했습니다. 급기야 일부 이용자들이 재난문자 알림을 끄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아이폰 재난문자가 달라졌습니다. 요란한 경보음과 진동으로 손 씻기와 마스크 구매 안내 등의 내용을 전하던 아이폰이 이제는 다소 얌전하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냅니다. 일반 문자처럼 말이죠. 최근 ‘iOS 13.4’ 업데이트 이후 바뀐 부분입니다.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당연하게 누리던 경험이죠. 왜 그동안 아이폰 이용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재난문자를 ‘재난’처럼 대해야 했을까요.

| 아이폰 긴급재난문자 수신 화면

국내 독자 표준 때문에 발생한 문제

사실 재난문자는 재난처럼 오는 게 맞습니다. ‘긴급재난문자’는 재난 및 민방공 상황 발생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예상되는 때 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일반 문자(SMS)와 달리 CBS(Cell Broadcasting Service)에 기반합니다. 번호 기반 양방향 통신이 아닌 기지국(Cell)에서 해당 지역 모든 단말기로 문자를 ‘방송’하는 개념입니다. 시간대와 지역을 설정해 지정 기지국 단위로 문자를 보낼 수 있죠. 재난 상황에 통신 트래픽이 몰릴 것에 대비해 구축한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정말 긴급한 상황에 와야 할 문자 형식으로 손 씻기 등의 위생관리 안내 문자가 온다는 점입니다. 행정안전부의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르면 국내 재난문자는 재난의 정도에 따라 ▲위급재난 ▲긴급재난 ▲안전안내 세 단계로 나뉩니다. ‘위급재난문자’는 공습경보, 경계경보, 화생방경보, 경보해제 등의 내용을 담은 60dB 이상 알림 소리와 함께 송출됩니다. 전쟁 상황을 알리는 내용이어서 문자 수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긴급재난문자’는 테러,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등의 재난 상황에서 40dB 이상 알림 소리와 함께 전달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는 재난문자는 가장 낮은 단계인 ‘안전안내문자’입니다. 위급, 긴급재난을 제외한 재난경보 및 주의보를 전달하며 별도의 경보음 없이 일반문자처럼 받게 됩니다. 코로나19 관련 재난문자들이 여기에 속하죠.

|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인 삼성 ‘갤럭시’ 재난문자 설정 화면

하지만 아이폰 이용자는 안전안내문자를 긴급재난문자 형식으로 받아 왔습니다. 국내 재난문자(CBS) 시스템이 국제표준을 고려하지 못하고 정부 주도로 구축해 운영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재난문자 채널을 대통령경보(Presidential Alerts), 극한경보(Extreme Alerts), 심각경보(Severe Alerts), 앰버경보(Amber Alerts) 등 네 단계로 운용 중이지만, 국내 재난문자 서비스가 국제표준과 맞지 않아 긴급재난에 해당하는 극한경보(Extreme Alerts) 수준의 재난문자 하나로만 제공돼 왔습니다.

국내 제조사에서 국내 환경에 맞게 맞춤형으로 개발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달리 외산폰인 아이폰은 국제표준 규격을 따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던 셈입니다. 애플코리아는 이 같은 내용을 지속해서 본사에 전달해 이번 iOS13.4부터 해당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아이폰 재난문자 알림 설정 개선 전(왼쪽)과 후

지난 3월25일 업데이트된 iOS13.4부터는 안전안내문자를 긴급재난문자를 분리해 수신할 수 있게 됐으며, ‘공공 안전 경보’라는 이름으로 해당 재난문자를 별도의 경보음 없이 받게 됩니다. 설정에 들어가 알림 메뉴 맨 밑에서 재난문자에 대한 수신 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표준 기반 개선 필요, 남발 자제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식 독자 표준을 고집할 경우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꼬집습니다. 지난해 한국통신학회 하계종합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긴급재난문자 시스템 및 운영 개선방안 연구’ 논문은 “(국내 재난문자 시스템은) 국제 표준 기반의 재난문자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접근 방식들에 있어서 한계가 있으며, 5G가 상용화됨에 있어서 타 산업들과의 유기적인 결합 등에 있어서 비표준 기반 운영 체계는 기능 개선과 기능 확장성에 많은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합니다.

매체별로 서로 다른 재난 예보 및 경보 시스템을 통합하고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경우 통합경보시스템 ‘IPAWS’를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국제표준을 기반으로 재난정보를 입력하는 시스템과 여러 정부 기관으로부터 발령되는 재난 경보들을 모으는 오픈 플랫폼 시스템, 경보를 전송할 미디어 채널별 시스템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됐습니다. 일본과 네덜란드 등도 이 같은 국제표준 기반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손 씻기’ 안내 문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난문자가 남발되는 점도 문제입니다. 재난문자 시스템은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강릉 산불 등을 계기로 신속한 초동 대처를 위해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도 지자체에서 직접 발송할 수 있도록 절차를 줄였습니다. 2017년 광역시에 부여된 재난문자 송출 권한은 지난해 전국 시, 군, 구까지 확대됐습니다. 덕분에 재난문자는 빨라졌지만, 지역별로 중구난방인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용자가 현재 위치한 기지국 기반으로 재난문자가 오기 때문에 여러 지역을 오갈 경우 구별로 ‘손 씻기’ 문자 한 통씩만 보내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같은 내용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2018년 한해에 발송한 재난문자는 총 860건 수준이었지만, 지난 3월 한 달간 발송된 재난문자는 4404건에 달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에 확진자 동선 외에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행동 수칙 발송은 자제해달라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 문자는 재난문자와 거리를 두고 싶게 할 만큼 쏟아지고 있습니다.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