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예고 ‘특금법 시행령’ 보니…가상자산과 여전히 선 긋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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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금융위를 통해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 특히 세부 내용에 따라 일부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존폐 여부도 결정될 수 있었던 만큼, 그동안 업계에선 시행령 발표에 촉각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는 여전히 가상자산 업계와 ‘정책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동시에 업계가 요구한 쟁점 조정안에 대해서도 타협 가능한 선에서 수용을 하는 등, 개정안 발표까지 적잖은 고심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사진=Pixabay

특금법이란?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은행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VASP에 부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2021년 3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가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의 회원국 대상 권고를 받아들이고 기존 특금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이를 반영했다. FATF의 목적은 가상자산 관련 자금세탁 및 마약 밀매 등의 사례가 증가하자 해당 사업을 신고제로 전환해 각 나라별 관리감독을 받도록 한 것이다.

가상자산이란?

‘가상자산사업자’ 혹은 ‘VASP’라는 말은 조금 어려워 보인다. 쉽게 풀이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를 다루는 사업자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란 말 대신 가상자산이란 용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다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된다. 다만 시행령은 △게임에서 취득한 아이템 △전자화폐 △전자어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 △모바일 상품권 △전자채권 등은 가상자산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는데, 사실상 직접 거래가 가능한 형태의 암호화폐가 바로 특금법에서 말하는 가상자산인 셈이다.

참고로 이용자 추적이 불가능해 자금세탁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다크코인’을 VASP가 취급해선 안 된다.

VASP는 주요 가상자산 사업자로 한정

한편 시행령이 정한 VASP의 범위도 가상자산 거래·교환·이전, 그리고 보관 및 관리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한정된다. 대표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 가상자산 위탁·보관업자(Custody), 지갑형 서비스 제공자가 해당된다.

논란이 많았던 VASP 적용 범위에 대해선 정부가 업계 요구에 따라 최소 범위로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특금법의 VASP 신고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VASP 범위를 너무 폭넓게 인정할 시 불합리하게 피해를 보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이에 따라 수수료(이익) 없는 개인 간 거래(P2P) 플랫폼, 직접적인 가상자산 거래를 지원하지 않는 지갑 플랫폼 사업자, 하드웨어 지갑 판매 사업 등은 VASP에서 제외된다. 단순 가상자산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의 게시판,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는 “개별 사업 형태에 따라 VASP 해당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사업 범위가 워낙 넓은 만큼 미처 법이 정하지 못한 형태에 대해서도 추후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시행령 개정안은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주도로 이뤄졌다

은행은 여전히 갑? 속 타는 VASP

업계가 우려했던 ‘은행에 의한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조항은 그대로 유지된다. 특금법 시행 이후 VASP는 특정 은행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사용자도 동일한 은행의 계좌를 갖고 있어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사업 신고에 필수인 실명계좌를 VASP가 은행과의 직접 계약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발급 여부는 전적으로 은행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일전에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사업을 하는데 정부가 아닌 다른 민간 기업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시행령에는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기준이 명시돼 있다. 해당 기준은 ‘1. 고객 예치금, 거래 내역을 분리 보관할 것 2.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최근 정책 개편으로 가상자산 전문 점검항목 신설) 인증을 획득할 것 3. 벌금 이상의 형 혹은 신고가 직권 말소된 후 5년 이상 지날 것 4. 금융회사 등은 VASP의 자금세탁행위 방지를 위한 절차와 업무 지침 등을 평가할 것’이다.

이 중 은행이 VASP의 준비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는 조항은 VASP에게 다소 불리하다.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실명계좌 발급을 거절할 수 있고 해당 사업자는 신고 요건을 갖추지 못해 폐업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업계에선 ‘일정 조건을 갖추면 무조건 발급’을 주장해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은행에 새로 의무를 부과한 게 아니라, 고객 확인에 대한 기존 특금법 조항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은행 입장에서도 잠재적 리스크가 높은 VASP에 무조건 계좌를 내어주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조항이겠지만 정부가 책임을 민간에 떠넘겼다는 눈총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신 별도의 감독규정을 통해 ‘법정화폐와 가상자산간 교환이 없고, 예치금이 없는 등 실명계정이 필요 없는 사업자의 경우 발급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혀 부담을 일부 완화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 입출금 계좌를 발급 중인 은행들

반쪽짜리 여행규칙, 일단은 ‘유예’

실명계좌 발급 조건이 ‘채찍’이라면, 여행규칙(Travel Rule) 관련 시행령은 상대적으로 ‘작은 당근’이다. 여행규칙은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송금자가 송금 시 수취인에게 거래 관련 당사자 정보 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으로, 이 역시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많았던 대목이다.

거래자의 신원이 철저히 확인되는 은행 금융과 달리 가상자산 거래는 블록체인의 특성상 어느 정도 익명성이 담보된다. 여행규칙대로 실명계좌가 연동된 거래소 간에는 일부 협약을 통해 정보 교환이 가능할 수 있지만, 가상자산 송금은 거래소 없이 개인 간 지갑 전송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맹점은 이 경우 개인에게 여행규칙을 어떻게 적용할 거냐는 거고, 형평성 문제도 따른다. 결국 정부는 여행규칙 적용을 1년 유예(22.03.25까지)하기로 결정해 업계에 충분한 준비 시간을 주기로 했다. 또 적용 조건도 일부 완화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여행규칙은 100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거래에 한하며, VASP 중심의 송신·수취에만 적용되고 개인 간 거래는 제외된다. ‘반쪽’이 됐지만 여행규칙은 당초 목적인 자금세탁방지의 핵심 요소인 데다가 현실적으로 일괄 적용이 불가능한 만큼, 일부 타협을 본 것으로 해석된다.

여행규칙 적용 대상 / 자료=금융위

제도권 편입 아냐…확실히 선 그은 정부

공개된 시행령은 업계 입장에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의무’가 많아지고 ‘부담’도 늘었다. 정부는 여전히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VASP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지 제도권 편입을 뜻하진 않는다”며 강조하고 있다.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일부 서양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단히 보수적인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다. 특히 2018년 ICO(암호화폐공개) 금지 이후, 가상자산 사업의 합법·불법 여부나 사업 가능 범위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어떤 업권법 마련도 이뤄지지 않은 환경이 이를 잘 설명한다.

이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워도 특금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 업계가 정식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었으나 이번 시행령 발표를 통해 장밋빛 상상에 불과함이 재차 확인됐다.

아울러 정부는 시행령 발표와 함께 가상자산과 관련된 투기 과열, 불법 행위는 관계부처 협동으로 강력 대응할 것이며, ICO에 대한 원칙적인 금지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가상자산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블록체인 투표·전자계약·금융·부동산 등 기존 산업과 접목되는 분야들이 이에 해당한다.

또 “VASP 신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으로 인해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를 통해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시행령 입법 예고는 12월 14일까지 40일간 진행되며 그 기간 업계에선 찬반 등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