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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온라인 여론형성

2008.06.10

5월2일, 촛불집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주요 참석자는 교복 입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들을 거리로 내몬 건 이를테면 0교시 부활과 우열반 자율화 등 ‘학교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때부터 잠재된 불만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학교 급식 당사자인 학생들에겐 피부에 와닿는 위험이었다. ‘미친소는 싫어요’와 같은 발랄한 구호를 앞세워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모습은 80년대 시위문화를 경험한 기성세대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5월7일 열린 쇠고기 청문회는 어른들을 시위 현장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5월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가 출범하고 촛불시위도 전국민이 참여하는 문화제로 확대됐다. 5월29일 따가운 여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 고시가 발표됐다. 성난 민심은 폭발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국민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려듣는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6월 연휴에도 휴식을 반납한 시민들은 72시간 릴레이 집회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아빠와 엄마, 아이가 손을 맞잡고 거리로 나섰다. 내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어서 나왔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참여 이유였다. 6.10 민주항쟁 21주년을 맞는 6월10일에는 전국 10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기다리고 있다. 여론에 귀 막고 인터넷을 외면한 이명박 정부의 100일은 흡사 100년처럼 길었다.

집단지성과 온·오프라인 융합, 새로운 시위문화 만들어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문에서 촉발된 일련의 사태는 집단지성과 참여의 힘을 잘 보여준다. 어느 TV 토론회에서 ‘미국산 햄버거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내장으로 만든다’고 말한 한 우익단체 사무처장의 발언을 예로 들어보자. TV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그의 발언 동영상은 동영상 UCC 사이트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에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그것도 친절하게 영문 자막까지 덧씌워져.

발언이 방송된 직후, 해당 햄버거 제조업체는 성명서를 내고 ‘자신들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로 햄버거 고기를 제조하지 않으며 원재료인 소 또한 호주산 청정육을 사용한다’고 반박했다. 이 반박문도 기존 미디어를 타고 방송되기 전에 이미 주요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누리꾼에게 알려졌다. 예전처럼 전통 미디어가 전달해주는 정보만 수동적으로 받아보던 시청자가 적극적인 정보전달자로 바뀐 세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더구나 이들 ‘뉴미디어’ 집단은 장비와 시간, 공간의 제약 없이 더욱 발빠르고 자세하게 현장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 문화제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위문화와 여론형성 방식을 창조했다. ‘지도부’에 의해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되는, 정해진 구호와 공격·방어가 반복되는 80년대식 시위 문화는 옛말이 됐다. 누가 독려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에 모이고 자유롭게 구호를 외친다. 촛불소녀, 예비군 오빠, 유모차 부대가 한데 어울려 거리를 행진한다. 자유발언대는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이다. 내키는대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원하는 시간에 귀가한다. 몇몇이 자리를 뜨면 또다른 누군가가 자연스레 빈틈을 메운다.

굳이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시위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거리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은 집안 PC 앞에 앉아 실시간 방송사이트에서 현장을 보며 시위에 동참한다. 휴대폰과 노트북, PC카메라와 와이브로로 무장한 거리의 뉴미디어들은 쉴새없이 현장 소식을 안방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불법 폭력 진압이 벌어질라치면 순식간에 수십 대의 카메라폰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진다. 그늘진 곳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폭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시위 도중 전투경찰 발에 짓밟히는 여대생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은 인터넷에 올라온 지 하루만에 재생수가 100만회를 훌쩍 넘었고, 해당 전경은 결국 징계를 받았다.

아고라

시위의 ‘배후세력’은 말하자면 온라인 게시판이다. 다음 아고라에선 누구나 자기 의견을 올리고 상대 주장에 반박할 수 있다. 누리꾼은 스스로 지도자가 돼 시위 방식을 함께 토론하고 만날 약속도 정한다. 공식적인 행사 시작 시간도, 끝나는 시간도 없다. 모든 건 참가자 마음이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이들은 자연스레 역할을 나눠 맡는다. 누군가 카메라폰과 캠코더로 현장 곳곳을 촬영하면, 다른 이는 동영상을 분석해 불법 폭력과 같은 ‘숨은 뉴스거리’를 찾아낸다. 와이브로와 노트북으로 무장한 또다른 참여자는 이를 인터넷 주요 게시판으로 실시간 전송해 안방 시위 참여자에게 퍼뜨린다. 온라인 게시판은 뉴스가 모이는 데 그치지 않고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누리꾼 ‘안단테’가 4월6일 올린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에는 6월10일 현재 136만명이 넘는 시민이 서명했다. 이 서명운동은 1천만명 서명을 목표로 올해 말까지 계속된다.

거리의 저널리즘, 기성 미디어를 비웃다

처음 촛불집회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철부지 아이들의 장난 쯤으로 치부하던 전통 미디어들도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분위기다. 1분 안팎으로 거리 분위기만 짧게 전달하던 기존 미디어들로선 첨단 디지털 기기로 무장하고 시위 현장 곳곳을 24시간 생중계하는 거리의 저널리즘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여전히 전통 미디어의 주요 구성원들은 오프라인 지면에 매달려 있었고, 24시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뉴스 시스템도 갖추지 않았다. 온라인의 발빠르고 생생한 보도 앞에서 기존 미디어들은 한계를 느껴야 했다.

