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써보니] ‘아이폰SE’, 재활용품에 환호하는 이유

2020.05.25

‘아이폰SE’는 재활용품이다. 몸뚱이는 ‘아이폰8’에서, 머리는 ‘아이폰11’에서 가져왔다. 외관을 비롯해 디스플레이 사양, 카메라는 아이폰8과 동일하다. 심지어 크기와 무게 등의 규격도 같다. 실제 제품 분해 결과 대부분의 부품이 아이폰8과 공유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아이폰8 디자인은 2014년 출시된 ‘아이폰6’에 기반한다. 전면만 놓고 봤을 때 ‘아이폰6’, ‘아이폰6S’, ‘아이폰7’과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이폰SE에 열광한다. 2020년에 ‘아나바다’ 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라도 한 걸까. 레트로 열풍이 스마트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던 사람들처럼 6년을 거슬러 돌아온 듬직한 베젤에 홈버튼 달린 아이폰에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 50만원대 저렴한 가격 때문에? 플래그십 성능? 한 손 조작이 가능한 작은 크기?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된다. 아이폰SE가 아이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이번 아이폰SE 2세대는 지난 2016년 공개된 아이폰SE의 후속작으로 4.7형 LCD 화면을 탑재했다. 아이폰SE 1세대처럼 4인치대 작은 크기의 아이폰을 기대한 사람들이 실망감을 나타낸 부분이다. 하지만 애초에 아이폰SE는 ‘아이폰5S’ 프레임을 재활용한 제품이었다. 여기에 당시 최신 폰이었던 아이폰6S와 같은 ‘A9’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2세대 제품 역시 철저히 아이폰SE의 문법에 따른다. 애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이폰8 디자인의 재활용을 예견해왔다.

| (왼쪽부터) 아이폰11 프로, 아이폰SE 2세대, 아이폰6S

변한 건 없다. 날 웃게 했던 예전 그 홈버튼도 여전히 그대로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생활화된 시대, 홈버튼에 달린 터치아이디(지문인식)는 페이스아이디(얼굴인식)보다 우월하다. 재밌는 부분은 짧게는 약 3년, 길게는 6년 된 디자인임에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젤리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태평양처럼 널찍한 베젤이 눈에 밟히지만, 균형감 있는 디자인은 현세대 노치 아이폰보다 더 아이폰답다. 아이폰8 자체가 한 세대를 마감하는 완성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변한 건 없다. 7중으로 색을 칠해 유리로 마감된 군더더기 없는 후면은 여전히 아름답다.

달라진 부분이 있긴 하다. 사과 마크가 아이폰11처럼 정중앙으로 내려오고 아이폰 로고가 사라졌다. 전면은 검은색으로 통일됐다. 베젤을 감추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 동영상 콘텐츠 시청 시 작은 화면 크기와 넓은 베젤은 큰 단점이다. 아이폰SE 2세대(위)와 아이폰11 프로(아래)

디자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베젤이다. 아이폰SE는 작지만 작지 않다. 화면은 4.7인치로 6인치가 기본인 현세대 스마트폰과 비교해 답답할 정도로 작다. 한 손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영상 콘텐츠 시청 시 눈이 답답하다. 그러나 크기 자체는 5.8인치인 ‘아이폰11 프로’보다 약간 더 작은 수준이다. 최신 스마트폰들이 베젤리스 디자인을 통해 화면을 키우면서 몸집을 줄인 탓이다. 아이폰SE 1세대처럼 휴대성이 특별히 뛰어나진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대대익선을 지향하는 요즘 스마트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편이다.

| 아이폰SE 1세대(왼쪽)와 2세대는 휴대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진=독자 신우섭 씨 제공)

