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만...?

[ICT 초점⑤] “국내 업체만 때리나”…’n번방 방지법’, 남은 숙제는

2020.05.20

조주빈, 문형욱 등이 연루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가운데 일명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20일 넘었다. ‘불법촬영물’ 재유통으로 인한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지만, 일각에서는 사생활 침해와 더불어 국내 업체에게만 법이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

‘n번방 방지법’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 방지 조치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자는 불법 음란물의 유통을 인식한 경우 삭제‧접속차단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매출액의 최대 3%에 달하는 ‘과징금 폭탄’을 받을 수 있다. 매출액이 없거나 매출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웹하드 사업자에게 부여되던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가 네이버·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로 확대된 것도 눈에 띈다. 또, 아동·청소년을 비롯해 성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불법촬영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방통위는 “인터넷 특성상 디지털 성범죄물이 한 번 유포되면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남기기 때문에, 빠른 삭제와 차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등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와 전기통신사업법상 ‘역외적용’ 규정 도입을 통해 집행력을 확보할 근거를 마련했다.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이 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내 카톡 볼라” 우려는 여전…역차별 해소도 숙제

앞서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업계는 이 법안이 통신비밀이나 사생활,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해왔다. 유통을 방지하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비공개 블로그, 카페 등을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단법인 오픈넷도 18일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불법촬영물을 막으려면 공유되는 정보를 알아야 걸러낼 수 있으므로 이용자 감시를 부추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내 업체에 대한 ‘역차별’ 우려도 나온다. 역외적용 조항이 있어도 국제적 사법 공조가 없으면 사실상 텔레그램 등 해외 사업자를 제재하기는 쉽지 않다. ‘텔레그램 못 잡는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터넷업계는 사실상 국내 인터넷 사업자만 규제를 떠안게 될 거라 보고 있다.

이날 오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촬영물 유통방지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비공개 통신까지도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해외사업자에게 (규제를) 실행할 수 있는 실효성은 있나”라고 말했다.

이에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비공개 통신은 적용되지 않는다. 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온라인상에 공개돼 있는 콘텐츠에 부과되는 의무”라고 답했다. 또한 역차별 논란에 대해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적으나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가 이번 법에 상정됐는데, 이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시행령’ 불씨 남았다…세부 논의 치열할 듯

개정안은 통과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규제 대상이나 방식 등 세부논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 통과 직후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은 유감을 표명하고, 입법과정에서 밝힌 내용에 따라 시행령 등이 준비되는지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법안들의 시행으로 동종·유사 범죄가 근절될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못했다”라며 “개정안이 인터넷산업과 이용자인 국민에게 끼치게 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기업과 이용자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 측은 “업계 및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조치의 실효성은 담보하면서도 사생활 침해 우려는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사업자가 유통방지를 위해 해야 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로는 불법촬영물 등의 △신고 기능 △재유통 방지 기능 △경고문구 발송 기능 등을 고려하고 있으며, 추후 사업자가 불법촬영물 등의 재유통 방지에 활용할 ‘표준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과기부, 방심위 등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