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통신장비 ‘정치 트래픽’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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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CT 시장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는 화웨이 통신장비다. 페이스북이나 틱톡, 트위터 등의 게시글 정책 논란도 뜨겁지만 화웨이 장비 처럼 글로벌 정치-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이슈는 없다.

앞서 올린 글 <국제정세 vs 사업성 뒤엉킨 화웨이 5G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화웨이의 장비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설명한 바 있다. 오늘은 최근 영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걷어내기로 한 것에 대해, 화웨이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지 우려를 표한 참고자료를 들여다 봤다. 글로벌 통신장비 1위 업체로 잘 나가던 화웨이가 정치적 트래픽에 막힌 것이다.

화웨이가 17일 밝힌 바에 따르면, 영국 통신 전문가들이 2027년까지 화웨이 장비를 제거한다는 영국정부 결정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화웨이 발(發) 자료기 때문에 영국 통신 전문가 전체의 주장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논리적으로 맞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이유는 화웨이 장비를 드러내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2025년까지 전역에 기가비트 수준의 광대역을 구축하려는 영국정부의 목표도 늦춰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비용 문제를 들여다 보자. 영국이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제거할 때 약 20억 파운드(한화 약 3조 290억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영국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한 부분이다. 5G 뿐 아니라 기존에 설치됐던 모든 장비를 제거하고, 새로운 장비(에릭슨, 노키아, 삼성 등)를 설치해야 한다. 걷어내는 비용에 추가 설치 비용까지 더하면 수십억 파운드가 더 투자돼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영국 통신사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

영국의 5G 상용망 구축도 지연될 수 밖에 없다. 화웨이는 자사 장비의 제거로 인해 영국의 5G 구축이 2~3년 지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수개월 이상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영국 정부는 전체 장비의 30% 수준으로 화웨이 장비를 허락했었고 노키아로 부터 장비 공급을 받고 있다.

리서치 회사 어셈블리(Assembly) 창립자 매튜 하윗은 “지금까지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체리 피커처럼 주요 도시 지역에 5G 구축에 열을 올려왔지만 이번 영국 결정으로 (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의 5G 구축이 지연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은 5G 전국망 구축에 화웨이를 쓸까?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통신사 중 화웨이 장비를 ‘일부’ 쓰는 곳은 LG유플러스 뿐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열을 올렸지만, 5G 서비스 시작 후 1년 3개월 여가 지난 지금의 성적은 초라하다. 비싼 5G 설비 투자에 대한 부담으로 서울 외 지역의 5G 서비스는 일천하다.

최근에야 통신3사 CEO들이 2022년 상반기 까지 5G 전국망 구축에 25조원 규모의 투자를 한다고 밝혔다.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도입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해당 내용은 이전 기사 참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특성상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는 없다. 이는 지난 2017년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의 화웨이 장비 도입 입장에 대해 홍진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관은 “5G 보안 협의회에서 (화웨이 장비에 대해)보안성에 대해 점검을 진행하고 있고, 분석해서 피드백을 받은 후 추진할 예정”이라는 원칙적 입장만 밝혔다.

우리나라의 조기 5G 전국망 구축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장비 도입이 맞다.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냐 안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 장비 중 어느 것이든 가성비와 효율성을 고려해 도입하는게 맞다. 영국 처럼 기존 설치된 장비까지 걷어 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영국 통신사 관계자는 화웨이 장비 비중을 낮추라는 정부의 지침에 대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워드 왓슨 BT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화웨이 장비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관련 “이는 말 그대로 5G 전국망은 물론 4G와 2G 고객들에게 블랙아웃을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영국 보다폰 네트워크 총괄도 2023년까지 화웨이 장비 비중을 낮추라는 정부 지침을 따를 경우 보다폰은 며칠간 고객들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정치-기술 패권 싸움의 중심에 화웨이가 놓여있다. /이미지=블로터

왜 영국은 화웨이를 배제했나?

통신 업계 관련자들의 우려에도 영국 정부가 화웨이 배제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보안 문제다. 화웨이 통신 장비에 백도어가 설치돼 있어, 자국의 중요 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된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 들인 것이다.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려면 위에서 설명한 대로 수십억 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한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추가 압박(미국 정부의 조치로 화웨이가 대만 TSMC의 반도체 위탁 생산이 막히면서, 공급 차질 및 보안성 확보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에 따라 미국의 편에 서게 됐다.

실제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는 16일 개최된 자사 실적발표회에서 5월 이후에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고 있으며, 9월부터는 납품을 중단한다고 공표했다. 이는 미국의 기술과 SW를 사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공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안 때문이다.

영국 국영 매체 BBC 테크놀로지 담당 데스크 에디터인 레오 켈리온은 지난 14일 기명 칼럼을 통해 “결국 영국 정부의 화웨이 철회 결정에는 영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체결하고 싶어 하는 점, 코로나바이러스 이슈 및 홍콩 이슈를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 고조 등이 적용 된 것으로 보았을 때, 보안 관련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부터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국, 영국에 대한 투자 중단 시사

이번 영국 정부의 사례로 다시 부각된 화웨이 통신장비 논란에 대해 중국 정부도 보복을 시사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필요한 모든 수단으로 중국 기업의 권리를 지키겠다”며 영국의 결정에 반발했다. 영국이 기술과 비즈니스 문제를 정치화했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주영 중국 대사 또한 영국 정부에 대해 ‘화웨이를 대하는 방식을 다른 중국기업들도 지켜보고 있다’면서 영국에 대한 투자 중단에 대해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