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뷰] 셜록 홈즈 여동생도 탐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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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뷰’는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콘텐츠를 감상·체험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는 기획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명탐정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떨까? 사실로서의 역사에는 없지만 ‘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존재한다. 이는 2006년 낸시 스프링어의 추리 소설 시리즈 <에놀라 홈즈>를 말한다.

1편 ‘사라진 후작’을 시작으로 ‘왼손잡이 숙녀’, ‘기묘한 꽃다발’, ‘별난 분홍색 부채’, ‘비밀의 크리놀린: 다섯 번째 사건’, ‘집시여 안녕: 여섯 번째 사건’까지 총 6편을 다룬다. 지난달 29일 오픈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에놀라 홈즈’는 해당 소설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사라진 후작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갈무리

에놀라 홈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집 나간 엄마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 분)’가 갑자기 툭 튀어 나온 ‘튜크스베리(루이스 패트리지 분)’를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을 다룬다.

셜록 홈즈식 추리물을 기대하는 시청자라면 그 기대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라는 큰 주제를 던져 놓고 그 안에서 에놀라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추리극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엄마 찾기’와 ‘튜크스베리 살인 미수범 찾기’라는 두 가지 주제를 그 안에 집어 넣고 개연성을 찾는다. 튜크스베리는 에놀라와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길 잃은 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만큼 배짱 좋은 에놀라에게 있어 튜크스베리는 한없이 약한 존재이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튜크스베리는 억지로 군에 입대하기 싫어 집을 나왔다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에놀라를 만나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튜크스베리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물론 둘이 포옹하거나 끈적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 ‘썸’ 그 이상의 러브라인이 감지된다. 어쨌든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은 아니니 참고 넘어가도록 하자.

튜크스베리의 대사는 영화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주요한 부분이다. 목숨을 건진 튜크스베리는 의회에 참여해 선거권 개정안 찬성표를 던진다. 결국 1표 차이로 선거권 개정안이 통과된다.

실제로 17~18세기에 걸친 서유럽의 시민혁명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전개됐는데 영국에서는 1908년부터 돌이나 폭탄을 사용하는 전투적 모습으로 변모했다. 1918년 국민투표법이 제정되면서 재산을 가졌거나 그런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약 10년이 지난 후인 1928년 들어서야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갖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갈무리

영화 속에도 이런 모습이 등장한다. 에놀라의 엄마인 ‘유도리아 홈즈(헬레나 본햄 카터 분)’는 참정권 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에놀라가 남들처럼 자수를 놓거나 조신하게 수프를 떠먹는 어린 시절 대신 주짓수를 하고 폭탄 제조를 구경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에놀라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 생각한 유도리아 홈즈가 결국 집을 떠나게 된 배경이다. 타인 혹은 관습에 묶인 삶에서 벗어나 본인이 직접 인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한 것.

집 밖을 떠나본 적이 없던 에놀라는 튜크스베리라는 변수를 통해 한번 더 성장하게 된다. 큰 오빠인 ‘마이크로프트 홈즈(샘 클리플린 분)’의 통제와 자객 ‘린손(번 고먼)’의 위협 속에서 강력한 한방을 날리며 주체적인 삶에 눈을 뜬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에놀라의 성장기’를 다룬다고 압축할 수 있다.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2시간 내외로 압축하다보니 개연성이 부족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에놀라는 왜 엄마보다 튜크스베리를 찾는 것을 우선시 한 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유도리아 홈즈가 모성애보다 주체적 성장을 우선시 했다면 에놀라를 왜 빨리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일까. 드라마로 풀어냈다면 인물간 서사나 스토리의 흐름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홈즈 가문의 새로운 탐정이 등장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속편이 제작될 지 모르겠지만 에놀라 역을 맡은 밀리 바비 브라운의 통통 튀는 에너지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연출이 돋보였다.

에놀라는 영화 내내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해준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에놀라가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는 장면에선 “좋은 방법 없을까요?”하며 직접 물어보는 듯한 느낌까지 전달한다. 자칫 지루해질 타이밍에 툭툭 던지는 한 마디가 영화에 다시금 집중하게 만들어준다. 아직 다섯 권의 책이 남아 있는 만큼 후속작 제작에도 관심이 쏠리는 에놀라 홈즈.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매력의 활약상을 보고 싶다면, 에놀라 홈즈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