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언팩]VR로 모히또 가서 몰디브 마실까? KT 슈퍼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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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블로터 기자들이 체험한 IT 기기를 각자의 시각으로 솔직하게 해석해봅니다.

코로나19 시대 첫 명절이다. 예년엔 이곳저곳 들르느라 바빴지만, 올핸 부모님께서 ‘내려올 생각도 말라’며 으름장을 놓으셔서 아예 가지도 못했다. 분명 명절에 고향 가는 게 귀찮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막상 또 명절 음식도 못 먹고 하니 가슴도 헛헛하고 뭔가 심심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어딜 가기엔 또 위험한 시국 아닌가. 그저 안전한 방 한 켠 덩그러니 앉아 나훈아 형님 TV 콘서트 보고, 휴대폰 만지고 영화 보고 노트북 게임을 하루 웬종일 하니 어느 순간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아, 정말 할 거 없다’.

KT Super VR과 컨트롤러./촬영=이일호 기자

아마 이런 때가 아니었다면 VR기기는 정말 만지지도 않았을 거다. ‘실감 콘텐츠’라고 해봐야 물리적으로 가 보는 것만 못한 게 사실일 텐데… 근데 지금은 아예 움직이도 못하는 시국 아닌가.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한 장비가 바로 ‘KT 슈퍼 VR(Super VR)’. ‘랜선 여행’ 한다는 마음으로 VR기기를 써봤다.

방구석 세상 여행? 오히려 좋아!

VR기기 리뷰를 처음 하기로 했을 때, 솔직히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머리에 엑스맨 같은 기계를 쓴 채 고개 흔들고 팔 움직이고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지레짐작한 탓이다. 2D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얼마나 실감 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VR 기기로 접한 경험들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고해상도의 화질이나 다양한 콘텐츠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험하지 못하거나, 혹은 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확실했다. 코로나19로 레저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일수록 더 그렇다.

슈퍼 VR로 튼 ‘뉴욕 뉴욕 뉴욕’ 영상. 고개를 흔들면 주변이 보인다./촬영=이일호 기자

슈퍼 VR로 꼭 가고 싶던 도시, 뉴욕을 여행해봤다. 단순히 평면에 정해진 장면만 보는 2D 화면의 틀에서 벗어나 사방 팔방 고개를 돌리면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유람선도 타보고 일광욕을 즐기는 뉴욕 사람들도 보다보면, 어느순간 진짜 뉴욕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콘텐츠도 매력적이다. 사이판 마이크로비치에 가서 해변을 거닐거나 영화 아바타의 배경인 중국 난티엔이주를 원경에서 내려다보는 묘미가 대단하다. VR 속 노르웨이 로포텐제도에선 평생 보기 힘들다는 오로라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진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말과 글로 옮기기 힘든 ‘실감 콘텐츠’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지점이다.

콘텐츠들이 뭐가 있나 살펴보다 보니, VR 게임도 눈에 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으면서도, 속는 셈 치고 살펴봤더니 야구 게임이 보인다. 평소 야구광인 기자가 또 야구 게임을 피해갈 순 없다.

들어가 보니 터미네이터 로봇처럼 생긴 선수들과 상대하는 게임이다. 처음엔 약간 조악하다 싶어도 공 던지고 때리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 땀 흘리며 게임을 하게 된다. 야구장 안에서 경기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어 정신 없이 하다보니 30여분이 훌쩍 지났다.

슈퍼 VR 속 ‘퍼시픽 림’ 게임을 즐기는 기자 모습. 컨트롤러를 잡고 주먹을 휘둘러야 괴물을 때릴 수 있다./촬영=이일호 기자

영화 퍼시픽 림을 원작으로 만든 게임도 보인다. 들어가보니 내가 직접 로봇에 탑승해 도시에서 괴수들을 때려잡는 게임이다. ‘왜 도시에서 괴물이 나타나!’ 싶다가도 막상 눈앞에 괴물이 등장하니 열심히 몸을 돌려가며 팔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만약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면 진짜 이상하게 보였을 거다.

