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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그만…’n번방 방지법’ 후속책 마련해야”

2020.07.01

“국회가 ‘쇠몽둥이’를 쥐어 줘도, 정작 법원은 ‘솜방망이’로 처벌을 합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도 말하는데, 아닙니다. 처벌이 없으면 만사가 헛것입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선임연구위원)

지난 5월 이른바 ‘n번방 방지법’ 6개 법안(성폭력처벌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후속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제정해 처벌을 강화하고, 범죄 특성에 맞춘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지원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n번방 방지법,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21대 국회 입법과제’ 정책세미나를 열고 이같이 논의했다.

권 의원은 “정책과 법을 결정하는 기성세대들이 온라인 공간의 끔찍한 성착취 현실에 무지했고, 귀 기울이지 못했다”라며 “디지털성범죄 연쇄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 신속한 삭제 지원 등 선제적인 국가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 ‘양형기준’ 못 고치면 답 없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을 말한다. 기존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양형기준이 지목돼 왔다. 지난 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n번방 방지법’로 재논의를 결정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선임연구위원은 “수사기관이 지구 끝까지 쫓아가고, 국회가 특별법으로 법정형을 가중해도 법원의 양형기준이 관대하고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유사 n번방 사건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유포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이 매우 크다. 불법촬영물 완전삭제 없이는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현행 양형기준상 감경요소인 초범, 반성, 피해자와 합의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서도 같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방안 마련해야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대리신청자 범위 확대(현재는 혼인 혈연관계만 가능) △허위영상물 삭제 근거 마련 △디지털 성폭력 사건 지원 변호사 목록 제공 △비수도권 상담 및 지원기관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재판과정에서 피해촬영물이 증거로 공개될 때, 노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는 불법촬영물임이 명백해 보여도 피해자가 지원요청을 하지 않으면 이를 삭제할 근거가 없다. 지원기관 또는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문제로 촬영물 유포가 지속되기도 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삭제요청을 하기 전에 지원기관이 채증하고 삭제하는 ‘지원’의 근거가 필요하다”라며 “피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질 수 있다. 단, 명백한 불법촬영물의 판단기준을 만들 수 있는지는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책세미나에서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에 대한 하한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상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성착취 영상물에 접근(소지·구입·시청·저장)이 가능한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형사재판은 가명을 쓸 수 있지만 민사재판은 불가능한 데다가, 민사소송은 피해자의 실명, 주소가 가해자에게 송달돼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신고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는 손해산정의 어려움과 피해 특성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의 하한을 설정하는 등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음란’, ‘성적 수치심’…용어 교체 필요 주장도

인식 개선은 중요한 과제다. 신고운 변호사는 현행 법률 용어를 교체해, 인식을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음란’한, 혹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신 변호사는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따져보고 ‘사적 이미지 기반 남용 행위’ 등으로 용어를 교체할 것을 권고했다.

또, 성폭력처벌법상 ‘촬영·제작’을 ‘취득’으로 바꿔, 가해자의 다양한 행위를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례처럼 가해자는 비대면·비접촉으로도 피해자의 사진·동영상 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법 개정으로 소지·시청·구입·저장(성폭력처벌법), 광고·소개·구입·시청(청소년성보호법)으로 처벌 가능 범위가 이전보다 넓어졌지만, 신 변호사는 유포 행위의 범주를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유형의 가해행위가 등장할 수 있다. 개정된 법에서도 ‘접속 링크 제공’이나 ‘제시’ 행위는 포함돼 있지 않다”라며 “열거 방식에서 벗어나 ‘권한 없는 접근’과 같이 보다 넓은 법적 개념으로 포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정책세미나 좌장은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맡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선임연구위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이 발제를 담당했다. 토론에는 신고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 최서희 ReSET 활동가, 박다해 한겨레신문사 기자,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특별자문관, 김영주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윤리팀장, 유정미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장,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