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생애 ③경영복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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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78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이어받은 그는 삼성그룹의 ‘반도체 왕조’를 이끌었고, 1993년 이래 단 한 차례도 메모리 반도체 왕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재계의 ‘거목’이자 한국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그의 생애를 사진과 함께 풀어봤다.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이건희 회장이 1994년 베이징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때론 직설적이고 때론 비유적인 ‘촌철살인’식 화법은 그의 특징이었다. 정치가 4류, 관료·행정조직이 3류란 말은 정치와 관료,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날 선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도 2008년 비자금 사건 때 유죄 판결을 받아 회장직을 내려놓고 칩거에 들어간다. 형인 이맹희 씨와는 상속 관련 소송도 겹쳤다. 글로벌 최고 반도체 기업인 삼성을 이끈 그였지만 말년이 순탄지는 못했다.

2011년 7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여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그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단독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그해 3월 복귀의 변으로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2011년 4월 21일, ‘은둔의 경영자’로 도통 출근하지 않던 그가 출퇴근을 시작하며 재계에 화제가 됐다. 그는 삼성전자와 6개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신수종 사업 준비 보고를 받았고 삼성은 4월 27일, 2021~2025년까지 7조6000억원을 투입해 태양전지, 자동차배터리,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친환경 에너지 및 헬스케어산업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 9월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 16라인 가동식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 직원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경기도 화성사업장 16라인 기공식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지금 세계경제가 불확실하고 경영여건의 변화도 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해야 그룹에도 성장의 기회가 오고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삼성의 ‘초격차’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2011년 7월 정례 출근 때 임직원들과 만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전자

한국에선 다소 외면되던 여성 경영자에 대한 그의 코멘트도 보인다. 그는 2011년 정례 출근 당시 여성 승진 임원들과 오찬을 가지며 “여성 임원은 사장까지 돼야 한다. 임원 때는 본인의 역량을 모두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으니 사장까지 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1997년 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이는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은 5.2%로 전체 100대기업 평균치(3.6%)를 상회한다.

2011년 7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여해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삼성전자

2011년 7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한 그는 애플과 구글, 소니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해법으로 ‘소프트 기술'(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S급 인재’, ‘특허’라는 세 가지 화두를 제시했다. 기술은 악착같이 배우고, 인재에게는 일할 환경을 제공하고, 특허는 미리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40여년 간의 경영 활동에서 얻은, 경쟁에 대한 그의 지론이었다.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 참여한 이건희 회장이 기자들의 발언에 답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공개석상 발언에선 그 특유의 글로벌 경쟁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자주 읽힌다. 2010년 11월 조직 신설 당시엔 “삼성이 지난 10년 간 21세기 변화를 대비했지만, 곧 닥칠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2012년에도 이건희 회장의 대외 행보는 이어졌다. 사진 왼쪽은 2012년 3월 헝가리 대통령과의 면담에 참여한 이건희 회장, 오른쪽은 그해 6월 모나코 국왕과 악수를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사진=삼성전자

2012년 세계가전박람회(CES) 행사에서는 “정말 앞으로 몇 년, 십 년 사이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 더 긴장이 된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가고, 우리가 앞서는 것도 몇 개 있지만, 더 앞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마치 1994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발언을 방불케 하는 ‘위기 경영’ 행보였다.

이건희 회장의 대외 행보는 2012년까지도 활발히 이어졌다. 2011년 정례 출근 이후 대구 육상선수권 대회 개막식, IOC 위원 미팅, 화성 16라인 가동식,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장 면담,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 등에 참가했고, 2012년에는 CES, 헝가리 대통령 만찬, 모나코 국왕 만찬, 페루 헬기 참사 희생자 조문, 런던 한국선수촌 방문, 베트남 삼성전자 사업장 방문 등 각종 대회 행보에 두루 참여했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여한 이건희 회장. 왼편 수행원의 손에 의지해 거동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사진=삼성전자

하지만 2013년에는 1월 신년하례식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월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과의 면담, 같은 달 호암상 수상식, 9월 IOC 총회에 참석했고, 그가 매스컴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13년 10월 열린 신경영 20주년 만찬 때였다. 거동이 불편한 그가 수행원의 손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자택에서 쓰러진 뒤 삼성의 경영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삼성전자

1974년 반도체 회사를 인수한 후부터 머릿속 담겨있던 ‘세계 일류’, ‘세계 최고’라는 목표는 1990년대 비로소 이뤄졌다. 이후 삼성은 세계 반도체, 가전의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리며 나라 경제에 기여하고 국격을 끌어올리는 데 공헌을 세웠다. 다만 그가 쓰러진 뒤 삼성은 순환출자 문제로 정치권의 질타를 받고 있고, 이재용 체제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 의혹에 휩싸이며 현재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의 여러 숙제들을 미완으로 남겨둔 채 영면에 빠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