방법은 하나. 전통 미디어들도 이제 거리로 나올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시IN>은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 이후 처음으로 ‘거리의 편집국’을 다시 세웠다. 이들은 아예 시위 현장에 천막을 치고 실시간 중계에 들어갔다.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도 거리로 뛰어들었다. 특별취재팀을 꾸린 이들은 촛불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킬 태세다.

전통 미디어가 숨을 고르고 걸러진 기사들을 내보내는 반면, 디지털 게릴라들은 현장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이들은 거칠지만 생생한 뉴스를 전달한다. 독자들은 전통 미디어들이 내놓는 정제된 기사를 통해 거리 분위기와 시위 흐름의 큰 물줄기를 파악하는 동시에 거리의 저널리스트들이 전달하는 생생한 화면으로 현장에 참여한다. 전통 미디어가 큰 물줄기라면 거리의 저널리즘은 본류를 형성하는 수많은 지류들이다. 이들은 서로를 메우고 보듬어안으며 새로운 뉴스 공급 형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섞이고 상호 보완하는 형태가 본격화된 것이다.

예전처럼 정보 채널을 틀어쥐고 좌우하던 기존 미디어의 힘은 거리에서 통하지 않는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왜곡보도는 곧바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고발되고 지탄받는다. 온라인은 거대한 견제세력으로 성장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미디어의 편향된 보도에 시민단체는 ‘리얼 조중동으로 대적한다. 누리꾼은 자발적으로 기자단을 꾸리고 현장 소식과 사진, 동영상을 게시판에 모은다.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여론을 조정하는 일은 온라인 토론장에서 더이상 불가능하다. 여론은 집단 지성이 만들어갈 뿐이다. 단선적인 역사기록이 물러난 자리에 실핏줄같은 수많은 기록들이 모여 거대한 역사를 만드는 셈이다.

아프리카

온·오프라인의 융합과 거리의 저널리즘 확산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역시 온라인 미디어들이다. 대통령 탄핵운동이 발의되고 촛불문화제 소식들이 한곳에 모이는 다음 아고라를 예로 들어보자. 코리안클릭 자료에 따르면,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인 4월 마지막주 7억825건이던 미디어다음 페이지뷰(PV)는 5월 첫쨋주 7억9129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5월 마지막주 들어 10억6650만건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누구나 생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아프리카도 촛불시위 생중계가 몰려들며 방문자수가 크게 늘었다. 인터넷 메트릭스 자료에 따르면 5월 다섯쨋주 아프리카 방문객수는 하루 평균 53만명으로 전주 대비 71.8%나 증가했다. 5월29일 쇠고기 수입 고시안이 발표된 이후 6월 들어 아프리카 방문자수는 2~3배씩 뛰고 있다.

온라인, 오류는 짧고 진실은 길다

물론 온라인상에서 모든 정보들이 정제된 상태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바로잡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 재미교포가 올린, 물대포와 백골단을 동원해 촛불집회를 해산하는 경찰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지난해 FTA 반대 집회 장면인 것으로 드러났다. 촛불 시위 기간동안 휴교 문자메시지가 등장하기도 했고, 한 여학생이 전경에게 구타당해 죽었다는 정보가 떠돌기도 했지만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평소같으면 사소한 일로 묻혔을 법한 발언이 게시판을 타고 확산되면서 일파만파로 커진 경우도 있었다. 개그맨 정선희 씨 사례가 그렇다. 지난 5월22일 <정오의 희망곡> 방송 도중 촛불 시위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는 시청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나라 물건 챙겨서 파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를 해도 이런 사소한 것도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큰 일 있으면 흥분해서 같이 하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느냐.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으면서 큰 것만 자꾸 생각하는 것도 모순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다. 방송이 나간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항의가 쏟아졌다. 성난 누리꾼들은 정선희 씨의 도중하차를 요구했고, 그가 계약을 맺은 광고주에게도 광고 해지를 요구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파문이 커지자 정선희 씨는 6월6일 공식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결국 진행하는 3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사태를 끝맺었다.

정오의 희망곡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에 대한 반발 여론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선 무심코 내뱉은 발언도 흥분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온라인에서 한번 터져나온 정보는 순식간에 네트워크를 타고 사방으로 퍼진다. 이 정보는 한 곳에서 차단할 수도 없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더라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된다. 왜곡된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걸러지지만, 일단 걸러진 정보는 반영구적으로 소비되는 공간. 이것이 온라인의 특성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던 거리 시위는 이제 정권퇴진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 여론도 자연스레 정권 반대로 이동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반대 시위 기간에 터져나온 정부의 대운하 강행 방침은 성난 민심을 부채질한 꼴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대신 ‘대화’를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상황에서 미국과의 재협상이 만만찮음은 국민들도 다 안다. 새정부 출범 100일만에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지도 않을 테다. 그렇다면 정부는 협상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를 솔직히 인정했어야 했다. 허나 정부는 국민들의 의혹과 지적을 ‘괴담’ 수준으로 깎아내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을 지 모르지만, 시간이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친소 수입 반대→고시 철회→정권 퇴진’으로 이어진 여론의 흐름 중심에는 인터넷 게시판이 있었다. 여론은 몇몇 주도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대신, 수많은 거리의 저널리스트들의 목소리가 섞이고 걸러지며 자연스레 물줄기를 만들었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조타수도 선장도 없다. 협상 채널을 잃은 정부로선 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그들의 진정한 협상대상자는 미국이 아니라 4700만 대한민국 국민이다.

asadal@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