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 원격의료, 中·日 펄펄 나는데…한국, ‘나 홀로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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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들과 캠핑을 떠난 A씨는 이동 중에 갑자기 무릎 통증을 느꼈다. 아팠지만 이미 교외로 나왔고, 오랜만의 지인 모임인데 병원에 가느라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A씨는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를 켜고 의사와 상담을 했다. 증상을 들은 의사는 임시로 쓸 수 있는 슬개골 스트레칭과 대퇴사두근 훈련법을 알려줬다. 의사와 상담을 마친 뒤 A씨는 “급할 때 언제든 의사와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고 말했다.

위 사례는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활용한 원격의료 상담 내용의 일부다. 이처럼 몸이 아플 때 언제든 휴대폰으로 의사와 상담을 할 수 있다면 무척 편리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제34조(원격의료)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에서만 원격의료가 가능할 뿐, 의료진-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되고 있다. 원격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여러 번 나왔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는 세계 각국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한국은 반대로 주저앉아 있으며,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고스란히 가고 있다.

24시간 아무 때나 의사와 대화한다
주변 강국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원격의료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일본의 지난해 원격의료 시장은 2억 달러(한화 2364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의 라인헬스케어

특히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LINE)과 소니의 의료 전문 플랫폼 ‘M3’의 합작회사인 ‘라인헬스케어’는 지난해 12월부터 원격의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 내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메신저 라인을 활용해 이비인후과·내과·소아과·산부인과·정형외과·피부과 전문의와 상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료 상담 시간은 24시간 언제나, 주말에도 가능하다. 사용자는 상담하고 싶은 과를 선택하고 급할 경우 ‘지금 바로 상담’을 선택하면 채팅 형식으로 의사와 30분 동안 대화할 수 있다. 급하지 않을 때는 ‘나중에 답변받기’를 선택하고 48시간 내에 문자 메시지로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대 방지를 위해 9월까지는 이용료가 무료다.

세계 최대 원격진료 플랫폼 ‘핑안굿닥터’ 모바일 앱

의료 후진국으로 분류되던 중국은 2014년부터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약 39억 달러(4조6098억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땅이 넓은 중국은 의료 인프라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서 정부가 원격의료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원격의료 시장이 커지자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의 대형 IT기업들도 원격의료 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진료 상담 중 10%가 원격으로 이뤄지지만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플랫폼의 성장세도 폭발적이다. 중국 디지털헬스의 선두주자인 ‘핑안굿닥터’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7억4700만 위안(약 473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9% 늘었다. 올해 상반기 일평균 상담 건수가 83만 회에 달하며 전년 동기 대비 26.7% 증가한 덕이다. 현재 핑안굿닥터의 가입자는 3억4600만명인데 전년 동기 대비 5690만명이 늘어났고 MAU(월간 활성화 사용자 수)는 6730만명에 달한다. 핑안굿닥터는 1000여명의 내부 의료진과 1만3000여명의 외부 의료진을 갖추고 있으며 3100여 곳의 병원과 1만여 곳의 약국 등과 협업해 24시간 원격진료 등을 제공 중이다. 게다가 환자 진료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의료 서비스 확대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오로지 대면 진료…의료계 반대 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과 달리 국내의 원격의료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0년에 원격의료가 시범사업으로 처음 시행된 이후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에 걸쳐 의료법 개정안이 꾸준히 발의됐으나 매번 통과가 무산돼 20년간 시범사업 형태로만 진행되고 있다.

한국 의료계의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은 ‘무조건 반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2월,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도입 최종안을 공개했으나 의료계가 즉각 반발했다. 당시 의료계는 “원격의료로 오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또한 대형병원만 수혜를 입고, 소형 의료기관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총파업을 했다.

/픽사베이 제공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던 원격의료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6~28일에 비대면 진료(원격의료) 육성을 비롯해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등 4대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2차 총파업을 진행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뿌리 깊은 거부감은 여전하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5월 “환자 진료는 대면 진료가 원칙”이라며 “원격의료는 환자의 의료 이용 편의성 또는 편리성 기준이나 비용-효과성 기준으로 평가돼선 안 된다”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료계판 ‘코리아 패싱’…원격의료 기술 있어도 국민은 예외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차가 분명하다 보니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역차별이 아닐 수 없다. 서비스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돼 정상적인 서비스가 불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제공

원격의료앱을 개발한 스타트업 메디히어는 규제 때문에 올해 1월 미국에서 앱을 출시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미국 내 한인을 한국어와 영어로 연결해주고 있다. 의료비로 악명 높은 미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격진료와 처방을 제공해 호평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4월부터 미국·영국·인도 등에서 이미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탑재된 ‘삼성 헬스’ 앱을 이용하면 의사와 화상으로 면담하고 엑스레이나 피검사 결과 등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규제 때문에 쓸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의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앱 링거(Ringer)는 국내 개발사가 지난 6월 출시했지만 정작 한국인은 못 쓴다. 처음에는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개발됐지만 지금은 위치추적을 통해 ‘해외 교민에게만’ 의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객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이 크다.

김순용 케어팩토리 대표는 “24시가 비대면 의료상담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행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 해외에 있는 교민들 대상으로만 서비스 중”이라며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통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더 뜨거워진 원격의료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은 2020년 355억 달러(약 44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부터 연평균 14.4%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문제를 계기로 원격의료 시장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졌으며, 관련 산업은 더욱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픽사베이 제공

코로나19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업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의 원격의료 서비스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34.7% 성장했고 지난해 시장 규모는 24억 달러(약 2조8392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 의회는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메디케어(연방정부가 의료비 50%를 지원하는 제도)를 통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보장하는데 약 5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각) CNBC는 구글이 원격의료 업체 암웰(Amwell)에 1억 달러(약 1182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암웰은 구글의 머신러닝 기술 등 클라우드와 AI, 빅데이터 기술을 자사 서비스에 도입할 예정이다. 구글 관계자는 “원격의료를 원하는 소비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챗봇이 아닌 대화형 AI가 상담을 돕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격의료 “국민 편의 증대 및 경제적 효과 크다”
원격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IT기술과 바이오기술의 접목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미래 신성장동력인 것이다. 한국은 관련 분야에서 상위권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원격의료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이를 반대하는 의료계의 파업이 일어나는 형편이다.

이에 하루 빨리 원격의료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의료 편의가 즉각적으로 향상될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 경제적 측면에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민간 경제 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은 올해 1월 발행한 ‘원격의료 서비스 규제 완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원격의료 관련 규제를 풀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2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에서 김재현 연구실장은 “원격의료 서비스에 쓰이는 ICT 자본이 증가해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의 쓰임도 늘어나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원격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가 총실질생산, 총실질소비, 총실질자본, 총실질투자, 일자리를 모두 증가 시켜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의료법 제 34조의 의료인-환자 간 원격 의료를 금지하는 조항을 가능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