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고, 기대대로 유쾌하고 유익한 행사였습니다. ‘2010 체인지온‘ 행사 얘깁니다. 체인지온은 다음세대재단이 주최하는 비영리단체를 위한 컨퍼런스입니다. 2008년 첫 행사를 열었으니, 올해로 3회째입니다. 홈페이지와 블로그, 이미지와 동영상,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부터 손 안의 소통망 스마트폰까지…. 세상과 연결된 디지털 미디어가 넘칩니다. 인력도, 자금도 넉넉치 않은 비영리단체로선 따라잡기 버거울 만도 합니다. ‘체인지온’은 이런 비영리단체들이 슬기롭고 유용하게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자 시작됐습니다.
3년을 빠지지 않고 출석 도장을 찍었습니다. 체인지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분위기가 어렴풋이 엿보이더군요. 무엇보다, 체인지온에선 늘 ‘사람’이 우선입니다. 신기술과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를 소개하지만, 그게 곧 목적은 아닙니다. 모든 발표는 기술과 도구를 다루는 ‘사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발표도, 참석자도 늘 만나고 엮이는 생활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체인지온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체인지온은 또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전 9시30분에 시작해 해질녘이 돼서야 끝나지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심시간과 짧은 휴식시간을 빼곤 줄곧 발표가 이어지는데, 눈길을 떼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발표 내용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따지고보면 오가는 얘기들이 곧 ‘내 얘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가며 보고 느끼는 얘기들을 대신 전해듣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발표자와 참가자 구분이 따로 없는 것도 체인지온의 매력입니다. 정해진 발표자 외에도 끊임없이 참가자들이 행사에 어울릴 수 있도록 현장에선 다양한 접점을 마련합니다. 참가자들은 행사 분위기를 트위터(해시태그 #changeon)로 실시간 전달하고, 이렇게 올린 얘기들은 현장에서 곧바로 공유됩니다. 쉬는 시간에도 참가자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코너를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올해엔 참가자가 QR코드를 직접 만들어보고, 이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정해진 발표자가 아니더라도 연단에 설 수 있도록 ‘오픈 세션’도 마련됐습니다. 사전 온라인 투표를 거쳐 모두 5명이 오픈 세션 시간을 채웠습니다.
이제 행사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올해 주제는 ‘라이브(live)에서 리브(live)하라’ 였습니다. ‘실시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주요 발표 내용은 체인지온 홈페이지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현쟁 분위기와 느낀 점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이번 체인지온 행사에선 꽤나 의미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김은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진행한 ‘한국 비영리 조직의 디지털 미디어 이해 및 활용도 조사’ 결과입니다. 지난 2008년 첫 행사때 황용석 건국대 교수와 박소라 한양대 교수가 공동으로 ‘비영리단체 미디어 활용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번 김은미 교수 연구는 이 조사를 심화하고 발전시킨 조사인 셈입니다.
김은미 교수는 전국 비영리단체 9432개 리스트를 모은 다음, 영역이나 지역별로 나눠 샘플링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모두 499개 비영리단체를 추려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김은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체 조사 결과는 체인지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건, 재정이나 규모 등에서 비영리단체간 격차가 크다는 점입니다. 규모가 큰 곳은 인원만 해도 500명이 넘지만, 대다수 비영리단체는 상근 인원이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작습니다. 2년 전과 비교해 비영리단체의 미디어 활용도가 그리 높아지지 않은 걸로 나타난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예컨대 홈페이지를 갖고 있어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거나, 활동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고도 이를 제대로 공유하는 데는 역부족인 모습을 보이는 단체가 적잖았습니다. 그래서 김은미 교수는 “홈페이지는 만들어두되 대안적 소통공간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동안 단체에 호감을 보였던 잠재 회원들도 쫓아내는 결과를 낳는다”라며 “좋은 미디어를 차려놓았다면 응대를 잘 하는 부분도 세심히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입니다.
오전 세션 주제는 ‘중심을 잡고 흐름을 타라’였습니다. 이중식 서울대학교 디지털정보융합과 교수와 윤종수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발표를 맡았습니다. 이중식 교수 발표는 여러모로 참석자들에게 생각거리를 많이 안겨줬습니다.
이중식 교수는 소셜미디어를 ‘광장’으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광장’은 핵이 없고 방만 여럿이 존재하는 공간이요, ‘즉시성’이 중요한 특성이 되는 공간이요, 여러 사람에게 노출된 ‘쇼윈도우’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목소리를 담고, 권력이 아닌 ‘권위’를 가지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요컨대, 비영리단체가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influence) 있는 목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가. 이중식 교수는 “이기심을 버리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행동을 하라”고 요약했습니다. 익명→필명→실명의 시대를 지나 ‘예명’(fabricating self)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비영리단체가 예명을 쌓으려면 프로필을 충실히 채우고 소통에 주저해선 안 된다는 게 이중식 교수의 주장입니다. 이를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중식 서울대학교 디지털정보융합과 교수
윤종수 판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CK) 프로젝트 리드이기도 합니다. 국내에 낯설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도입하고 자원활동가 조직인 CCK를 다지면서 느꼈던 경험과 지혜를 소개했습니다. 윤종수 판사 주장을 요약하자면 소셜미디어는 ‘개인화’와 ‘소셜화’란 특징을 갖습니다. 이 둘은 ‘관계맺기’로 수렴됩니다. 조직화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건 비영리단체의 오랜 숙제이기도 합니다. 윤 판사가 제시하는 해법은 ‘느슨한 관계맺기’입니다. 핵심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대신, 실제 활동들이 이뤄지는 공간 속으로 활동가들이 분산해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단체 소속인 듯 아닌 듯 활동하는 ‘유연한 자원활동가’가 많을 수록 비영리단체는 ‘소셜’해집니다. 그 바탕은 외부에 조직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다른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조직 브랜드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건 곧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신뢰성, 지속성, 책임. 이 세 가지가 윤종수 판사가 주문한 ‘열림과 진정성’의 핵심입니다.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오후 차례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를 순서였습니다. ‘기술로 가치를 전달하라.’ 조금 딱딱해보이는 주제니까요. 김지현 다음커뮤니케이션 모바일사업본부장이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 등 이른바 ‘스마트 디바이스’의 흐름과 비영리단체 입장에서 활용법을 소개했습니다. 혜안이 돋보이는 강의였지만, 비영리단체의 언어로 얘기했더라면 훨씬 청중 흡수력이 높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듣느라 사진도 못찍었네요.)
