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대우조선해양→아시아나항공’…이동걸은 ‘시장 지배력 강화’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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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이 2019년 3월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을 만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본계약에 서명했다.(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정치와 기업이 ‘윤리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걷어내고 생각해 봅시다. ‘정치인은 독재를, 기업은 독점을 추구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야심’을 통제하기 위해 정치인에게는 임기를 뒀고, 기업에는 규제를 뒀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때로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완전경쟁시장이 유지되는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산업은행이 직간접적으로 추진하는 인수합병(M&A) 딜과 관련해 개별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해 3월 본계약을 체결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두산인프라코어 및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CI.(사진=각사 홈페이지)

두산인프라코어는 아직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중공업지주(재무적 투자자 KDB인베스트먼트)와 GS건설(도미누스프라이빗에쿼티)이 유력한 인수 후보입니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지주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유력한 후보인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하고 있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여력이 없습니다. 다만 산업은행과 주식 교환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진칼 및 대한항공 재무상태.(사진=금융감독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후보자를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대우조선해양처럼 10년 넘게 ‘국영 항공사’ 형태로 운영해야 할 수도 있죠. 산업 경쟁력과 고용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할 정부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해 ‘큰 그림’을 그린 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입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상 정부가 ‘빅 픽처’를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해야 할 정부가 자칫 특정 기업의 ‘독점’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인수 구조를 그린 이유는 뭘까요.

M&A는 원매자와 매도자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원매자는 기업의 성장과 실적 향상 등 전략적 이유로 M&A를 추진합니다. 매도자는 유동성을 확보하거나 사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전략적 방향이 맞지 않는 기업을 팔려고 합니다.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아시아나항공은 결이 다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부터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보유 지분 55.7%)입니다.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죠.

아시아나항공과 두산인프라코어는 실제 소유주는 금호산업과 두산중공업이지만, 국책은행의 자금이 투입되면서 매물로 나온 회사죠. 이 때문에 이들 회사를 팔려고 하는 매도자의 의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걸 회장의 관점에서 딜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3년생인 이동걸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예일대에서 금융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정책금융 분야와 학계를 두루 걸쳤고,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됩니다. 2017년 산업은행 회장에 올랐습니다.

이 회장을 따라붙는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진보주의자’와 ‘원칙주의자’, ‘반(反)재벌 경제학자’ 등이 있습니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대우그룹 해체 당시부터 다양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관여했습니다.

그는 과거 하이닉스와 LG카드 등의 M&A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산업은행 회장 취임 후에는 △금호타이어(중국 더블스타 매각) △대우건설(매각 추진 중)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그룹과 본계약) △STX조선해양(매각 추진)△두산중공업(계열 회사 매각 추진) △아시아나항공(매각 추진)까지 다수의 구조조정과 M&A를 추진했습니다.

다수의 기업들이 산업은행의 ‘메스’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이동걸 회장은 독자생존이 가능한 곳은 최대한 M&A를 통해 매각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대기업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이동걸 회장의 강력한 소신이기도 합니다.

그는 2017년 9월 산업은행 회장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 중인 기업은 채권단의 지원 없이 독자생존이 가능한지 최우선으로 봐야한다”며 “그 후 (산업은행) 지원이나 매각을 통해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동걸 회장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제학으로 분류하면 케인즈학파보다 오스트리아학파로 보입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 결과적으로 과잉 투자와 경기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부실 기업 지원은 장기적으로 해법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더 곪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회장이 발로 뛰면서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대상자를 찾아다닌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고 했지만 인수가격을 좁히지 못해 매각에 실패했죠.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수조원의 국책은행 자금이 투입됐고, 분식회계까지 발생했습니다.

결국 정부 지원은 비효율과 ‘모럴해저드’를 낳았고, 가능한 한 가격이 낮더라도 적기에 매각해 정상화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요. 2009년 대우조선해양 매각 예정 가격은 6조원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산은은 1조2500억원 규모의 우선주(한국조선해양)와 7.9% 지분을 배정받고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권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조선업의 불황을 고려해도 매각 가격은 이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이는 산업은행의 관심이 여태까지 들어간 지원금을 회수하는 데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아주는데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려고 합니다. 경영은 국내 1위의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맡고, 산업은행은 대주주로서 경영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계획이겠죠.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M&A의 성공 여부는 경영진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기도 합니다. 경영진은 산업 특유의 지식과 경험, 인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윤 및 자산 관리,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도 경영진의 역할입니다. 제 값을 받고 매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수 후 인수기업이 지속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인수 후에는 △시장 지위 변화 △경영진의 자질 △인수 기업의 재무구조 등도 변수입니다.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아시아나항공은 조선업과 건설기계 산업, 항공산업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및 삼성중공업 등과 함께 글로벌 ‘톱3’ 조선사죠. 두산인프라코어는 글로벌 9위,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2위의 국적항공사(FSC)입니다.

