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KCC에 지분 판 삼성물산, ‘여기 주차비 얼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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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약 6개월 전인 지난 5월 검찰이 정몽진 KCC 회장을 불러 조사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죠. 삼성 분식회계 사건인데 왜 KCC 정 회장을 수사했을까요? KCC는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백기사’로 활약했고, 또 여전히 우호세력 지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간단히 추려보겠습니다. KCC는 2011년 삼성카드가 관련법 상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팔아야 할 때 지분 17%(7700억원) 사들였죠. 또 2015년 삼성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와 경영권 분쟁을 치를 당시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5.76%)을 6700억원에 매입해 힘을 실어줬습니다. 검찰이 둘 사이에 어떤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만하죠.

검찰이 정 회장을 불러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요. ‘왜’ 무리를 해가면서 삼성물산의 지분을 샀냐고 묻지 않았을까요? 만약 검찰이 이를 놓고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면 KCC가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을까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정보와 드러난 사실들만 갖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KCC는 두 차례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했습니다. 처음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입했을 때가 2011년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1년까지 KCC와 삼성과의 거래 내역을 파악해보겠습니다.

KCC의 삼성계열사 사업 수주내역(2002~2013). / 자료=사업보고서

사업보고서(분∙반기보고서) 내 ‘사업의 내용’을 보면 보통 기업의 수주 현황이 나와 있습니다. 2000년 사업보고서(분기보고서 포함)부터 모두 다 뒤져보니 KCC와 삼성 계열사 간 거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KCC가 삼성 계열사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던 해도 있고 아예 수주내역이 없었던 해(2005∙2006년)도 있습니다.

다만 아주 긴밀한 관계는 전혀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등 범(汎)현대가 그룹으로부터 한 해에만 수십건의 수주를 받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공사명이 대체로 재개발 및 재건축 등으로 표시된 걸 보면 현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부터 수주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에는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원유운반선(VLCC) 3척과 관련한 수주가 있었고요. KCC가 샤시, 유리 등 건자재 사업과 도료 사업을 주로 하다 보니 건설사 혹은 조선사로부터 사업을 따온다고 볼 수 있겠죠.

2010년대 들어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처음으로 삼성 계열사로부터 복수의 사업을 수주한 해가 2010년입니다. 삼성물산, 삼성에버랜드, 삼성엔지니어링 등으로부터 총 4건을 수주했죠. 수주총액은 105억원입니다.

물론 KCC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17%를 매입한 해가 2011년이니 이와 직접적으로 연결지어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실제 2011년에는 수주한 사업이 전무합니다.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으로 수주한 사업은 연도별 1건 뿐이고 수주금액도 각각 60억, 30억 등 엄청난 규모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2014년부터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삼성물산으로부터 총 4개의 사업을 수주한 것은 2010년과 같지만 수주총액이 209억으로 늘었습니다. 사실 몇 개의 사업을 수주했는지보다 중요한 건 얼마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냐겠죠. 이전까지 KCC가 200억이 넘는 물량을 삼성으로부터 받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KCC가 삼성을 엘리엇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냈던 2015년.

KCC의 삼성계열사 사업 수주내역(2014~2015). / 자료=사업보고서

무려 한 해에 8건의 사업을 따냅니다. 약 8년간 수주가 끊겼던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사업을 2개나 가져온 것도 눈에 확 띕니다. 삼성중공업 기숙사, 삼성전자 생산라인, 아파트 등 수주한 사업의 성격도 다양하네요. 이들 사업의 수주총액은 무려 730억원에 달합니다. 전년 200억원보다 3배 넘게 늘어난 수준이죠.

갑자기 2015년에 KCC가 삼성으로부터 수주를 폭발적으로 늘린 원인은 무엇일까요.

먼저 기지개를 편 부동산 시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졌던 국내 부동산 시장은 2013년 경부터 회복되기 시작했죠. 부동산 시장이 기지개를 펴자 아파트 공급도 늘어났고 건설사들의 실적도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유관 사업을 하는 KCC 입장에서는 삼성물산 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들로부터 받는 수주가 덩달아 늘었죠.

KCC가 2015년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넘겨 받아 ‘백기사’로 활약한 덕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양측 모두 ‘대가성’에 대해선 부인합니다. 확증도 없고요.

다만 작지만 눈여겨볼 만한 변화가 있습니다. 2016년도 KCC 사업보고서 입니다.

KCC의 구체적 사업 수주내역(2016~2020). / 자료=사업보고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약 15년간 사업보고서에 수주내역을 표시해오던 KCC가 2016년 돌연 구체적 수주상황을 기재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건재, 도료, 소재, 기타 등 4개 사업부문별 수주총액은 나와 있지만 과거처럼 어떤 회사로부터 어떤 사업을 수주했는지에 대한 내역이 사라진 거죠.

2016년 한 해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사업보고서를 통해 KCC의 자세한 수주내역을 확인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주식 ‘파킹(Park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다른 기업에 잠시 주식을 맡겨 놓는 것을 ‘주차’에 빗대 표현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 ‘기업을 매수하려는 회사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제3자에게 매수 목표회사의 주식을 매입해서 일정기간 보유토록 하는 지분확보 위장전술을 뜻함’이라고 나오네요.

시장 일각에서는 ‘주차비’가 오고 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냅니다. 주식을 10년 가까이 주차시키는데는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서죠. 삼성물산측은 이런 의혹과 질문에 대해 “근거없는 추정”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실제 몇십억 더 수주하겠다고 조단위 투자에 나서는 기업 오너는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면 계약을 했을리도 없고요.

장기투자가 목적이라고 KCC는 말합니다. KCC의 과거 역사를 보면 장기투자로 성공한 사례가 많기도 합니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주식을 사두었다가 10여년간 보유한 뒤 큰 자본차익을 보고 팔았던 곳이 KCC 입니다. 실제 KCC는 현재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누구의 말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투자의 세계는 냉정하고 현실적입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작고한 지금, KCC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과거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지분이 됐습니다. KCC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시간만이 알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