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먼데이]살얼음판에 부는 ‘디파이’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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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디파이 정보 사이트 DEFI PULSE 대문 갈무리, 6월 이후 자산 예치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요즘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가 화두다. ‘돈이 되는 디파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관련 시장이 단기간에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디파이 프로젝트에 예치된 자산 규모(TVL)는 약 97억달러(11조3000억원)로, 이는 올해 초 대비 10배 이상 커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디파이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투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보단 마치 너도나도 달려들었던 과거 가상자산 투기 광풍을 연상케 한다. 단순히 새로운 고수익 투자 기법 정도로 인식하고 디파이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디파이란 무엇?

먼저 디파이가 무엇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디파이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은행 같은 중개자 없이도 자산 송금, 대출, 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서비스를 통칭한다.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을 이용한 개인간 거래(P2P) 중심이므로 복잡한 서류 처리나 심사대기 시간 등이 필요 없고 수수료도 굉장히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은행 담보대출과 유사한 가상자산(암호화폐) 담보 대출 프로젝트 ‘메이커다오(MakerDao)’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디파이는 본디 블록체인으로 구현할 수 있는 미래 금융의 한 단면이었다. 또 정상적인 디파이 프로젝트의 성장이야말로 모두의 자유롭고 투명한 디지털 자산 거래를 꿈꿨던 비트코인의 초기 정신과도 맞닿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많은 이가 디파이에 기대하는 건 블록체인을 통한 금융 혁신이 아닌, ‘이자 농사’가 주는 일확천금으로 변질된 상황이다.

사진=픽사베이

돈 넣고 돈 낳기

이자 농사는 일부 디파이 프로젝트에서 사용자가 유동성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지급받는 거버넌스 토큰을 재투자해 연쇄적인 이자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탈중앙화거래소(DEX)의 경우 중앙화된 거래소나 시중 은행과 달리 초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을 예치해줄 사용자를 필요로 한다. 원래는 이때 유동성 공급자에게 일정량의 이자를 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자 농사가 가능한 프로젝트에서는 자산 예치, 대출을 일으키는 유동성 공급자에게 또 다른 자체 토큰을 보상으로 준다.

보통 이런 토큰은 해당 디파이 거버넌스에 기여하기 위해 쓰여야 하지만 토큰에 거래 가치가 생기고, 수요 증가로 그 가치가 원금보다 커지기 시작하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참여자들은 이자를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 자산을 닥치는대로 예치하고, 대출을 통해 얻은 보상도 다른 유동성 풀에 재투자하며 이자를 계속 증폭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자 농사’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자 농사 붐의 시초는 이더리움 기반 디파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컴파운드다. 컴파운드 유동성 보상 토큰인 COMP는 지난 6월 코인베이스에 상장된 이후 며칠 만에 가치가 4배 이상 폭등하며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자 이 COMP를 얻기 위해 곧 더 많은 사용자가 몰렸고 컴파운드는 단숨에 디파이 총예치자산(TVL) 규모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이후 이를 모방한 다양한 이자 농사 프로젝트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히 예견된 일이었다.

점점 커지는 우려의 목소리

그러나 이자 농사 중심의 구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보상이 줄어들거나 토큰 가격이 하락하는 순간 해당 디파이 프로젝트의 전체 가치도 떨어지게 되는 점이다. 컴파운드의 경우도 전체 발행량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수년 내에 보상용 COMP가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자, 거버넌스 투표를 통해 보상량을 조정하기도 했다.

또 ‘핫도그’는 보상으로 무려 100만%에 달하는 연간 수익률을 제시하며 상장 직후 곧바로 한화로 약 740만원 수준까지 가치가 상승했으나 3시간 만에 약 3원으로 떨어지는 황당한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디파이 거래소 창업자가 개인용 코인 물량을 빼돌려 두거나, 허술한 시스템으로 코인이 증발, 혹은 아예 거래소가 해킹당하는 사례 등, 디파이 업계엔 비정상적인 성장의 부작용으로 최근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핫도그 폭락 그래프 / 출처=트위터@edwardmorra_btc

그만큼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CEO 창펑 자오(Changpeng Zha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부분의 디파이 프로젝트가 실패할 것”이라며 투자에 주의를 당부했다. 디파이 전문가 크립토웨일(CryptoWhale)도 “초보 투자자들은 사기성 디파이에 주의하라”며 “이자 농사 프로젝트의 99%는 결국 가치 ‘0’의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 개발사 블록스트림의 최고전략책임자(CSO)의 샘슨 모우(Samson Mow) 역시 “음식 이름이 들어간 디파이 프로젝트는 스캠(사기)이며 그들은 그저 재미있게 들리도록 이름을 지을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블록체인을 망치는 누군가의 욕심

물론 디파이의 미래를 낙관하는 전문가들도 일부 있지만, 현재 상황은 폭탄 돌리기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 또 디파이 자체가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고 빠지기식의 수익 창출을 목표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리고, 사고가 이어지자 디파이도 결국은 허울 좋은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거품과 부정적인 인식은 장기적으로 블록체인 전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기타 가상자산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가 바닥을 기는 이유는 2017년 당시에도 단순 기대 심리에 기댄 폭발적 가치 상승 이후, 거품이 터지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온갖 사기성 프로젝트와 ICO가 횡행했던 것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는 지금 디파이에서도 익숙한 과거의 향기가 풍겨져 나온다는 점이다. 만약 지금 디파이를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 10일 가상자산 분석 기업 메사리(Messari)의 창업자 라이언 셀키스(Ryan Selkis)는 “디파이 거품은 대중의 기대보다 더 빨리 터질 것”이라며 “폰지 경제와 사기, 이자 농사 등은 이미 정점에 가까워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