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사마리아인> 등을 통해서 자유 무역의 맹점을 지적하고 국제 개발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제공했던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최근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던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라는 제목의 신간을 발표했다.
책 내용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낫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의 말이 인터넷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8월29일에 영국 시사지 <가디언>과 함께 가진 책에 관한 인터뷰에 의하면 장하준 교수는 인터넷이 소통 혁명을 일으킨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경고하는 바는 인터넷의 ‘정보’ 소통 측면에서의 단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인지 능력이 소화할 수 있는 이상의 정보가 공급됨에 따라 우리는 소통을 통해 줄어드는 비용보다 소통을 위해 늘어나는 비용이 더 크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정보 과다 상황에서 인간의 편익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몬의 ‘제한적 합리성’ 이론에 기초를 두고 전개한 위 주장은 일견 합리성이 있다.
인터넷의 산실 중 하나인 MIT 컴퓨터 랩의 디렉터로 있었던 마이클 더토조스도 인터넷이 인간 소통에 큰 효율성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소통을 위한 소통이 커지게 되면 관리 비용이 커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토조스가 든 예는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이 소통의 효율성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쓰기 쉽고 언제든지 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정도 이상으로 많아진 이메일이 쌓이게 되면, 그것은 전에 없던 관리 비용을 높이게 된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기술의 진보가 꼭 업무 능률 향상과 인간 삶의 질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장하준 교수가 세탁기보다 인터넷이 더 낫다고 한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경제 성장 이론으로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는 1987년에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주장한 바 있다. 주장의 핵심은, 컴퓨터 혁명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는 없다는 얘기다. 위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일견 컴퓨터의 도입으로 업무 효율성이 증대된 것 같지만, 첫째로 컴퓨터 등 IT 투자라는 것은 막대한 자본 투자이고, 둘째로 이는 지속적인 관리와 개선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그 혜택 못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 그 숨겨진 배경이다.
장하준 교수가 세탁기가 낫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하이테크의 눈부심에 경도되어 그보다 더 단순한 기술, 이 경우에는 세탁기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탁기는 여성을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고, 그 덕분에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성화되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들 여성은 우리 인류의 절반이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이것은 인류 절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변화였다.
사실, 지금의 컴퓨터 못지 않게 문자가, 인터넷 못지 않게 바퀴가 우리 인간의 생산성 발전에 기여한 바가 부정할 수 없이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이유는 그 기술이 가지는 발전의 ‘상대적’ 속도와 범위 때문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등이 대표하는 것처럼 IT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속도가 우선시되고 절대시되는 분야였다. 동시에 1961년에 미국의 통신위성이 쏘아올려진 해에 ‘세계화’라는 말이 사전에 편입될 정도로, IT 발전은 지구촌의 상호 연결과 맞물려 왔다. 그래서 우리는 숨겨진 비용과 부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인터넷, 월드와이드웹을 그리고 최근에는 오픈과 소셜을 새로운 희망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그와 같은 희망이 있었기에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인 1996년, MIT 미디어랩 소장이었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원자의 미래를 비트가 대신할 것을 믿으면서, 소통의 비용을 급격히 줄인 IT가, 국경의 한계를 넘어선 IT가 세상을 바꿀 것을 믿고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장하준 교수가 냉철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인터넷은 그 동안 세상을 바꿀 것처럼 믿어왔던 수많은 기술 발전들 중 하나일 뿐이며 동시에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기술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인터넷이 지난 수 십년 간 인류 사회를 선도해온 많은 변화들에 공헌한 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사회적 움직임들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야성적 충동이 이끄는 경제 현상에 대해 지적한 예일대 경영대학원 로버트 쉴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과도한 기대(irrational exuberance)를 자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교육의 종말>(The End of Education)에서 닐 포스트먼이 지적한 것처럼, 값비싼 컴퓨터를 학교에 보급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자동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근거 없는 믿음을 불신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의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낫다’는 주장은 세탁기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인터넷이 살 수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인터넷 없이는 곧 정지해 버릴 지구촌의 금융 거래를 생각해봤을 때도 역시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그 수사의 극단성을 넘어 교훈의 통찰력에 이르면 동의할 부분이 많다. 우리 인류사에 인간 삶에 큰 발전이 있었다면, 그것은 기술 혁신’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능동적’으로 활용했던 ‘인간’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이 인간을 위해 쓰일 때만 그 ‘발전’이, 그에 투자되는 ‘비용과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인터넷의 ‘숨은’ 아버지 더토조스는 그의 동료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를 발표한 한 해 뒤인 1997년에 “300년 전에 인문학과 공학의 결별이가장 치명적 실수이며 이제 그걸 회복할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IT는 올림픽이 아니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가 아니라 ‘더 생산적이고, 더 창조적이며,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오직 그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인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발전을 위해 기술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원칙 상에서야 인터넷이 진실로 세탁기보다 더 위대한 혁명으로 산업 혁명과 정보화 혁명이 모두 지나간 파도가 된 훗날에도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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