이동걸 회장은 경쟁력 있는 회사를 서둘러 매각해 ‘새 주인’을 찾아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 정상화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를 위해 특정 기업 또는 재벌에 대한 특혜 시비나 시장 지배력 집중 문제 등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M&A 과정에서 시장 지배력의 집중, 즉 독점에 대한 시각은 달라진지 오래입니다. 베넷 해리슨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는 “M&A는 과거처럼 시장을 적당히 분할해 갖는 게 아니라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싹쓸이 하는 게임의 세계로 접어들었다”며 “거의 모든 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노린 대통합이 일어나고, 시너지는 시장 지배력에서 분출된다”고 말했습니다. 베넷 교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진보적 경제학자로 1999년 타계했습니다.

실제 일본과 중국의 조선사와 철강사는 2000년대부터 M&A를 통해 몸집을 불렸습니다. 중국 바오강 철강은 M&A로 규모를 키웠는데, 중소 규모 철강사를 합병하면서 조강생산량 기준 글로벌 2위 철강사로 부상했죠. 국내는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 그리고 김대중 정부 때의 ‘빅딜’ 외에는 동종 업종 대기업 간 대형 M&A가 많지 않았습니다.

국내의 경우 동종 업종 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합쳐질 경우 독점을 우려하는 부정적 분위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독점화’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는거죠.

한국조선해양의 2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점유율은 28.9%에 달합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와 대우조선해양까지 합하면 점유율은 71.7%로 증가합니다. 사실상 조선부문의 ‘공룡 기업’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말이 ‘빅2(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체제로의 재편이지, 사실상 ‘빅1’ 체제로의 구조개편입니다. 한국은 전세계 선박 발주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한국조선해양 조선 부문 실적 비교.(자료=금융감독원)

마찬가지로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가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인수사는 시장 지배력이 수직 상승합니다. 지난해 기준 두산인프라코어는 글로벌 9위, 현대건설기계는 글로벌 22위의 건설기계 회사입니다.

중국과 인도, 미국은 건설기계 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는 선두기업 진입을 의미합니다. M&A 시장에서 강력한 시장 지위를 확보한 기업을 매물로 만나는 건 드문 일입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실적이 우수해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전무후무합니다.

현대건설기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전후 실적.(자료=금융감독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유일의 대형항공사(FSC)입니다. 두 회사의 국제여객 점유율을 합하면 37.5%(아시아나항공 점유율 15.3%), 국내 여객 점유율은 42.2%(아시아나항공 19.3%)입니다. 국제화물 점유율은 67%(아시아나항공 41.8%)입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 전과 후 비교.(자료=금융감독원)

이들 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경우 이번 합병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는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로 경제 문제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저서 ‘경제 규칙 다시 쓰기’를 통해 “경쟁은 성공적인 경제의 본질적인 특징이고, 경쟁의 힘 덕분에 기업은 효율을 추구하고 가격을 내린다”며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통제하는 건 경제의 형평성을 높이고, 역동성을 진작하는 데 기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힘은 기업과 고객 외에도 노사 관계 및 정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는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 부(富)가 소비자에서 기업으로 이동한다”며 “시장 지배력 행사에 동반하는 시장 왜곡은 사회적 후생과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을 왜곡하는 결과도 낳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글로벌 M&A 시장 트렌드는 1970년 ‘수직 계열화 및 사업 다각화’에서, 1980년 시세차익을 노린 적대적 M&A로 바뀌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한 M&A가 대세입니다. 최근 SK하이닉스와 인텔 간 M&A도 본질은 ‘시장 지배력’에 있습니다. 국책은행 수장인 이동걸 회장의 M&A 또한 ‘지배력에서 시너지가 나온다’는 믿음이 있어 보입니다. 그의 원칙이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을 살려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