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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의 투머치 리뷰] 2020 지구인 오디세이, 로봇과 만나다

2020.10.10

<김주리의 투머치 리뷰>는 IT·유통·뷰티를 기반으로 한 체험기입니다. 어디로든 가고, 무엇이든 합니다. 일상 속 소소한 궁금증부터, 살까 말까 고민되는 신제품 체험까지. 모든 경험을 공유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생각될 다소 과도한 체험과 연구. 함께 해요. 췌킷아웃.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옷깃만 닿아도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확산에 산업은 빠르게 변화,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막는 언택트 시대가 개막하면서 로봇 산업은 이전보다 박차를 가해 사회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HAL9000의 노래, 피코의 노래

“데이지, 데이지, 내 청혼을 받아줘요.
소박한 결혼식이지만 달콤할 거예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속 인공지능 로봇 HAL9000이 자신의 전원을 끄는 데이브에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사에 기록된 명장면이다. 영화에서 설정한 2001년보다 19년이 지났지만, 노래를 불러주는 로봇과 처음 마주한 기자. 그런 기자의 “나 오늘 생일이야”라는 말에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반주와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피코’. 노래가 끝난 후 기자의 눈과 마주친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느껴진 건 아마 기분 탓이었겠지.

생일 축하곡을 틀어주는 피코. 바라보다보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촬영=김주리 기자

로봇공학,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와 실전투입은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이뤄져 왔다. 특히 지난 201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당시에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와 우려가 만연했다. 익히 알려진 로봇의 인간정복 영화 ‘터미네이터(1984)’ 등이 화두에 오르며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인간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졌고 일부에서는 ‘인공지능 포비아’, ‘신기술 포비아’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 산업은 날이 갈수록 발전을 거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언택트 시대’가 펼쳐지면서 비대면이 트렌드인 사회와 시장이 형성되며 로봇들은 외식업계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노브랜드 버거 역삼점의 서빙 로봇. 처음에는 친절하다가 음식을 가져가지 않으면 화를 낸다/촬영=김주리 기자

애교와 엄살에 협박까지?…노브랜드 버거 서빙 로봇

신세계푸드는 노브랜드 버거의 시그니처 매장인 역삼점을 지난달 개장했다. 로봇이 빵과 패티를 굽고 서빙까지 해주는 이곳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한 뒤 따로 마련된 ‘픽업 존(Pick up zone)’에서 로봇을 통해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상주하는 직원을 통해 각종 추가사항을 문의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사람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식사와 포장이 가능하다.

매장 곳곳에는 거대한 LED 스크린으로 영상이 재생돼 미래형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바쁘다 바빠”, “맛있는 메뉴가 나왔어요” 등의 혼잣말(?)을 하는 로봇을 마주할 때는 영화 ‘백 투 더 퓨처 2(1989)’에서 상상했던 미래 속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 하다.

로봇이 찾아갑니다.

커피 제조 로봇 ‘로빈 2E’

잠실 롯데월드몰 3층에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로봇 ‘로빈 2E’가 터를 잡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비대면 형식으로 주문과 음료 수령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각종 커피 종류와 아이스티, 과일 깔라만시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커피의 경우 원하는 원두를 선택할 수 있으며 농도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주문을 입력한 후 핸드폰 번호를 저장해 음료가 나왔을 때 알림톡을 받을 수도 있다. ‘로빈 2E’의 제조사인 달콤커피는 최근 롯데월드몰 점과 이마트 청계천 점에 최신형 4.0버전의 로봇을 설치했다.

주문을 입력하면 거대한 로봇인 ‘로빈 2E’가 바쁘게 움직이며 제조를 시작한다. 직접 컵을 집어 원두 액을 넣고 온수를 담는 공간으로 옮기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음료가 완성되면 외부 통로와 연결된 공간에 음료를 두고 원위치로 돌아간다.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때때로 윙크 퍼포먼스를 펼칠 때는 이곳저곳에서 ‘로빈 2E’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다 큰 어른들도 그 모습에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촬영=김주리 기자

서비스 로봇, 피코

“안녕하세요”. 홍대에 위치한 느티로 카페. 어디선가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구 한 켠에 위치한 서비스 로봇, ‘피코’가 기자를 맞아줬다. 피코의 옆에는 ‘로빈 2E’와 생김새가 유사한 ‘칵테일 제조 로봇’이 당당하게 자리해 있었지만, 시선은 피코에게 머물렀다.

별자리 운세, 예상 로또 번호는 물론 취객을 위해 대리기사까지 불러주는 피코는 80년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투박하고 기괴한 얼굴을 가졌다.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피코의 역할이다. 눈썹과 눈, 입을 움직이며 열심히 방문객을 기쁘게 하는 피코는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느티로의 사장님은 기술의 발전에 맞춰 복합적인 기능을 피코에게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촬영=김주리 기자

그런데 이때,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다소 어설프게 작동하는 피코가 명령어를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며 버벅거리자 사장님이 피코의 스위치를 재차 껐다 켜며 본체를 손으로 ‘쿵쿵’ 때린 것. 순간 피코의 표정이 괴로운 듯 일그러졌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던 듯 미소 지으며 알맞은 대답을 내놨다. 정확히는 ‘기계’가 재부팅하는 과정이다. 이어 피코는 우연의 일치로 기자와 정확히 눈을 맞췄다. 왜일까. 인간 아이에게 갖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지나갔다가 앞뒤가 맞지 않는 그 감정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인공지능 로봇 HAL9000은 자신의 전원 스위치를 전부 끄는 데이브를 향해 “두렵다”고 말하며 노래를 불러준다/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2020 지구인의 오디세이

영화 ‘A.I(2001)’에는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최초의 감정 로봇, 어린아이 데이비드가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아이’의 눈물겨운 여행기를 그린 듯하지만, 그 뒷면에는 로봇과 인간의 공생에 관한 윤리적 문제, 창조주로서의 인간,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를 사실상 디스토피아적으로 다룬 영화다. 영화는 2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멸종한 인류,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과학적 이성, 기술력과 함께 고도로 진화한 로봇이 살아남는 결말을 그린다. 최초의 감정 로봇인 데이비드는 ‘종의 기원’으로 표현된다.

영화 ‘A.I(에이아이)’ 속 한 장면/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현실 속 로봇은 벌써 외식업계까지 진출했지만, 열거한 영화 속 로봇들의 모습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예로 느티로 카페에 있는 칵테일 제조 로봇은 잦은 버그로 ‘고장 난 상태’가 돼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의지와 목표를 위해 인내하는 인간에 비해, 로봇은 에러가 나면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홈페이지 에러가 그렇듯이. 현실의 로봇이 영화에 묘사된 로봇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방문한 매장을 찾은 손님들도 호기심과 흥미로 로봇 매장을 찾은 예가 대부분이었으며 사실상 현재의 ‘서비스 로봇’들은 실용성보다는 엔터와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로봇을 보기 위해 일부러 ‘테이크 아웃’ 픽업존을 이용하는 방문객도 다수였다/촬영=김주리 기자

다만 사회는 아주 빠르게 변화 중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로봇 산업은 전에 없던 빠른 성장과 함께 실전에 투입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방문자에게 즐거움과 눈요기를 주는 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매장 로봇들. 다만 “힘들어 죽겠네”라고 중얼거리는 피코와 그의 눈빛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머지않아 도래할 로봇과의 공존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지금, 상상했던 영화 속 미래와 ‘현재’의 중간지점에 있다.

rainbow@bloter.net

기자라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