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HDC현산의 침묵은, 곧 아시아나항공 인수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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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정몽규 회장(왼쪽)과 이동걸 회장(오른쪽)./사진=홈페이지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지난 달 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 간의 긴 회동이 있었죠. 어렵게 성사된 자리였기에 금방이라도 결론이 나올 것 같았지만, 회동이 있은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 새로운 소식은 일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바로 잡아야 할 정보는 하나 있습니다. 일각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HDC현산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 총 2조 5000억원 중 1조원을 깎아주겠다고 제안을 했다는 데요. 

<블로터> 취재 결과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이런 제안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산은도 공식적으로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이미 말한 바 있는 데요.

이 회장은 정 회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름의 융통성 있는 딜 구조를 제안한 건 맞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정 회장이 먼저 1조원을 깎아달라면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먼저 1조원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제안은 하지 않은 겁니다. 사실상 이 회장 쪽에서 정 회장에게 백지수표를 던진 셈이죠. 

그런데 왜 정 회장은 잠잠한 걸까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과연 아시아나항공을 살까요. 말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정’에 가깝습니다. 딜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HDC현산의 입장은 산은과의 회동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HDC현산은 아직도 ‘재실사’를 고수하는 듯 보여집니다. 산은이 이미 ‘NO’라고 답한 부분이죠. 이 회장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정 회장에게 제시해도 ‘재실사’에 대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HDC현산에게 ‘긍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이 만난지 얼마 안돼 그런지 그런 볼썽사나운 ‘보도자료 싸움’도 안하는 모양새입니다. HDC현산 홍보팀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공식 질의에 대해 “어떤 얘기들이 오고가는건지 (홍보팀에) 들어오는게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HDC현산이 자신들의 입장을 산은 측에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서라도 전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정 회장의 공식적인 침묵은 그 자체로 거절을 의미한다는 게 타당하다는 분석입니다. 수천억원, 수조원이 오가는 M&A(인수합병) 거래에서 거래 상대방과 소통과 대화는 상식이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자칫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M&A 전문가들도 “침묵은 곧 거절”이라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HDC현대산업개발 8월6일자 보도자료./사진=홈페이지

그렇다면 HDC현산의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는 이유, 정몽규 회장이 일관되게 재실사의 중요성을 견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HDC현산의 앞선 보도자료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HDC현산이 낸 8월6일자 보도자료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위기가 매도인인 금호산업의 부실경영과 계약 불이행으로 초래된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의 2019년 결산 재무제표는 이런 HDC현산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부채총계(12조5951억원)가 2018년말(7조979억원) 대비 5조5000억원 가량 갑자기 증가했죠. 자본총계는 1000억원 가량 줄었는데 구성 내용을 보면 결손금이 8000억원 가량 급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27일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런 재무제표가 확정, 발표된 올해 3월말 확인해보니 본인들이 생각한 수치와 큰 차이가 있었던 거죠.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오른쪽부터 2018년 연간, 2019년 연간, 2020년 상반기)./자료=아시아나항공 2020년 상반기 보고서

여기까지만 보면 HDC현산의 주장에 귀가 솔깃합니다.

그러나 매각측과 산업은행은 다르게 판단합니다. 늘어난 부채는 대부분 리스 및 리스 관련 충당 부채이고, 이는 회계기준 변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다. 사전에 정보제공도 성실했고요. 실제 늘어난 부채 약 5조5000억원은 대부분 리스 부채 및 충당 부채임이 재무제표에 표시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을) 사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물론 HDC현산은 사실무근임을 주장합니다. 지금도 사고 싶지만, 재실사를 요구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HDC현산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사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나 확연합니다.  이 회장이 강하게 비난했다가 이내 다시 정 회장에게 만나자고 제안해 모종의 딜 구조를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HDC현산 관련 인물들의 행보도 이번 딜의 현재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김앤장이 움직이고 있음은 <블로터>의 보도에서도 이미 다뤘습니다. 

지금은 어떠한 대외적인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혹시 모를 소송이나 거래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HDC현산은 앞으로도 계속 침묵을 지킬 것으로 보입니다.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산은은 다릅니다. M&A 당사자가 아닌 채권은행으로서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신청해야 할 만큼 어렵습니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고만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