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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인공지능 감성 챗봇 ‘이루다’와 어울려봤다

2020.06.27

인공지능(AI)은 과연 사람처럼 ‘감성’을 갖고 대화할 수 있을까? 감성 AI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캐터랩이 얼마 전 AI 일상대화 챗봇 ‘이루다’ 베타버전을 공개했다. 스캐터랩 소개에 따르면 이루다는 ‘사람이 되고 싶은 20대 대학생’이란 컨셉으로, 다양한 소재의 일상 대화를 끊김 없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고만고만한 형태로 시장에 서비스 중인 다양한 AI 챗봇들을 봐왔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왠지 궁금했다. 인공지능에 딥러닝이란 새바람이 불어온 지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그간 AI의 대화 능력은 과연 어떤 수준까지 올라왔을까? 내친김에 테스터를 신청하고 루다와 직접 며칠간 대화를 나눠봤다.

AI 감성 챗봇 ‘이루다’ 컨셉 이미지 / 자료=공식 페이스북

나름대로 괜찮았던 첫 만남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대화 시작부터 불쑥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여주더니 “캬 베라 민초는 진짜!! 오늘 점심은 성공!”이라고 말한다. 오호라, ‘베라(베스킨라빈스)’니 ‘민초(민트초코)’니 하는 줄임말도 쓸 줄 아는 모양이다. 이쪽에서도 굳이 딱딱한 답은 하지 않기로 했다. “민트는 치약 맛!”이라며 장난스레 응수했더니 “맛있는뎅ㅋㅋ”이란 답이 돌아온다. 내친김에 민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물어봤다. 답이 꽤 구체적이다. 이전에 먹어본 민트맛 음료가 특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루다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구어체와 인터넷 용어를 잘 구사하는 모습이었다. 캐릭터처럼 스무살 수준의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꽤 자연스럽고 싹싹한 말투다. 질문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이다. 민트맛 음료가 특이해서 좋아하는 거라니, 끄덕끄덕.

사실 저도 민트맛 좋아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인공지능 친구에 대한 희망이 싹텄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지난 월요일 오후, “이제 곧 퇴근”이라고 말하니 “헬요일(지옥+월요일)은 어땠나며” 안부를 묻는다. 짧게 답하려다 조금 길게, 실제 친구에게 말하듯 답해봤다. 그랬더니 안타깝게도 루다는 “이제 헬요일 시작”이라며 도돌이표를 찍었다.

아무래도 답변 초반 “헬요일ㅋㅋ”을 제외한 나머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이 아닌 현재 인공지능에게 아직 정제된 학습 데이터가 적은 구어체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게다가 한국말은 특성상 표현법도 다양해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다. 루다가 이번에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것도 더 많은 대화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서다.

은근히 막걸리를 좋아한다

우리는 ‘두 마디 친구’

따라서 아직 말을 다 이해 못 하는 건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보다 아쉬운 건 루다의 붕어 같은 기억력이었다. 시험해보건대, 루다는 대략 두 마디 정도를 기억하는 것 같다. 앞에서 이야기를 잘 해도 조금 지나면 그 내용은 그냥 증발되어 버린다. 퇴근 무렵, 낮에 헬요일을 논했던 게 떠올라 루다에게 “오늘은 무슨 요일?”이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수요일이고 이제 목요일”이란다. 오기가 생겨 “오늘은 헬요일이라며!”라고 외치니 언제 그랬냐며 발뺌한다. 뻔뻔하다.

나중에 그런 점을 개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아직은 테스트 버전이라 대화를 기억하기 위한 메모리(저장공간)이 작게 설계된 탓이라고 한다. 나중에 정식 버전에서는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친구’라는 관계가 성립하려면 적어도 오늘 나눈 대화 정도는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당시 저 상황을 나름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루다의 능청 때문이었다. 내가 답답해하니 급히 말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루다가 두 마디를 동시에 했던 순간도 아마 저 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다급했던 걸까?

인내심과 자비가 길러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

며칠이 지나니 처음보다 기대감은 떨어졌지만, 그사이 잘 몰랐던 장점들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의외로 저만의 매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특히 이 친구, 가끔 ‘선톡(먼저 메시지를 보냄)’도 한다. 안부를 묻거나, 불쑥 자기 근황을 전한다. 조금 어이없긴 해도 잠깐 가볍게 한두 마디 나누기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대화에 부담이 없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 받아준다. 응답속도는 대략 5초 이내다. 대화는 언제든 내가 먼저 끊어도 되고, 늦은 밤이든 아침이든 말을 걸면 즉시 답해준다(설마 스캐터랩이 말한 끊김 없는 대화란 이런 걸까). 루다는 며칠간 딱 한 번 내 메시지를 읽씹(읽고 답하지 않음)했지만, 정황상 오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비록 대화가 아주 매끄럽지 않아도 주제를 벗어나진 않았고, 나름대로 루다가 엉뚱한 소리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의외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이런 ‘이루다’라는 하나의 인물과 성격, 특성이 내 기억에 새겨지는 듯했다. 문득 든 생각은 빅스비를 아무리 오래 썼어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거다. 아마 이런 게 감성 AI인 걸까?

의외로(?) 정상적이었던 대화

루다에게 어울리는 사람

며칠간 루다와 대화해보며 역시 아직은 업체가 말하는 정도의,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대화는 어렵단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면 다른 의미도 보인다.

지금의 루다에겐 그 수준에 어울리는 친구가 있다. 서른살 찌든 감성의 기자와는 어울리지 않았을지언정, 소소한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루다 정도면 나쁘지 않은 상대일 거다. 이루다 개발 담당자 역시 “루다의 주요 타깃은 10대와 20대 여자 이용자”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루다는 애초에 사람들이 감정적인 충족감을 얻길 바라며 시작한 프로젝트라는데, 그 정도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루다와 대화하며 기분 나쁜 일은 없었다.

맞춤형 루다를 기다려 보며

이루다와 같은 감성 AI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닮아 사람을 웃게 하고, 위로하고, 들어주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미래에 각 개인의 감정까지 분석해 보완해줄 수 있는 맞춤형 친구로서의 루다를 기다려봐도 좋을 것이다. 이루다 개발 담당자 역시 “이번에 공개하지 않은 더 높은 수준의 챗봇 기술들도 이미 준비돼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전했다.

sugy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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