한참 게임을 하고 나서 왜 사람들이 VR을 즐기기 시작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심지어 VR에 무작정 의구심을 갖고 있던 나조차도 여행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느라 한참을 즐겁게 보냈다. 콘텐츠 자체가 주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내 눈 앞에서 뭔가 경험하지 못한 게 펼쳐지고, 또 그게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VR만의 매력이 있었다.

‘그릇’은 좋지만 부족한 ‘내용물’

엄밀히 말하면 슈퍼 VR은 기기가 아닌 플랫폼이다. VR 콘텐츠를 제공하는 디바이스는 피코(pico)사의 G2라는 기기로 4K(3840×2160)급 해상도를 지원하는 장비이며, 이 장비를 통해 보는 게 바로 슈퍼 VR이다. ‘K’는 풀HD급 화면을 일컫는 용어로, 4K라는 건 풀HD급 화면이 4개가 붙은 화질을 내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슈퍼 VR은 여행, 레저, 아이돌 영상 등을 VR 전용으로 만든 ‘슈퍼 VR 워치’,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담긴 ‘슈퍼 VR 게임’, 그리고 VR 생방송과 멀티뷰 등 프리미엄 영상들이 핵심 콘텐츠다. KT의 올레TV와 씨즌(Seezn) 전용 콘텐츠도 시청할 수 있고, 이밖에 아프리카TV, V라이브, 스픽나우 등 제휴사 콘텐츠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UHD급 화면을 구현하는 디바이스 자체의 성능도 뛰어나다. 갤럭시S8에도 탑재됐던 퀄컴사의 스냅드래곤 835가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쓰였고, 디스플레이는 75Hz 주사율로 VR 기기 특유의 단점인 ‘모기장’ 같은 느낌도 안 느껴진다. 스마트폰 한 개 반 수준인 276그램의 무게는 장시간 쓰고 있어도 특별히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였다. 안경을 쓴 사용자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장점이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보인다. 콘텐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상은 360도를 둘러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주어진 화면 속 장소만 볼 수 있을 뿐 내가 원하는 디테일한 장소까지 찾아가보긴 어렵다. VR이라는 장치를 통해 보다 능동적인 시청은 가능해졌지만, 콘텐츠 자체가 주는 경험은 여전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VR 기반의 콘텐츠가 아닌 다른 영상을 시청할 땐 ‘꼭 이 기기로 봐야 하나’와 같은 생각도 든다. 예컨대 영화를 시청할 때, 영화가 VR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보니 여전히 2D로 보이게 된다. 슈퍼 VR은 이를 의식한 듯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는 듯한 환경을 구현하고 스크린도 대화질의 ‘와이드 맥스’를 구현했지만, 불편하게 기기를 쓰고 영화를 보기보단 모니터나 TV로 보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1만여 개의 콘텐츠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즐길만한 콘텐츠가 아주 많진 않다는 것도 단점이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이 많지는 않고, 제휴사의 콘텐츠들은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 또 구동 2시간도 채 안 돼 충전을 호소하는 배터리 용량도 분명 아쉬운 점이다.

VR이라는 이름의 경험

다만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단점을 감수하더라도, VR이라는 장비가 주는 경험이 전에 없이 새로운 건 분명하다. TV로, 모니터로, 또 스마트폰으로 그간 숱하게 많은 영상을 봐왔지만, VR이 주는 시각은 그보다 훨씬 더 ‘실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VR에 비판적 의구심을 갖고 있던 나조차 단시간에 이 기기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이동이 어려워진 시기, 현실에 존재하고 꼭 가고 싶었던 어느 공간을 눈앞에 그려낼 수 있다는 건 매력적 경험이다. 물론 영화 속 VR처럼 촉각이나 후각이 느껴질 정도의 기술력은 아직 받쳐주지 못하지만, 인간 인지 능력의 75%를 차지하는 시각 하나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럽지 않은가.

‘파란 약’을 먹고 VR의 세계로 들어오시겠습니까?/촬영=이일호 기자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는 ‘모피어스’가 주는 ‘빨간 약’을 먹고 진실의 문을 택했다. 이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VR이라는 ‘파란 약’을 먹고 가상의 현실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지금은 지극히 초기 버전의 VR이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진짜 그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버츄얼 리얼리티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