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 ‘판호’ 안 내주는 中, 韓 안방까지 독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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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게임 산업 통제가 강화됨에 따라 현지 게임사들이 인접 국가로의 서비스 확대를 강화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이달까지 애플 앱스토어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의무화했고, 주요 업데이트 및 개정 사항에 대해서도 판호를 재적용하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게임사들은 해외 시장을 공략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중국 진출이 막힌 국내 게임사들은 내수 시장에서도 더 거세진 ‘중국풍’에 시달리게 됐다.

게임산업 통제, 中 꼼수 숨겨져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한령(한국 콘텐츠 제한령)이 해제될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게임업계에도 실낱같은 기대감이 감돌았다. 이는 지난 1일 한국관광공사가 중국 최대 여행기업인 트립닷컴그룹의 현지 브랜드 ‘씨트립’과 공동으로 ‘슈퍼보스 라이브쇼’를 통해 한국 관광상품 판촉에 나선다는 소식에서 불거졌다.

중국의 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사진=픽사베이

슈퍼보스 라이브쇼는 량젠쟝 씨트립 회장이 직접 출연해 여행지 소개와 관광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갈등을 빚었던 2017년 이후 약 3년 만에 한국 관광상품이 판매되는 것을 두고 ‘한한령이 해제 국면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 진출이 막혔던 국내 게임업계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14억명 이상의 인구가 밀집됐을 뿐 아니라 게임시장 규모 또한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빅마켓으로 꼽힌다. 2017년 3월 이후 단 한 건의 외자판호(외국 기업에 내주는 콘텐츠 유통 허가권)도 발급받지 못한 국내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씨트립의 사례가 중국 진출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국내 게임업계의 기대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외자판호뿐 아니라 내수 게임 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자국 기업을 고강도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최근 애플에 따르면 오는 31일까지 판호 관련 문서를 등록하지 않은 게임은 중국 앱스토어에서 제공하지 못한다. 기존 중국 앱스토어에서는 판호 관련 서류를 내지 않아도 게임을 올릴 수 있었지만, 중국 정부 통제에 따라 정책이 변경될 처지에 놓였다. 이는 중국 앱스토어에 게임을 올린 개발자들이 애플로부터 받은 이메일 공지를 소개하며 알려진 내용이다.

이를 통해 중국 게임사는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 게임을 올렸던 기업들이 타격을 입게 됐다. 앱스토어 쇼크로 많은 게임사들이 인접 국가로 우회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대만 매체 타이페이타임즈는 “중국 정부의 판호 발급 정책이 더 엄격해졌고 많은 현지 개발사들이 일본, 한국 등 인접 국가의 퍼블리셔를 찾거나 직접 진출하는 길을 찾고 있다”며 “중국에서 일본과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은 종료됐고 대만 게임도 승인을 받기까지 약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게임 산업 통제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사상통제 요소다.

중국 텐센트 사옥 전경. /사진=텐센트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2018년 시 주석은 집권 2기를 맞아 ‘중국몽(전세계를 호령하던 과거의 중국을 되찾는다)’ 사상을 주창하며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을 쌓았다. 이후 중국에서는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을 반대하며 폭력적 시위와 단체 행동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사상통제를 진행하며 게임도 하나의 문화적 요소로 보고 폭력성 및 집단 행동을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피가 튀는 게임의 그래픽을 수정하거나, 채팅 기능이 들어간 게임에 대해 서비스를 중단시키는 등 폭력적으로 영향을 줄 요인을 제거한 것. 판호 발급 기준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다른 이유는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인접국가에서 중국 게임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중국 게임사들은 2015년 이후 ‘카피캣(다른 제품을 베끼거나 모방하는 것)’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여전히 품질이 좋지 않은 게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래픽이나 게임성 면에서 진일보한 성장세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수 시장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키웠다는 판단하에 통제를 통한 ‘풍선효과(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특히 1인당 평균 매출(ARPU)가 높은 한국 시장이 주요 타깃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게임 산업 통제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과 해외 시장 공략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가 숨어있다”며 “거리상으로 가깝고 해외 게임사에 대한 특수 규제가 없는 한국 시장이 중국 게임업계의 먹잇감이 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안 된다”…韓 업계 위기감 고조

중국 모바일게임 잠식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게임의 모바일 시장 잠식과 현지 서비스 타진을 두고 다양한 대안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9일 국회 의원회관 제10간담회실에서 열린 ‘중국 게임 판호 전망과 방안 모색’에 대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고민과 우려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었다.

김상현 한국콘텐츠진흥원 북경센터 센터장이 29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화상 회의툴을 통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한국콘텐츠진흥원 북경센터의 김상현 센터장은 원격 화상 회의로 현장에 참여해 중국의 게임산업을 진단했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국 게임 산업 규모는 2308억위안(39조3675억원)으로 모바일을 포함한 전체 게임이 지속 성장중이다.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된 올 1분기에도 중국 게임 산업 매출은 732억위안(12조)으로 전 분기 대비 25%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자체 개발 증가폭이다. 김 센터장은 “중국 게임 산업 매출 증가율은 25%인데 이중 자체 개발작의 증가율은 29%에 달한다”며 “점차 중국 게임 산업 경쟁력이 올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게임 시장이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텐센트나 넷이즈 같은 대형 기업의 과점화가 두드러진다고 김 센터장은 설명했다. 두 기업의 매출은 중국 전체 게임 시장의 52% 수준이다. 업계가 추정하는 중국 게임사가 3만개 정도 규모임을 감안하면 상위 기업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점화된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결정적 배경이다.

판호 발급 건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도 현지 게임사들의 해외 진출을 부추기는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판호 발급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인데 2018년과 올해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2018년의 경우 신문출판부 이관 이슈도 있었지만 미국과 무역전쟁, 송환법 등의 이슈 등 대외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게임사의 판호 발급이 3년 넘게 진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대외적 이슈는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중국의 한국 게임 견제 전략은 판호를 늦게 주거나 발급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한국 게임을 참고하거나 카피하는 시간을 벌고 그동안 시장을 미리 선점에 해당 업체가 들어올 땐 이미 늦게 되는 상황이다. 지난 실적을 기준으로 추산하면 4년간 10조~17조5000억원 가량 소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왼쪽)이 29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토론회 참가자들은 중국 시장 진출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센터장은 “중국은 퍼블리셔(게임 유통사)가 중심인데 한한령 해제로 판호 발급이 재개돼도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된 상태에서) 장밋빛 기대는 금물”이라며 “강점이 있는 분야를 파고 들면서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국장은 “판호가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이고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이기 때문”이라며 “한국 게임 기업이 판호 획득하기 위해서는 지사가 중국에 설립돼야 하며 자본력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한다. 기업이 중국 내에서 판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시장의 다변화이지만 현 시점에서 중국은 여전히 우리 게임 산업에 중요한 시장이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회의체를 통한 공식·비공식적 문제 제기, 지스타나 한중일 e스포츠 대회 등 민·관 교류 행사, 국내 업계간 정보 공유를 통해 진정성 있는 논의 등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