송인혁 TEDx 서울 오거나이저는 ‘공명의 비밀’을 주제로 얘길 풀었습니다. 공명(resonance)이란 사회의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에게 맞추며 마침내 비슷한 목소리를 내게 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송인혁 씨는 ‘소통 비용이 작아질 수록 공명의 크기는 커지고, 공명이 커질 수록 변화의 속도는 빨라진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일 1억5천만개의 링크가 소셜미디어에서 ‘공명’합니다. 이들이 연쇄반응을 보이고 파문을 일으키며 세상이 바뀝니다. 나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깁니다.
▲송인혁 TEDx 서울 오거나이저
‘창의적 틀의 발견’을 주제로 발표한 한명수 SK커뮤니케이션즈 UX디자인센터 디렉터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발표 형식이나 내용도 펄떡거렸거니와,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청중의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정보’와 ‘스토리텔링’을 차이를 디자이너 입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준 대목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요컨대 제품이든 메시지든, 정보를 담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였습니다.
▲한명수 SK커뮤니케이션즈 UX디자인센터 디렉터
다음 발표를 진행한 조민석 매스스터디즈 대표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과 소통’이 주제였는데요. 정해진 기간에 창의적이고 효율적 공간 미학을 구현해야 하는 건축가 입장에서 어떻게 창의적이고 효용성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지를 설명하며 자연스레 창의적 메시지 전달법을 공유해줬습니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청중의 눈길이 꽂혔는데요. 다음커뮤니케이션 제주 사옥을 직접 설계하고 계신 분이라, 더욱 기대를 모았습니다. 조민석 대표가 소개한 ‘건축에 담긴 소통 메시지’는 체인지온 홈페이지에 곧 공개될 예정입니다.
▲조민석 매스스터디즈 대표
이미나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 홍보팀장은 ‘소셜이 내게 준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스스로 소셜미디어를 즐겨쓰며 재미있는 얘기들을 엮어낸 홍보 전문가입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 활용 경험과, 이를 슬기롭게 쓰는 주변 사례들을 소개해줬는데요. 이른바 ‘성공사례’들을 나열하는 방식이 비영리단체 입장에선 현실감을 떨어뜨린 느낌도 더러 들었습니다. 발표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주변 사례가 아니라 관록 있는 홍보 전문가인 본인 경험을 ‘스토리’로 들려줬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아쉬움도 살짝 남습니다.
▲이미나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 홍보팀장
마지막 차례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오픈 세션’이었습니다. 사전 투표를 거쳐 5명이 무대에 섰습니다. 이남우 휴레이포지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성욱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장, 이종은 CCK 자원활동가, 정수현 청어람아카데미 활동가, 양석원 코업 대표입니다. 발표 방식도 색달랐습니다. 발표 슬라이드 1장당 15초씩, 모두 20장의 슬라이드를 자동으로 넘기며 5분 동안 발표하는 ‘이그나잇’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가운데 홍성욱 소장이 발표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 흥미로웠습니다. ‘적정기술’이란 ‘환경친화적이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기술’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중간기술’이라고도 하는데요. 요컨대 기술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인 셈입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 아프리카 콩고지역 아이들은 1천명이 태어나서 5분 안에 200명이 삶을 잇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개는 물 부족이 원인입니다. 마실 물이 없거나, 있더라도 오염된 물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물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많은 물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튜브 모양의 ‘큐드럼’을 만들어냈습니다. 적정기술의 한 사례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짐바브웨 지역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필터가 내장된 ‘라이프 스트로우’를 보급한 일도 있습니다. 적정기술은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좋겠습니다.
▲이남우 휴레이포지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종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자원활동가
▲홍성욱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장
▲양석원 코업 대표
하루 내내 발표가 이어진 탓에, 청중으로선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습니다. 전체 행사를 매끄럽고 재치 있게 이끌어준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총괄 실장의 사회 능력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발로 뛰며 동영상을 만든 친구들은 유스보이스 청소년들이었습니다. 행사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참석자들의 불편함을 걸러내준 모든 관계자분들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2010 체인지온 행사는 현장 발표와 더불어 트위터와 인터넷 동영상 생중계가 곁들여졌습니다. 동영상 생중계는 트윗온에어가 맡았습니다. 그 덕분에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용자들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현장 소식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발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정진호 SK커뮤니케이션즈 차장은 행사 발표 내용 전체를 마인드맵으로 만들어 공유했습니다. 역시 감사드릴 일입니다.
▲문효은 다음세대재단 대표(오른쪽)와 박남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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