가격과 반비례하는 성능

아이폰8과 가장 큰 차이는 프로세서다. ‘아이폰11’, ‘아이폰11 프로’, ‘아이폰11 프로 맥스’에 적용된 ‘A13 바이오닉’이 탑재됐고, 이를 바탕으로 최신 아이폰 성능을 제공한다. 실제 아이폰SE를 쓰면서 앱이 무겁게 돌아가는 상황은 없었다. 최신 게임은 풀옵션으로 매끄럽게 돌아갔다. ‘배그’의 총탄은 조준선 정렬을 한 대로 꽂혔고, ‘카트’의 드리프트는 끊김 없이 부드러웠다. 패배의 책임은 온전히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벤치마크 점수도 아이폰11 프로와 거의 같았다. 대표적인 벤치마크 앱 ‘긱벤치4(Geekbench4)’로 CPU 점수를 측정한 결과 싱글코어는 5460점, 멀티코어는 13743점이 나왔다. 각각 5451점, 13587점이 나온 아이폰11 프로보다 다소 높게 측정됐다. 오차 범위를 감안했을 때 둘의 성능 차이는 미미하다는 얘기다. 물론 애플답게 급 차이를 뒀다. 램 사양은 아이폰11 시리즈에 적용된 4GB보다는 적고 아이폰8보다는 1GB 늘어난 3GB 램이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 아이폰11 프로(왼쪽)와 아이폰SE 2세대는 프로세서 성능이 같다.

이처럼 최신 아이폰의 성능을 갖췄지만, 가격은 55만원으로 시작한다. 통신사를 거치면 출고가는 53만9천원으로 조금 더 낮아진다. 부품 재활용을 추진력 삼아 가격을 낮춘 셈이다. 사람들이 사실상 재활용품에 가까운 아이폰SE에 환호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배터리 성능은 아이폰11 프로보다 떨어진다. 물리적인 배터리 용량 자체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애플은 공식적으로 배터리 사양을 밝히지 않고, 아이폰8 수준의 사용 시간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체감상 아이폰11 프로는 배터리 충전 없이 하루를 살아내지만, 아이폰SE는 그보다는 좀 부족하다. 그렇다고 배터리 성능이 영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폰SE(유심 사용)는 웹서핑, 유튜브, 게임 정도 하는 내 일반적인 사용패턴으로 오전 8시 반에 완충한 상태에서 자정까지 버텼다. 무선 충전을 비롯해 고속 충전을 지원하지만, 동봉된 5W짜리 충전기로는 어림도 없다.

카메라에 미친 ‘A13’ 효과

카메라의 하드웨어 사양은 아이폰8과 같다. 후면 카메라는 기존과 같은 1200만 화소 싱글 카메라가 탑재됐다. 4800만 화소가 보편화되고, 심지어 1억800만 화소 스마트폰 카메라가 나오는 시대에 다소 부족한 사양이다. 그나마 아이폰SE가 비빌 언덕은 ‘A13 바이오닉’ 칩이다. 부족한 카메라 사양을 이미지 프로세싱 과정에서 프로세서가 메꿔주는 식이다.

A13은 아이폰8에는 없던 ‘차세대 스마트 HDR’과 ‘시맨틱 렌더링’을 지원한다. 전자는 노출이 각기 다른 이미지를 합성해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이다. 스마트 HDR은 기존 HDR과 달리 카메라 앱을 여는 동안 여러 장의 이미지를 찍을 준비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 셔터 랙 없이 바로 합성된 결과물을 보여준다. 후자는 피사체와 배경 등 사진 전반을 분석해 얼굴, 피부, 머리카락, 눈, 옷자락 등 각 요소에 맞게끔 명암과 질감, 컬러 밸런스, 피부톤 등을 조정해주는 이미지 처리 방식이다. 스마트 HDR과 시맨틱 렌더링이 결합해 이미지 처리 과정에서 사진 디테일을 끌어올려 준다. 한마디로 똑똑한 머리를 바탕으로 카메라의 하드웨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또 A13을 바탕으로 인물사진 모드를 제공한다. 인물사진 모드는 피사체는 부각시키고 배경은 날려주는 아웃포커싱 기능이다. 아이폰SE는 여러 개의 카메라를 이용하는 대신 A13의 3세대 뉴럴 엔진을 이용해 소프트웨어적으로 아웃포커싱 사진을 만들어준다. 아쉬운 점은 같은 방식을 적용했던 ‘아이폰XR’과 마찬가지로 사람만 인식하고 나머지 사물에 대한 아웃포커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 중심주의 카메라다. 간혹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물체에는 인물사진 모드가 적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폰SE는 똑똑한 머리에 기대 빛이 충분한 환경에서는 1200만 화소치고 꽤 그럴싸한 사진을 뽑아낸다.

