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도 노크한 ASML… 글로벌 EUV ‘총성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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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잠정실적 발표일이었던 지난 9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출장해 화제가 됐다. 아인트호벤은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이 위치한 도시다. 반도체 업계에선 이 부회장의 네덜란드 행은 ASML을 방문하려는 목적으로 보고 있다.

ASML은 반도체 업계에서 최첨단 공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웨이퍼 위에 7나노미터 이하 회로를 그릴 때 EUV(극자외선·Extreme Ultra Violet) 패터닝은 핵심 기술이며, ASML은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곳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ASML에 대한 반도체 업계 ‘러브콜’은 앞으로 거세질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화성 삼성전자 EUV 전용 라인 V1./사진=삼성전자

이재용도 찾게 만드는 ASML의 선단공정 기술은 무엇?

반도체 업계에서 ASML의 중요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공정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8개(웨이퍼 제조-산화-포토-식각-증착-배선-EDS-패키징)로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포토 공정은 전공정 중에서도 제품 성능과 발열을 좌우하는 핵심 과정이다.

포토 공정에선 전류가 흐르는 길인 회로를 그린다. 전문 용어로 패터닝(Patterning)이라 하는데, 이는 2차원 또는 3차원으로 웨이퍼 위에 빛으로 미세한 패턴을 새기는 작업이다. 회로의 선폭이 얼마나 미세하느냐에 따라 웨이퍼 하나에 더 많은 반도체를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용량의 데이터가 오가는 인공지능, 5G(5세대 이동통신) 등의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선 미세 공정은 필수적이며, 휘는 형태의 디바이스를 만드는 데 있어 반도체 크기를 줄이기 위한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회로 선폭을 미세하게 가져가기 위해선 패턴을 그리는 빛의 파장이 짧아야 한다. 그간 보편적으로 쓰여 온 심층 자외선(Deep UV) 패터닝 기술의 경우 주로 불화크립톤(KrF)이나 불화아르곤(ArF)을 광원으로 활용한다. KrF 엑시머 레이저의 경우 파장은 248나노미터(nm), ArF 레이저는 193nm의 파장을 갖는다. 이 정도면 약 20~50나노 급 패터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중반 들어 반도체 기술이 초미세 공정으로 넘어가면서 더 미세한 패터닝이 필요해졌고 이에 EUV가 부각됐다. EUV 레이저는 파장이 13.5nm로 ArF에 비해 1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다. 산술적으로 ArF보다 14배 더 미세한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광원을 바꾸는 것만으론 패턴 미세화가 녹록지 않다. 빛의 파장이 짧아질 경우 주위 물질들이 이를 흡수해리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기 안에서 EUV를 전달하기 위해 수십여 개의 ‘거울’을 쌓는데, 이 과정에서 최초 EUV 광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회로를 그리기까지 빛의 반사율은 1% 미만으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빛이 기계 안에서 99% 이상 날아간다는 뜻이다.

ASML의 EUV 패터닝 기계 ‘TWINSCAN NXE:3400C’/사진=ASML 홈페이지 갈무리

이 지점에서 ASML이 가진 기술력이 부각된다. 광원을 반도체 기판까지 보내는 기술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유럽 내 기술 생태계를 바탕으로 ASML은 EUV 관련 기술에 있어 전세계 여느 업체도 따라잡기 힘든 격차를 내고 있다.

일본의 캐논 도키(Cannon Tokki)나 니콘(Nikon)도 EUV 기술력을 갖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선 네덜란드 ASML을 따라오지 못 하고 있다. 니콘의 경우 수지가 맞지 않은 EUV 사업부 직원을 2016년 대규모 구조조정할 정도였다. EUV 패터닝 장비 시장에서 ASML이 ‘슈퍼 을(乙)’이라 불리는 이유다.

권석준 KIST 박사는 EUV 포토공정에 대해 본인 페이스북에 “현재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세밀하고 정밀한 반도체 패터닝은 바로 이 EUV 리소그래피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준까지 만드는 것과 그것을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나 반도체 회사에 납품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되는 초격차를 가진 회사는 현재로서는 ASML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F-35보다 비싼 EUV 장비, 없어서 못 파는 이유

반도체 업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네덜란드에 간다는 게 곧 ASML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이 단 자릿 수 나노미터 급 ‘선단공정’으로 넘어가면서 EUV 패터닝 장비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ASML의 지분 1.5%를 보유하면서 밀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ASML이 만드는 EUV 장비는 대당 1500억원 안팎이다. 대표적 스텔스 전투기인 F-35A의 대당 가격이 1000억원이고 여기에 옵션을 붙여 1500억인데 이에 준하는 가격이다. 심지어 반도체 공장 라인에는 EUV 장비가 10대는 들어가니, 라인 하나에 EUV 장비를 들여놓는 데만 1조5000억원 가량 드는 셈이다. 그럼에도 ASML의 장비를 사들이는 건 결국 이들의 EUV 패터닝 장비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에도 ASML의 EUV 장비는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다. 연간 만들 수 있는 EUV 장비가 한정됐기 때문이다. ASML의 주요 고객사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인텔 정도인데 이들 3사가 EUV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반면 ASML은 지난해 EUV 장비를 26대 만드는 데 그쳤다.

ASML코리아 관계자는 “2020년 35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장비 생산 대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서 2021년에는 45~50대 가량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ASML의 EUV 패터닝 장비를 사들이려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내후년 가동 예정인 평택 P3 공장에 선단공정이 반영된 시스템 반도체 라인을 깔 것으로 알려진 만큼 EUV 장비를 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종합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나 선단공정 기술력을 앞세운 TSMC도 EUV 패터닝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평택에 P3 공장을 짓는 데만 매년 수십 조원의 자금을 붓고 있는 데는 그만큼 최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파운드리 회사들이 선단 공정으로 차츰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EUV 장비 가격이 더 높아지더라도 장비를 사들이려는 경쟁은 앞으로도 더 치열해질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