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인텔 낸드사업 인수]’기술’로 본 M&A, 모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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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인텔(Intel)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옵테인 사업부를 뺀 나머지를 인수한다. 인수액은 90억 달러(10조3104억원)로 2016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 달러)를 뛰어넘는 국내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양사 간 ‘빅 딜’은 두 회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의 향후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고, 인텔은 덜 중요했던 낸드 사업을 팔면서 더 중요한 시스템 반도체 쪽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이 딜을 이해하기 위해선 두 회사의 의사결정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SK하이닉스가 왜 D램에 비해 낸드플래시 부문이 약했는지 보자.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는 두 회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왼쪽은 SK하이닉스 128단 낸드플래시./사진=SK하이닉스, 인텔

SK하이닉스의 낸드 ‘솔루션’ 따라잡기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기술력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두 회사 모두 128단 제품을 양산하고 있고 차기작으로 삼성전자는 7세대 176단 V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176단 4D 낸드플래시를 각각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두 회사의 점유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데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솔루션’ 차이라고 평가한다.

낸드에서 ‘솔루션’이 중요해진 건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시장이 커지면서부터였다. 하드디스크(HDD)에 비해 저장용량은 작지만 속도가 월등히 빠르고 발열·소음이 적은 SSD를 중심으로 저장장치 시장이 빠르게 재편된 것이다. SSD의 경쟁력은 낸드플래시 자체 성능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인 ‘컨트롤러'(Controller)도 포함되며 이를 통틀어 솔루션으로 부른다.

컨트롤러는 저장장치로서의 낸드플래시를 제어한다. 또 에러나 불량 섹터를 막고 셀 간 간섭 현상을 줄여 결과적으로 제품 수명을 늘려준다. 이 분야에서 업계 최고는 삼성전자였고, 6년여 늦게 낸드 사업에 뛰어든 SK하이닉스는 2012년 미국 LAMD(컨트롤러), 2013년 이노스터(컨트롤러), 2014년 소프텍(펌웨어)을 연이어 사들이며 관련 기술력을 강화했다.

2017년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지분 투자는 낸드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017년 베인캐피탈 주도 컨소시엄에 참여해 낸드 업계 2위인 키옥시아(옛 도시바반도체) 지분을 인수했다. 200억 달러가 넘는 딜에 SK하이닉스는 4조원을 투자해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웨스턴디지털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특허 접근을 우려해 인수에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결국 딜은 이뤄졌고,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솔루션 기술력을 흡수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낸드개발사업 조직을 ‘낸드개발’과 ‘솔루션개발’로 나누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2분기엔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SSD 출하 비중이 창사 이래 처음 50%에 육박할 만큼 성장했다. 기업들이 SK하이닉스의 SSD 기술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로 풀이된다.

인텔은 낸드 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쿼드 레벨 셀(Quad Level Cell) 방식으로 집적도를 높인 SSD를 갖고 있다. TLC(Triple Level Cell) 방식의 SK하이닉스의 낸드보다 집적도가 33% 더 높아 낸드 기술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며, 나아가 인텔이 갖춘 솔루션 기술력도 흡수할 수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인텔의 낸드 시장 점유율은 11.5%로 6위(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 기준)였다. 업계 4위인 SK하이닉스(11.7%)와 합치면 23.2%로 키옥시아(17.2%)를 뛰어넘은 업계 2위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에게 고질적 약점으로 꼽히는 기업용 SSD(eSSD) 솔루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 장기적으론 삼성전자(31.4%)에도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인텔은 AMD와 Nvidia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M&A는 인텔에게도 사실상 투자를 중단한 낸드 부문을 판 돈으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득이 될 전망이다. 이번에 매각하게 된 인텔의 중국 다롄 낸드 공장(P68)은 2015년 6조원을 넘게 들여 낸드 전용 공장으로 전환했지만 2018년 이후 사실상의 기술적 투자는 전무한 상태였다.

인텔에게 낸드보다 더 시급한 건 시스템 반도체, 특히 CPU 부문이다. 10나노 이하 공정의 수율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사이 7나노 공정 기반의 라이젠(Ryzen)으로 올해 말까지 시장 점유율 30%대를 노리는 AMD에 쫓기고 있다. 싱크 쓰레드(Single Thread) 성능도 라이젠 5000시리즈 등장으로 밀렸고, 당장 내년에 나올 엘더레이크도 10나노미터 제품으로 AMD에 비해 성능 면에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엔 그래픽카드(GPU) 세계 1위 업체 엔비디아(Nvidia)가 매년 칩 성능을 두배씩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황의 법칙'(Huang’s Law)을 이뤄내고 있다. 특히 CPU보다도 GPU가 인공지능 기반 연산에 걸맞은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인수하며 AI 생태계를 구축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인텔로선 쓸 수 있는 돈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들 업체와 경쟁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번에 낸드 부문을 팔면서도 남겨 놓은 ‘3D 크로스포인트'(XPoint·옵테인)가 차세대 메모리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쪽에 투자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경민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인텔 입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키옥시아가 석권하고 있는 낸드 플래시 사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옵테인에 집중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이라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