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 시크릿가든 그리고 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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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최대의 화제어 중 하나는 슈퍼스타K다. 상금 2억원과 고급 승용차, 그리고 무엇보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는 전국을 달구었다. 틈새 시장을 파고든 케이블 TV 엠넷의 적극성, 출연한 참가자들의 끼와 재능이 흥행 포인트였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콘텐츠 소비에 대한 참여 형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슈퍼스타K, 그 중에서도 시즌2를 화제만발로 만든 실제 주인공은 무대에서는 전연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이다.

슈퍼스타K 시청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슈퍼스타K의 경쟁적 요소에 흥미를 느꼈고, 다른 누군가는 참여자들의 개인적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허각의 우승에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더하면서, 프로그램 자체에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가만히 잠재우지 않았다. 포털 블로그부터 소셜미디어에 이르는 매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감상과 주장을 사이버 공간에 표현하고 공유했다. 나아가, 이 표출된 온라인 정서는 다시 기성 언론을 통해 지면을 장식했고, 선순환은 가속됐다.

따라서 여기서 ‘시청자’란 말은 정확하지 않다. 시청자라는 말은 그들이 TV를 통해 방영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 같은 단정과 거리가 멀다. 인터넷이 사회의 중심적 공동체 기능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셜웹이 대두된 이 시점에서, TV 프로그램은 하나의 독립된 콘텐츠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수많은 콘텐츠의 일부며, 그 콘텐츠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중심에 이들 이용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이용자 관점에서 슈퍼스타K의 흥행사를 짚어보자. 흥미로운 점은 이 슈퍼스타K를 둘러싼 문화가 어떻게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공유되고 사회적인 파장을 만들어냈는가 하는 부분이다. 위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미디어 기업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TV는 TV일 뿐이며, 인터넷은 인터넷일 뿐이다. 인터넷은 TV에 있어서 또 하나의 방송 채널일 뿐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에게는 그들 간의 고리가 분명하다. 그들에게 TV는 콘텐츠이고, 인터넷은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문화를 그들 간의 협업을 통해 창조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즉 TV가 커피라면, 인터넷은 그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이루는 공간인 스타벅스 커피숍이다.

이용자의 사이버 문화를 통한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융합 현상은 최근 종영한 시크릿가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주인공 김주원(현빈)의 까칠하면서도 귀엽고 애틋한 정서에 공감하는 팬들의 증세인 ‘현빈앓이’가 만약 혼자만의 것이었다면 이 드라마가 지금같은 인기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현빈앓이는 소셜웹 시대에 혼자의 것으로 가두거나 공유하지 않고는 힘든 것이 됐다. 트위터 타임라인,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통해 같은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 동병상련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들 안에 집단 지성이 발동해, 시크릿가든의 다음 편이 방영되기도 전에, 이번 라임(하지원) 세 쌍둥이 설처럼, 다음 편에 대한 다양한 각본이 구성되며 문화가 창조된다. 그리고 이 해당 드라마에 대한 열기와 논의는 다시 기삿거리가 되어 기성 언론을 타고, 실제 드라마 제작과 방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같은 소통 구조는 사실 올드 미디어 중에서도 올드 미디어인 출판 문화의 초창기를 상기시킨다. 소설이 단행본 단위가 아니라 신문에 연재로 진행되던 그 시절,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부터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팬레터는 소설의 결말에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인쇄술이 등장하고, 근대소설이 탄생하기 전의 이야기란 ‘신화’와 ‘전설’의 양식을 띠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성격이 강했다. 동양의 대표적 이야기인 ‘수호전’, ‘삼국지’ 같은 것들도 오래 전부터 구전돼 오던 것들이 명·청대에 발달한 인쇄술에 맞춰 출판물로 정리되어 보급된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올드 미디어의 지배 구조가 저자와 독자의 콘텐츠에 대한 공유 구조에서 저자의 독점 구조로 변해감에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희미해졌다.

그러나 MIT 비교 미디어 연구소 설립자이며 현재는 남가주대학 애넌버그 언론대학원의 헨리 젠킨스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그것이 독자의 참여 정신과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 참여적 콘텐츠 소비 계층은 ‘마니아’, ‘오타쿠’라 불리는 기성사회의 하위 문화로 남아, 심층으로 사라졌고, 그 곳에서 그들 사이에는 활발한 커뮤니티를 이루었다. 비록 그들의 ‘참여적 성격’에 대중 문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역할과 공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선호와 취향에 대한 열정을 계속해왔다. 그 맥락에서 봤을 때, 이같은 TV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소통 구조는 이 전통적 팬덤의 온라인 확장판이다. 그들의 아웃사이더 문화가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같은 이야기를 통해 깨닫는 바는 무엇인가. 뉴미디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관련된 기사나 보고서를 읽는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미디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다. 그것의 정체는 디지털화되어 가는 수많은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의 공유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시민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를 배제하고 설명하는 뉴미디어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사회, 기업가 없는 시장경제를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이 없는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기술과 체제에 대한 작금의 논의에서 작별할 시기가 됐다. 비트가 물질을 대신할 것인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없앨 것인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택하는 것도 전자책과 종이책을 택하는 것도 사람이다. 비용과 효용,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넘어서서 우리가 실제로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여기다.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그 매개체를 통해 어떠한 문화를 이루고,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뉴 미디어는, 새로운 문화는 그에 맞는 접근법, 뉴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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