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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100년’ 브라더, 프린터로 한국문 ‘똑똑’

2010.09.02

어린 시절, 튿어진 티셔츠나 발 밑으로 끌리는 바짓단을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손질해주시곤 했다. ‘드르륵~’ 경쾌한 바느질 소리에 낡은 옷들은 거짓말처럼 맞춤옷으로 변신했다. 어머니의 마술을 돕던 낡은 재봉틀엔 어김없이 ‘브라더'(Brother) 상표가 붙어 있었다.

재봉틀 100년 기업 ‘브라더’가 한국땅을 찾았다. 미싱, 재봉기, 재봉틀로 불리던 옛 추억속 물건 대신 ‘프린터’를 들고 왔다.

걸어온 길이 흥미롭다. 브라더는 1908년 4월, 창업주인 가네기시 야쓰이가 재봉기 수리 사업을 시작하며 첫발을 뗐다. 아버지 가업을 잇는 두 아들이 가정용 재봉틀 생산의 핵심 기술인 ‘셔틀 훅’을 개발하면서 1934년 재봉기 생산 기업으로 본격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두 아들은 1960년대부터 정보기기 개발에 들어가 1961년 휴대용 타자기를 내놓기도 했다.

1965년에는 한국브라더커머셜(BCC)과 손잡고 부산에서 재봉기 제조를 시작하며 한국땅에도 발을 디뎠다. 1971년에는 처음으로 도트 프린터를, 1982년에는 흑백 레이저 프린터를 처음 선보이며 사무용 기기 제조업체로 본격 변신을 시도했다. 재봉기 기업에서 사무용 기기 전문업체로 체질 개선을 모색한 셈이다.

올해로 창립 102년째. 브라더 인더스트리 리미티드는 전체 매출의 76.5%를 프린터·복합기·전자문구 부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가정용·공업용 재봉기 부문 매출이 13%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변신이다. 미국과 유럽 지역에선 보급형 흑백 레이저 프린터·복합기로 시장점유율 선두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2010년 현재 전세계 44개국 51곳 판매 거점과 16곳 생산 거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 직원은 2만3천명에 이른다.

브라더가 한국땅을 본격 두드린다. 지난 2008년 9월 주재소 사무소를 열며 한국 진출 가능성 타진에 들어간 뒤, 2009년 10월에는 브랜드 인터내셔널 코리아를 설립하며 본격 사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9월1일, 보급형 프린터·복합기 11종류를 내놓으며 한국시장 영업에 불을 댕긴 모양새다.]

브라더가 내놓은 프린터·복합기는 소규모 사무실과 가정을 겨냥한 보급형 제품이다. 크기를 줄여 설치가 편리하고 가격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눈에 띄는 점은 프린터 카트리지에서 토너와 드럼을 분리했다는 데 있다. 이런 방식으로 토너(잉크)가 떨어져도 드럼째 교체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10% 가량 줄이고 환경에도 이롭게 했다. ‘정크 팩스 인쇄 차단’ 기능이나 ‘토너 절약모드’ 등을 내장해 잉크 절감 효과도 제공한다.

판매망과 사후서비스(AS)망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전국 52곳 서비스 지점을 갖춘 국내 업체와 손잡고 공인전국망서비스지정점(TPM)을 제공하며, 영업과 AS를 함께 제공하는 공인서비스지정점(ASP)도 확충하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전국 89곳 서비스센터 계약을 마무리했으며, 올핸 말까지 100여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신고 세키야 브라더 인터내셔널 코리아 사장은 “브라더그룹이 미주지역과 호주 등에서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고품질과 뛰어난 AS, 풍부한 라인업이 요인으로 꼽힌다”라며 “한국에서도 이 세 요소를 착실히 운영하고 한국지역 이용자 입맛에 맞는 기능들을 연구해 다양한 제품으로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은 제품들을 한국 중소기업과 관공서, 개인 시장에 공급해 2011년 말까지 시장점유율 3위 업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

asadal@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