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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법’에 뿔난 인터넷업계 “이대로는 위헌”

2020.05.12

“이대로 통과되면 위헌이라고 본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체감규제포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등 4단체는 5월12일 오전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임기 말 쟁점법안 졸속처리의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라며 ‘n번방 방지법’ 등 인터넷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인터넷규제입법’ 처리 중단을 촉구했다.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 책임 의무를 강화하고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부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신재난 관리 대상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포함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들 법안의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열린 이번 기자회견에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민호 교수(체감규제포럼 공동대표),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체감규제포럼), 인기협 박성호 사무총장,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최성진 대표,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대행 등이 참석했다.

‘n번방 방지법’ 등 법안 빈칸 지적하는 인터넷업계

4단체는 법안이 인터넷업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모호한 대목이 많은 ‘깜깜이법’이라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어려워 국내 사업자만 거미줄 규제에 묶이게 된다는 우려다.

이 가운데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은 정보통신사업자들에게 디지털 성범죄물 등 불법 촬영물의 유통방지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안에는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는 문구가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 운영사가 이 같은 정보의 유통을 방지하려면 사용자 대화의 사적검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신고, 삭제요청 또는 대통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의 요청 등을 통하여 인식한 경우’ 해당 정보를 삭제조치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라면서도 “지금도 게시물을 신고하거나 삭제 요청하면 이를 인지 시 바로 삭제하게 돼 있다. 특히 한국은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기업 역시 정부 친화적이라 (운영이) 잘 되고 있었는데 텔레그램, 다크웹 등 해외 사업자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술적 조치를 취하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으나, 지금은 과도하게 포괄적이기 때문에 이대로 통과되면 위헌이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카카오 관계자도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개개인의 대화방을 검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4단체는 ‘n번방 사건’의 통로가 된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실제 다크웹의 패킷 전달 통로인 통신사의 책무 역시 법안에서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또 부가통신사업자에 서비스 안정을 위한 수단 마련을 요구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넷플릭스법’도 문제 삼았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현재 법안은 예측가능성이 심각히 떨어진다”라며 “새로운 규제는 비용으로 연결돼 스타트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대형사업자·글로벌 사업자에게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통위측도 (글로벌 사업자에게) 법을 집행할 방법이 없는 것을 고백했지만 역차별 해소 방안없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날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인터넷업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를 내고 “민간 사업자에 사적 검열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만한 근거가 되는 규정은 없다”라며 “근거 없는 선입견만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는 “역외규정을 신설했다”라며 “규제기관은 좀 더 적극적으로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박성호 사무총장은 “현재 완화된 것은 맞지만 법안에 누가, 어느 정도 범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고 대통령이 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식이다. 모든 것을 정부에 일인한 것”이라며 “속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일부 위원들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또 “가르마를 잘 타서 공평규제로 (글로벌 CP를) 끌어들이면 좋은데 집행력에 한계가 있어 잘 적용되지 않는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고 부메랑처럼 우리 기업이 더 어려워지니 다른 방법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체감규제포럼은 법안 내용을 떠나 20대 국회 말 절차와 형식적 요건을 무시한 졸속입법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4단체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산업계, 이용자 등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사회·경제적 영향평가와 숙의 기간을 충분히 거친 뒤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관련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를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