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포스코, ‘코로나 불황’ 때 빛난 금융상품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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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왼쪽), 일본제철 생산 현장(오른쪽) 전경./사진=각사 홈페이지

코로나19가 철강사에 이른 ‘한파’를 몰고 왔습니다. 글로벌 5위 철강사 중 비중국 철강사는 일제히 올해 2분기 적자를 냈습니다. ‘적자는 없다’고 호언하던 포스코조차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낸 것입니다.

철강산업이 하향 국면에 접어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거대 시장인 중국 경제의 연착륙과 세계 경기의 침체는 제조업과 인프라 산업의 중간재를 만드는 철강사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철의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철강사가 직면한 ‘숙명’인 셈입니다.

그런데 철강사의 ‘노후’를 앞당긴 건 바이러스였습니다. 지난 3월11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이 이뤄졌고, 국내외 공장들이 ‘락다운’ 등으로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건설현장과 조선소, 자동차공장 등은 철강 제품의 대표적인 수요처인데, 고객사가 문을 닫은 것입니다. 글로벌 철강사의 본격적인 불황이 시작된 겁니다.

비중국 글로벌 철강사 실적 비교./자료=금융감독원 및 네이버 증권정보

쇳물인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1위부터 5위 철강사 중 3곳이 올해 2분기 적자를 냈습니다. 글로벌 1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은 2분기 295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글로벌 3위인 일본제철은 2분기 3070억원의 영업손실을, 5위인 포스코는 108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위와 4위는 중국 철강사인 바오우 강철과 허베이 강철인데요. 이들 철강사는 코로나19에도 자국의 보호무역주의로 흑자를 이어갔습니다.

글로벌 5위권 내 철강사의 실적을 비교하면 비중국 기업에 코로나19의 여파가 더욱 컸던 셈입니다. 일본제철과 포스코는 규모와 생산량 측면에서 비교가 가능한 회사입니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대형사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조강생산량 기준으로는 일본제철(2019년 조강생산량 5100만톤)이 포스코(4300만톤)보다 약 800만톤 우위에 있습니다. 시가총액은 코스피에 상장된 포스코가 약 16조원, 일본 증시에 상장된 일본제철이 12조원입니다.

코로나19라는 산업계에 불어닥친 ‘전무후무’한 위기상황에서 두 철강사가 보여준 체력은 달랐습니다. 두 회사 모두 올해 매출 감소와 원가 부담 그리고 고정비 부담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재무제표상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포스코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여러 완충장치를 코로나 이전, 미리 마련했고 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포스코의 올해 2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5조8848억원, 영업손실은 108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제철은 매출 12조6279억원, 영업손실은 3069억원입니다. 두 회사 모두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2분기를 기준점으로 삼는 이유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원가율부터 살펴보면 포스코가 97.5%, 일본제철은 91.9%였습니다. 원가율은 매출액을 매출원가로 나눈 것으로 수익성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90%의 원가율은 100원을 벌기 위해 90원을 쓴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철강산업은 주원료인 철광석을 전량 브라질과 호주 등에서 수입해 원가 비중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원재료 경쟁력, 제품 유통구조, 사업구조가 좋은 기업이 유리합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브라질 댐 붕괴 사고로 철광석 원가가 크게 오르면서 원가율이 90%를 넘기게 됐습니다. 일본제철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원가구조를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가 두 철강사의 매출에 미친 영향은 어떨까요. 올해 2분기 일본제철의 매출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25.6%, 포스코는 21.2% 감소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하게 영업망을 갖춘 만큼 팬데믹 상황에서 매출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당기순손익 측면에서는 두 회사가 보여준 체력이 크게 엇갈립니다. 먼저 일본제철의 2분기 순손실은 469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당기순손익은 영업손익에서 금융손익 등 영업외손익을 제외한 금액입니다. 두 기업의 실적 희비는 영업외손익에서 갈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포스코의 상대적 저력은 영업외손익에서 나타났습니다.

포스코·일본제철 실적 비교./자료=금융감독원 및 네이버 증권정보

일본제철의 올해 2분기 금융손익(금융비용 – 금융이익)은 -580억원, 법인세 비용은 987억원 입니다. 영업손실(3071억원)에 추가로 1552억원의 손실이 반영되면서 당기순손실 규모가 약 4696억원으로 불어난 것입니다.

포스코는 어떨까요. 올해 2분기 포스코는 6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 분기 5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손실 규모를 키우지 않은 이유는 영업외손익에 있습니다.

올해 2분기 포스코의 금융손익은 732억원, 기타영업외손실은 154억원 입니다. 영업외손익은 흑자죠. 여기에 법인세비용 573억원을 환급받으며 순이익(66억원)은 흑자를 낼 수 있었습니다. 포스코가 가까운 미래에 법인세를 경감받을 것으로 판단해 이를 회계에 선제적으로 반영했고, 이번 분기에는 법인세와 이자수익으로 인해 순손실 규모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통상 4월(이전년도 법인세를 납부함)과 8월 국세청에 법인세를 냅니다. 분기와 반기 보고서 상 법인세 비용은 확정된 금액이 아닙니다.

포스코는 2019년부터 2년 연속 2분기에 금융손익이 흑자인 상태입니다. 연간 기준으로는 2017년부터 흑자입니다. 통상 기업들은 금융권 등 외부에서 끌어쓴 차입금이 많은데 반해 금융상품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포스코는 현금성 자산이 차입금보다 많은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무구조가 우량하다는 얘기입니다.

2018년 최정우 회장이 취임하면서 금융자산 규모도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금융자산은 9조7275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최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 금융자산은 6조원 수준이었습니다. 최 회장 임기 동안 금융자산은 37.2%(3조6324억원) 증가했습니다. 금융자산은 기업이 파생상품과 단기금융상품, 예금상품 등에 투자한 것입니다. 포스코가 올해 상반기 보유한 단기금융상품은 7조원(72.9%)이 넘습니다.

포스코 금융자산 규모 추이./자료=사업보고서

포스코는 왜 철강업이 아닌 금융상품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철강업은 원재료와 인건비가 오르면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비교적 안전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이자수익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곧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 제조업의 손실을 메우는 ‘보완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사진=포스코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입사해 경력 중 대부분을 재무 및 자금부서에서 보냈습니다. 자금 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오래 경력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2018년 그룹 회장으로 포스코의 정점에 올랐을 때 철강업의 수익성 악화 대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대 포스코 회장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었습니다. 최 회장은 포스코 역사상 처음으로 비엔지니어 출신으로 회장에 올랐습니다. 최 회장의 ‘투 트랙 전략(제품 판매 수익과 이자수익)’이 철강업 불황기 때 빛을 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