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마저 韓 떠날라”…게이머 분노는 ‘현재진행형’

가 +
가 -

국내 게임업계는 최근 ‘스팀 사태’로 설왕설래를 이어갔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에게 “유통중인 미심의 게임물에 대해 등급분류 해달라”고 권고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사진=스팀 홈페이지 갈무리

얼핏 보기에는 등급분류 받지 않은 게임에 대한 사후조치로 보이지만 게이머 입장에서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스팀 게임은 한국에서 ‘판매금지’되거나 지역락(특정 지역에서 접속이 불가한 현상)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규제로 작용할 경우 많은 해외 게임들이 한국 지역 판매를 중단할 것이며 시장성이 나쁘다고 판단한 스팀이 한국에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지난 4일에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과도한 게임 규제와 게임 탄압을 멈춰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제기된 바 있다. 해당 청원은 7일 오후 2시 기준 현재 4만8675명이 동의한 상태다.

게이머들이 뿔난 이유는?

게이머들의 분노는 ‘규제’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구조’와 맞닿아있다. 국내 서비스 되는 게임의 경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판매 목적이 있으면 예외없이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을 포함한 5개 분류기준이 존재한다. 관련법을 기준으로 놓으면 사실상 스팀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게임이 법을 위반한 셈이다.

스팀을 운영하는 밸브사가 한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 뿐 국내법 준수는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의견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ESRB나 유럽 PEGI 등 해외에도 별도 게임 심의 기구가 있어 등급분류 등의 업무를 관리한다”며 “게임물의 경우 등급분류를 받아 정상적으로 유통돼야 유저 입장에서도 한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편의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이 대목에서 찬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첫 번째는 ‘강제성’이다. ESRB나 PEGI의 경우 등급분류를 권고하지만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하는 만큼 등급분류를 독려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조치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비용’을 꼽을 수 있다. 게임의 등급분류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심의수수료가 발생한다. 게임 관련 소개 영상, 게임물 설명서, 심의료, 게임물제작자 등록, 등기, 전자 인증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데다 플랫폼, 한글화, 장르 등에 따라 수백만원이 소요된다. 등급분류가 반려돼 이의 신청을 거칠 경우 심의수수료의 75%를 추가로 지급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규모 게임사의 경우 인력 및 비용 면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디게임을 유통하는 소규모 업체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스팀에서 대행을 맡는다고 가정해도 규모와 지리적 특수성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는 ‘이용자의 심리적 수용’ 여부다. 국내 콘텐츠 산업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부분이 막대함에도 여전히 ‘게임을 하는 이용자’와 ‘산업’을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19 콘텐츠 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액 96억1504만달러(약 10조5000억원) 가운데 게임 산업이 64억1149만달러(약 7조546억원)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사태’,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셧 다운제’,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등 일련의 이슈를 통해 게임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자 ‘규제가 필요한 산업’으로 치부돼 왔다. 정작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해외보다 적은 선택폭으로 게임 이용에 제한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스팀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권고’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가상사설망(VPN)으로 국가를 변경하면 한국에서 서비스 되는 게임의 수배에 달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많은데 그걸 비꼬아서 ‘디지털 난민’이라 부른다”며 “사실상 중국을 제외하고 정부가 게임에 대해 통제하는 국가가 없는데 스팀마저 간섭하면 더 이상 할 게임이 없다”고 토로했다.

“게임 규제? 국내법 준수 권고 차원”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자 게임위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게임위에 따르면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한 게임물이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밸브사와 꾸준히 논의했다.

/사진=게임물관리위원회 제공

논의를 진행하던 중 게임위가 지난달부터 영문 사이트를 통해 해외 게임사도 심의를 신청하면 등급분류를 하는 절차를 마련했고 이를 밸브에 안내한 것이라고 밝혔다. 밸브사도 한국 이용자에게 합법적으로 게임을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하다 권고를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게임위가 밸브사를 상대로 일방적인 규제나 강제사항을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용자의 우려와 달리 게임위는 “밸브사와 스팀 게임물 지역락 및 차단과 관련된 논의는 없다”고 전했다. 해외 게임물 유통사가 국내 게임산업법을 준수하도록 한 독려 차원이지 스팀 및 유통 게임을 규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게임위의 해명에도 이용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규제가 아니며 현재 권고 차원에서 진행중인 사안이라고 밝혔지만 플랫폼 사업자가 기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유통중인 게임물의 서비스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다양성이 담보되는 스팀이 한국에서만 제 색깔을 잃은 채 표류하면 밸브사도 시장성을 판단해 최악의 경우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가 남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스팀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를 우려하는 것은 왜 한국 사용자만 선택의 제한을 받아야 하냐는 논리에서 출발한다”며 “이용자들은 페이스북이 한국 게임 심의를 받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관련 사업을 중단한 것처럼 스팀도 국내 시장을 떠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산하 기관인 게임위 측에서 밸브사와의 논의를 통해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