문제는 저조도 환경이다. 화려한 조명이 없으면 아이폰SE 카메라는 제힘을 내지 못한다. 아이폰11 시리즈에 적용된 야간모드도 지원하지 않는다. 해당 기능이 100% 포커스 픽섹을 제공하는 카메라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야간에는 아이폰SE와 아이폰11 시리즈의 카메라 성능 차이가 확연히 불거진다. 또 전면에는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 대신 기존처럼 700만 화소 카메라 하나만 들어갔기 때문에 애니모니콘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전면 인물사진 모드는 제공한다.

재활용도 통한다는 애플의 ‘깡’

이 밖에도 아이폰SE는 자잘하게 아이폰8과 다르다. 3D 터치가 적용된 아이폰8과 달리 아이폰11 시리즈처럼 햅틱 터치가 적용됐다. 동영상 촬영 시 확장된 다이내믹 레인지와 스테레오 녹음을 지원하며, ‘와이파이6’ 등 최신 통신 규격을 지원한다. 기가비트급 LTE를 제공한다. 5G는 지원하지 않는다. 또 A13 바이오닉 칩의 3세대 뉴럴 엔진을 활용해 증강현실(AR) 및 지능형 앱 지원을 강화했다.

하지만 아이폰SE의 본질은 재활용품이다. 기존 생산 시설과 부품을 활용해 만든 제품이다. 재활용품을 새것처럼 포장해 만들 수 있는 건 애플의 능력이다. 우리가 만들면 재활용도 통한다는 애플의 깡이다. 아이폰 출시 이후 13년을 뛰어 애플의 가치는 모두가 인정한다. 매 순간 혁신적이었던 첫 무대와 같진 않지만, 타고난 디테일과 사용자경험은 어딜 가지 않는다. 아이폰SE는 기존 제품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전략이다.

| 화려한 조명이 감싼 아이폰SE

다양한 라인업과 브랜드로 이용자들을 포섭하는 안드로이드 폰과 달리 아이폰은 아이폰이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파생 모델 없이 프리미엄 단일 모델 전략을 고수해왔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늪처럼 빠져나가기 힘든 애플의 생태계, 고객 충성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근 제품군이 3종으로 늘긴 했지만 다른 스마트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제품군이 많지 않은 만큼 기기 만듦새나 완성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또 iOS와의 결합을 통해 약 4년의 제품 지원을 보장한다. 대부분의 안드로이드 폰이 출시 후 약 2년 동안만 OS 업데이트가 이뤄진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50만원대 가격, 플래그십급 성능, 대대익선 추세와 다른 컴팩트한 사이즈 등 크게 세 축을 바탕으로 아이폰SE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쌓아온 브랜딩이 없다면 6년 전 디자인을 재탕하는 제품은 시대착오적인 제품이라는 혹평을 듣기 쉽다. 또 적은 종류의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아이폰이 아니라면 기존 부품을 재활용하더라고 이 정도로 비용을 낮추기도 힘들 터다. 결국 아이폰SE는 아이폰이다. 이 점을 빼놓고 아이폰SE의 인기를 설명할 수 없다.

장점

  • 가장 저렴한 최신 아이폰
  • 가격은 중저가폰, 머리는 플래그십
  • 기본은 하는 나머지 성능

단점

  • 지겨운 디자인, 광활한 베젤
  • 저조도에서 아쉬운 카메라
  • 작은 듯 작지 않은 크기

추천 대상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은 한때 아이폰 유저

spirittiger@bloter.net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디바이스와 게임,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