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이건희 폰’이 삼성에 남긴 흔적

가 +
가 -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6년간의 투병 끝에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는 삼성이 사업상 중대 기로에 섰을 때마다 조직 전면에 나서 그룹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 역사에는 두 번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건희 폰’으로 분류되는 두 대의 모델은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기록 중인 삼성의 기틀을 다진 제품들로 회고된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삼성전자 제공

최초의 트루컬러 디스플레이 ‘삼성 SGH-T100’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일화를 남긴 바 있다. 1988년 국내 첫 휴대폰 생산을 시작한 이래 기존 1위 사업자인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리던 삼성전자의 휴대폰 불량률은 약 12%까지 치솟았다. 브랜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던 시기였다.

이에 이 회장은 2000여명의 삼성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시장에 유통된 15만대의 애니콜 기기를 불태우며 ‘품질 최우선’ 경영을 선포했다. 또 “국민 1인당 1단말기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강조하며 이 회장 본인도 직접 휴대폰 사업 지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 중 이 회장이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SGH-T100’이 마침내 ‘대박’을 터트리는 데 성공한다. 2002년 출시된 SGH-T100은 최근 삼성 폴더블폰에도 적용된 ‘클램셸(조개껍질)’ 디자인의 원조다. 기존의 각진 휴대폰 디자인 상식을 깨고 둥그런 몸체로 그립감을 강조했으며, 얇은 힌지를 적용해 투박함을 한 꺼풀 더 걷어냈다.

삼성전자 SGH-T100

디자인 외에 하이스펙으로도 승부를 걸었다. SGH-T100은 세계 최초로 컬러 TFT-LCD를 탑재한 모델이다. 아직은 흑백이 더 익숙했던 시기, 26만개 이상의 색 표현이 가능한 트루컬러 액정은 독특한 외형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였다.

여기에 당시로선 최고 스펙이었던 31만 화소의 카메라를 내장하고 동영상 촬영 기능, 64화음 지원 등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시대에 발맞춘 엔터테인먼트 요소도 강조됐다. 디자인·스펙·활용성 삼박자 균형 맞추기에 성공했고 2003년까지 10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삼성전자의 첫 텐밀리언셀러 휴대폰으로 기록됐다.

삼성전자 SGH-T100

동시에 ‘애니콜(해외에선 삼성 모바일)’ 브랜드의 대중화와 고급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며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세계 3위 휴대폰 브랜드로 성장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건희 회장도 당시 이 제품을 오랫동안 애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옴니아는 잊어라…진짜 아이폰 대항마 ‘갤럭시S’

이후 삼성전자 애니콜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애플의 2007년 ‘아이폰’ 출시로 또 한차례 큰 위기를 맞는다. “짧은 유행일 것”이라던 당시 휴대폰 제조사들의 예상과 달리 아이폰은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얻으며 휴대폰 시장을 뒤엎었다.

이에 삼성전자도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옴니아2’를 급히 개발해 대항마로 세웠으나 준비가 부족했다. 옴니아2는 시장의 역대급 혹평을 받으며 지금도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 역사상 가장 지우고 싶은 ‘흑역사’ 제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삼성전자 옴니아2

옴니아가 패퇴하자 이건희 회장이 다시 움직였다. 이 회장은 그해 경영에 복귀해 가장 먼저 삼성전자의 휴대폰 개발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를 찾아 ‘뒤엎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애니콜 화형식과 같은 퍼포먼스는 없었으나 여전히 휴대폰을 삼성전자의 주요 먹거리로 보고 쇄신을 주문한 것.

이미 옴니아2 실패로 한 발짝 뒤처진 삼성전자에게 남은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절치부심 끝에 2010년 3월 옴니아2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단점을 모두 개선한 스마트폰 ‘갤럭시 S’를 공개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

재밌는 건 갤럭시S 공개일이 스티브 잡스의 생전 걸작으로 꼽히는 애플 ‘아이폰4’ 공개일과 같다는 점이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경쟁사와 플래그십 제품 공개 날짜를 맞추는 모험은 하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 여기엔 “제품 출시 주기를 앞당기라”는 이건희 회장의 특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사업의 명운을 걸고 애플에 정면승부를 건 셈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이건희 폰인 SGH-T100이 첫 6개월 동안 약 450만대 팔렸던 것과 비교해 갤럭시S는 같은 기간 이미 1000만대에 거의 근접한 판매고를 올리며 스마트폰 시장에 ‘갤럭시’란 브랜드를 각인했다. 최종 판매량은 약 2500만대로 추산된다. 갤럭시S가 큰 성공을 거두며 기존의 ‘애니콜’ 브랜드도 2011년을 마지막으로 퇴장을 고했다.

갤럭시S 화이트 컬러

갤럭시S는 무엇보다 스펙 차별화에 심혈을 기울여 당시 안드로이드 OS의 단점인 속도와 최적화 문제를 하드웨어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제품이기도 하다.

갤럭시S에는 ARM Cortex-A8 기반으로 1GHz 속도를 최초로 돌파한 엑시노스 3110 AP가 탑재됐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512MB 램을 탑재해 구동 안정성을 높였으며, 디스플레이 크기와 색감 차별화를 위해 LCD 대신 4인치 슈퍼 아몰레드(AMOLED)를 채택하는 모험을 했다.

초기 아몰레드는 화려한 컬러를 강조하며 사용자 사이 호불호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이때부터 닦은 스마트폰용 OLED 기술은 지금도 삼성이 OLED 기반의 폴더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SRS 5.1 음장 탑재, 5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30만 화소 전면 카메라 등 철저히 아이폰4를 겨냥해 맞불을 놓아 성공한 갤럭시S는 아이폰으로 제한된 선택지에 갤럭시라는 새로운 단말기를 추가하며 지금의 ‘IOS vs 안드로이드’ 구도를 만드는 데에도 일조했다. 갤럭시 팬과 아이폰 팬들의 해묵은 자존심 싸움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퍼스트 무버로 성장한 삼성 스마트폰

이처럼 위기마다 이건희 회장의 뚝심이 반영된 삼성전자는 현재 전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2019년 전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삼성이 2억9600만대(20%)로 1위를, 애플은 1억9600만대(13%)로 3위를 기록 중이다.

또 올해도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삼성은 21%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수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차세대 스마트폰 폼팩터인 폴더블 및 5G 제품 출시에서는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퍼스트 무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